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8일 인천공항에 오무전기 직원 시신이 도착하자 유가족들이 노제를 올리고 있다.
최근 이라크 복구 공사에 참여하기 위해 바그다드를 다녀온 사람이 한 말이다. 3600여명 규모의 대부대(자이툰 부대)를 파병한 한국으로서는 이라크에서 경제적인 실익을 챙겨야 한다. 전쟁으로 무너진 사회간접자본을 복구하는 공사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선일씨 피살사건에서 보듯 이라크는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이라크에서 안전한 대박’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지난해 발생한 오무전기 사건을 꼼꼼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2003년 5월 이라크전쟁 종전을 선언한 미국은 미 의회로부터 15억 달러의 추가경정 예산을 승인받아 이 돈으로 긴급한 공사를 발주하고, 차후에 이라크 정부와 석유 판매 대금으로 정산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이라크에서의 공사 발주는 주로 미 육군 공병단(USACE)이 맡고 있다. 미 육군 공병단이 발주하는 공사는 두말할 것도 없이 30만 병력을 투입해 ‘피 흘린 미국’의 기업에 돌아간다. 그러나 미국 기업도 ‘돈은 좋지만 위험이 두렵기’ 때문에 더욱 싼값에 공사를 해줄 제3국 기업을 찾게 된다. 이라크 건설 특수는 원청사인 미국 회사가 발주하는 하청공사를 따기 위한 ‘하청 열풍’인 것이다.
공사 대부분 미국 업체의 하청 역할
지난해 종전 직후 바그다드는 심각한 전력 부족을 겪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 육군 공병단은 베이지(Bajii)와 하디샤(Haditha) 발전소에서부터 바그다드를 잇는 송전선과 송전탑 복구공사를 긴급히 발주했다. 미 육군 공병단은 공사 기간을 10월22일 시작해 12월20일까지 완공해야 한다고 못박았는데, 이 공사는 아이오와주에 본사를 둔 굴지의 미국 건설사인 워싱턴사에 낙찰되었다. 그 즉시 워싱턴사는 하청사 물색에 나섰는데, 이때 연결된 곳이 필리핀의 S사와 한국의 오무전기였다.
그때까지 오무전기는 단 한 번도 해외공사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S사와 함께 이라크 공사에 참여하게 됐는가. 여기에는 인간 관계가 큰 작용을 했다. S사는 한국인 A씨가 운영하는 필리핀 회사다. A씨는 과거에 한국의 한 전력회사 직원이었는데, 그는 이 전력회사가 필리핀의 발전 사업에 진출했을 때 필리핀에 오게 되었다. 이때 이 전력회사와 함께 필리핀의 발전 사업에 참여한 미국 회사가 바로 워싱턴사였다.
7월 폐암으로 사망한 서해찬 오무전기 사장.
A씨는 한국에서 파트너를 모색하면서 오무전기의 서해찬 사장과 접촉했다. 필리핀으로 날아온 서사장을 만난 A씨는 지난해 10월7일 함께 이라크로 가서 워싱턴사의 송전선 공사를 수의계약 형태로 수주했다. 국내 업체가 해외에서 공사를 하려면 먼저 해외건설협회(이하 협회)에 관련 서류를 보내 신고필증을 받고, 이 필증을 건설교통부 해외건설과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때 반드시 공사관련 계약서를 첨부하고 계약금액이 얼마인지 밝혀야 한다.
오무전기는 워싱턴사와 계약하지 못했다. 때문에 S사와 ‘600만 달러에 공사한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만들어 협회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오무전기 측은 “그때는 필증을 받기 위해 편의상 S사로부터 재하청받는다는 계약서를 작성했지만, 원래 오무전기와 S사는 워싱턴사로부터 받는 돈을 5대 5로 나눠 갖는 동업관계였다”고 주장한다. 오무전기와 S사가 하청-재하청이냐 아니면 동업관계냐는 오무전기 직원 피격 사건 이후 두 회사가 사업 정산 과정에서 다투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두 회사 간 문제에 국한되므로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라크에 진출한 오무전기는 촉박한 공사 기일을 맞추기 위해 78명의 기술자를 투입했다. 그런데 공사 개시 한 달여쯤인 11월30일, 진행해야 할 공사 구간을 둘러보기 위해 차를 타고 나갔던 직원들이 피격을 받아 직원 2명과 이라크인 운전사가 사망하고, 또 다른 직원 2명은 중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건은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할 정도로 미국에서도 비중 있게 다뤘다.
이 사고를 당한 뒤 오무전기 측은 사고 시 보상을 약속하는 보험 부문이 불분명하게 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 가운데 서사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사재를 털어서라도 보상해주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실천에 옮긴 다음인 지난 7월13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워싱턴사의 안전책임자는 한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이 사고는 안전장치 미비로 일어난 것이니 워싱턴사는 책임이 없다”는 발언을 했다. 서사장이 세상을 떠난 뒤 황장수 부사장은 과연 미국 기업이 보험에 들지 않고 공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산재보상 관련 뒤늦게 실마리 찾아
그제야 오무전기는, 미국에는 해외공사를 하다 재해를 입은 사람을 보상해주는 ‘산재보상에 관한 법(Defense Base Act)’이 있으며, 이라크전쟁을 앞두고 이 법은 원청·하청 회사를 불문하고 부상을 입은 사람은 모두 보상해주는 쪽으로 개정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워싱턴사가 송전선 공사를 시키면서도 보험에 들지 않았다면 워싱턴사는 이 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책임이 없다”고 한 워싱턴사의 주장은 거짓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포착해낸 것이다.
사세가 급속히 기운 오무전기 측은 뒤늦게 미국 변호사를 고용해 소송을 준비했다. 그런데 때마침 미국에서 핼리버튼 사건이 터졌다. 핼리버튼사는 석유재벌 그룹인데, 이 그룹은 작전 중인 미군에 보급품을 공급하고 공사도 해주는 KBR라는 자회사를 갖고 있다. 체니 미국 부통령은 부통령이 되기 전 핼리버튼의 CEO(최고경영자)였다. 최근 KBR사가 이라크에서 공사를 수주하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 이미 KBR에 공사를 맡기기로 돼 있었다는 폭로가 나온 것이다.
그로 인해 체니 부통령 때문에 특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미국이 떠들썩해졌다. 그러자 미 국방부는 국방계약감사관실(DCAA, Defense Contract Audit Agency)을 동원해 이라크 공사 발주에 대한 전면적인 감사에 착수했다. 오무전기는 이러한 미국의 변화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오무전기 측이 왜 피해자에게 산재 처리를 해주지 않느냐는 소송을 제기하면 워싱턴사는 소송에서 지거나 향후 공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무전기는 총격으로 인한 직원 사망과 부상, 그 후유증으로 인한 사장 사망이라는 호된 시련을 겪으며 이라크에 안전하게 진출하는 방안을 체득해왔다. 황부사장의 말이다.
“오무전기가 의욕에 넘쳐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덥석 이라크에 진출한 것은 불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의 실수를 막아주기 위해 있는 것이 정부(건설교통부)와 협회가 아닌가. 우리 정부는 무슨 일을 했는가.
자이툰 부대를 파병했으면 정부는 우리 기업을 위해서라도 미국에 할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할 말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라크 특수가 기대된다’며 풍선만 잔뜩 띄우고 있다. 그러나 오무전기 사건에서처럼 아무리 큰 풍선도 작은 바늘에 찔리면 한순간에 무(無)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이라크 진출에 대해 더욱 정교히 연구해 기업에 정보를 나눠줌으로써 제2의 오무전기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