곤충을 자원화하는 곤충산업이 신성장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중국 남쪽 지방에서 우리나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돼 이른바 ‘중국 매미’로 불리는 이 곤충은 활엽수 수액을 빨아먹는 신종 해충. 폭발적인 번식력을 자랑하며, 자연사하거나 때로 행인들의 발길에 채여 이지러진 이 매미의 사체들이 비교적 나무가 많은 도심 건물 안팎에 남긴 수많은 얼룩에 눈살을 찌푸렸을 사람들이 적잖을 것이다.
그러나 곤충이라고 해서 모두 주홍날개꽃매미 같은 신세일까? 최근 ‘곤충산업’이 신(新)성장산업의 하나로 떠오르면서 일부 곤충들은 가히 ‘귀하신 몸’ 대접을 받고 있다.
경북 예천군 곤충바이오엑스포 ‘대박’
곤충 자원화에 눈 돌린 선두주자는 단연 기초지방자치단체들. 가장 돋보이는 성과를 낸 곳은 올해 국내 첫 곤충전문 엑스포를 연 경북 예천군이다. 8월11일부터 12일 동안 열린 ‘2007 예천곤충바이오엑스포’에 몰린 관람객은 무려 61만2000여 명. 이는 당초 군(郡)이 예상했던 30만명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치다. 경북도립 경도대에서 진행 중인 최종 용역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이번 행사에 따른 지역경제 생산유발 효과는 436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인구 4만90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군이 역사상 최대 규모로 감행한 행사가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예천군의 성공 비결은 표본과 사진 일색이던 기존 곤충 전시에서 탈피해 곤충 관련 생태관과 놀이관, 산업관, 체험관 등을 고루 갖춤으로써 살아 있는 곤충을 관찰할 수 있는 보기 드문 행사를 열었다는 데 있다. 즉 그동안 책에서만 대했던 알에서 성충에 이르는 곤충의 한살이를 생생히 접할 수 있고, 장수풍뎅이 하늘소 사슴벌레 나비 사마귀 등 산 곤충을 직접 만져볼 수도 있는 생태학습장 구실을 톡톡히 해낸 것.
그 덕에 행사기간 내내 충북 청원군, 전북 무주군, 전남 함평군, 충북 제천시, 전남 무안군, 충북 음성군, 경기 수원시 등 전국 지자체 관계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해체된 곤충바이오엑스포추진기획단에서 일했던 예천군 기획감사실 김수현 담당은 “김수남 현 예천군수가 첫 취임한 1998년, 폐교 터에 산업곤충연구소를 열어 꽃가루매개곤충 보급사업을 벌이는 등 곤충을 농업과 연계한 후 차근차근 곤충산업을 육성해온 게 엑스포의 성공 비결”이라며 “곤충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재확인하게 된 이번 엑스포에 대해 대구경북연구원이 자유무역협정(FTA)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산업이 될 것이라는 의견까지 내놓았다”고 전한다.
곤충산업을 지역을 먹여 살릴 신(新)산업으로 키우려는 지자체로 전남 함평군도 빼놓을 수 없다. 1999년 5월 일찌감치 첫 나비축제를 연 이래 올해로 9회째 행사를 성황리에 치러낸 국내 대표적 곤충도시인 함평군이 당초 친환경농업 지역임을 알리려고 기획한 것은 유채꽃축제. 하지만 98년 취임한 현 이석형 군수는 지역발전을 위한 농촌 어메니티(Amenity·쾌적한 환경과 지역의 독특한 정서적 자원을 개발해 주민 삶의 질 향상과 관광수요를 창출해 지역소득을 높이는 것을 뜻하는 포괄적 개념) 자원 개발에 나서면서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유채꽃축제를 나비축제로 바꿨고, 이는 곧 ‘함평=나비’라는 인식을 전국에 심는 계기가 됐다.
예천 곤충바이오엑스포 행사장에서 호박벌 체험놀이를 하는 관람객들(왼쪽). 올해 함평 나비축제에 참가한 관람객 인파.
함평군은 나비축제에서 한 단계 나아가 내년 4월18일부터 6월1일까지로 예정된 ‘2008 함평 세계나비·곤충엑스포’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8월26일 국제곤충학회 프란티섹 세날 회장(체코)에게서 내년 엑스포를 곤충산업 활성화를 위한 세계 최초의 국제행사로 인정받기도 했다.
1998년 개소한 뒤 나비응용산업 발달에 한몫해온 함평군곤충연구소의 정헌천 소장은 “함평군의 곤충산업은 곤충사육 및 저장·운반 기술을 보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학 협력을 통한 곤충 관련 연구개발(R·D) 산업의 발달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충남 부여군의 경우 8월28일 국내 최대 곤충체험마을인 ‘부여곤충나라’를 개장했다. 이는 부여군이 농림부에 공모사업을 신청해 국비와 지방비 등 70억원을 지원받아 반산저수지 일대에 조성한 것. 야생곤충을 곤충체험시설과 사육시설에서 직접 만져보고 구입까지 할 수 있는 사계절 체험장이라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농업뿐 아니라 신물질 활용 기술집약산업
이 밖에 전북 무주군과 경북 영양군이 대표적 생태환경지표 곤충인 반딧불이를 활용한 청정 이미지 부각 마케팅을 펼치고 있고, 전남 구례군도 잠자리의 상품화를 모색하는 등 다수 기초자치단체가 곤충산업을 농촌지역의 블루오션으로 일구기 위해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광역자치단체들도 곤충자원 산업화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제주도는 2004년 ‘곤충자원산업화 추진연구기획단’을 꾸려 곤충자원 관광화와 곤충 활용 신소재 개발을 모색하고 있고, 전북도의 경우 곤충을 새로운 농가소득원으로 창출하기 위해 올해 사업비 14억여 원을 투입해 부안에 곤충산업단지 조성을 추진 중이다. 강원도 역시 2003년 무당벌레를 통한 진딧물 방제실험에 성공한 이후 해충 천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왜 곤충산업일까.
한국곤충학회장을 역임한 대전대 남상호 부총장은 “곤충산업은 농업 분야뿐 아니라 곤충 관련 신물질 활용까지 망라하는 기술집약산업”이라며 “좁은 땅덩이에 자원마저 빈약한 우리나라로서는 마땅히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곤충산업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경우 곤충산업에 따른 부가가치 창출이 연간 6조원에 이르지만, 우리나라는 1000억원 안팎에 그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남 부총장은 이어 “8월 대구에서 예천곤충바이오엑스포와 연계한 ‘2007 국제산업곤충학술대회(ICIBI 2007)’가 세계 50여 개국의 저명 곤충학자 7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려, ‘대구’라는 도시명을 딴 첫 국가간 협약의정서가 채택된 것도 많지 않은 국내 곤충학자들이 자비를 들여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세계 각국에 초청사절단을 보내는 노력을 기울인 성과”라고 밝혔다.
대구의정서(Daegu Protocol)는 ‘유전자 변형(LMO) 곤충 및 세균에 대한 안전성 기준과 규제안을 정한 국제적 가이드라인’의 선포를 의미한다. 이는 우리나라 도시명을 딴 첫 국제적 선언. 유전자 변형 곤충 및 세균은 보건의료를 비롯해 농업, 식품산업 등에서 엄청난 수요를 창출할 수 있어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정부 관심과 지원 빈약, 법과 제도 정비 시급
문제는 이 같은 민간부문과 지자체들의 가열찬 노력과 달리 곤충산업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은 빈약하다는 점이다.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왕귀뚜라미 등 3종의 곤충은 2006년도 농림부 신소득작목 개발회의에서 FTA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농가소득 작목으로 채택된 바 있다. 또한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의 ‘유용곤충 산업화를 위한 전국 곤충사육농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파악된 전국 곤충사육농가는 모두 228개소로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나비 등 1억 마리가량을 사육하고 있다. 이중 곤충 생태학습장을 운영하는 농가는 107개소로 대부분 폐교 등 마을시설을 활용하고 있다. 농진청은 실제 곤충사육농가는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추정한다.
그럼에도 곤충사육농가들은 현재 농업정책 자금을 지원받거나 재해보상 대상이 되거나 사육시설 설치 시 농지조성비를 감면받는 등의 혜택을 전혀 누릴 수 없는 상태. 아직 곤충사육은 축산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자체들이 추진 중인 곤충산업 현황에 대한 정확한 통계도 없다. 농진청 농업과학기술원 황석조 유용곤충과장은 “지자체들의 곤충산업 중복투자와 난립을 막기 위해 농진청 관계자와 각 지자체 농업기술 담당 직원, 곤충사육농가, 학자 등으로 이뤄진 ‘곤충자원연구회’라는 모임을 수년 전부터 운영하면서 시장에서의 실패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도 “곤충산업 활성화를 위해 법적·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무한한 잠재성을 지닌 곤충. 이들을 이제 에드거 앨런 포의 ‘황금벌레’나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에서 접했던 기괴하고도 음습한 한낱 ‘벌레’쯤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우리가 무심결에 지나치는 곤충. 그 곤충에 생태자원과 돈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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