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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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價로 석탄 수입... 한전은 봉이었다

97년 t당 12달러씩 비싸게 계약... 외국업체와 ‘검은 거래’ 의혹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7-02-01 1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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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1월 말, 서울 하얏트호텔 스위트룸. 데일리 미국 상무장관과 장영식 당시 한국전력사장(현 한양대석좌교수)이 마주 앉았다. 클린턴 대통령을 수행해 방한한 데일리 장관이 장전사장을 자신이 묵고 있던 호텔로 ‘호출’해 이뤄진 면담이었다. 한참 동안 장전사장을 쏘아보던 데일리 장관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장사장, 서닐(Sunnel)사가 계속해서 한전에 유연탄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랍니다.”

    “서닐사의 공급 가격이 너무 높아 현재 가격으로는 어렵습니다.”

    순간 데일리 장관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듯했다. 그러나 장전사장은 이에 개의치 않고 말을 계속했다.

    “이미 다른 회사들도 유연탄 가격을 낮추기로 한 마당에 서닐사만 예외로 둘 수는 없습니다.”



    서닐사는 83년 이후 연간 80만t의 유연탄을 한전에 장기 공급해 오고 있는 미국 알래스카주 광산회사로, 97년 공급가는 t당 47달러72센트였다. 단순 비교가 어렵긴 하지만 당시 가장 낮은 가격에 공급받고 있는 인도네시아 아다로사(社) 유연탄 가격이 34달러9센트라는 점을 고려하면 서닐사의 유연탄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게 장전사장의 판단이었다.

    97년 1300억원 바가지

    당시 한전은 데일리 장관의 노골적인 ‘청탁성’ 압력 외에도 서닐사 소유주인 무코스키로 인해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코스키는 알래스카주 상원의원(공화)으로 아시아태평양 소위 소속이어서 미국의 대한(對韓)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물이다.

    한전 내부에서는 서닐사가 83년 한전과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것은 무코스키 의원의 이런 영향력을 의식한 전두환 정부의 ‘배려’ 때문이었다는 설이 파다한 실정. 무코스키도 작년 8월 미국을 방문한 장사장을 만나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며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장전사장의 ‘뚝심’ 앞에서는 이런 직간적접인 압력도 소용없었다. 장전사장은 결국 자신의 뜻대로 서닐사가 공급하는 유연탄 가격을 t당 12달러 26센트 인하하는 데 성공했다. 데일리 상무장관도 장전사장이 한전 사장에서 퇴임한 뒤 자신이 전후 사정을 모르고 무리한 요구를 했다면서 장전사장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현재 한전과 유연탄 장기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회사는 서닐사를 포함해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 등 7개국 32개사. 장사장은 작년에 이들 회사의 가격을 t당 평균 5달러48센트나 인하했다. 작년 장기공급 계약에 의한 도입 물량이 1900만t(전체 도입물량의 81%)임을 감안하면 이 부문에서만 9081만달러(당시 환율로 1362억원)의 비용을 절감한 셈이다.

    이렇듯 공급가를 인하할 수 있었음에도 그동안 ‘비싼’ 가격을 주고 수입한 까닭은 무엇인가. 업계에서는 한전과 외국회사들간의 ‘검은 거래’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들 회사가 과거 및 현 정권의 실세를 등에 업고 유연탄 공급 가격을 의도적으로 높게 책정, 그 차액이 이들 실세에 흘러들어가지 않았는가 하는 의혹이 그것이다.

    장전사장은 이런 의혹에 대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장전사장은 더욱이 계약이 모두 5년 내지 10년 단위의 장기 계약이어서 ‘검은 거래’를 통해 엄청난 커미션 수수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한다. 그는 이런 의혹의 근거로, 자신이 거부하긴 했지만 현 정권 핵심 실세로부터 비슷한 요구를 받았다는 점을 든다.

    그러나 과거 유연탄 수입을 둘러싼 검은 거래 주장은 현재로선 어디까지나 정황 증거에 근거한 것일 뿐이고, 구체적인 증거는 없는 상황이다. 또 계약 체결 시기가 박정희정권 말기에서 김영삼정권 초기에 걸쳐 있는 등 먼 옛날 일이어서 이를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더구나 당시 한전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그동안 한전에 가장 많은 유연탄을 공급해 온 호주 유연탄 업계 사정에 밝은 한 국제변호사도 검은 거래 의혹을 부인했다. 이 변호사는 “만약 그런 의혹이 있다면 한국보다 훨씬 투명한 오스트레일리아 쪽에서 이미 문제가 됐을 것”이라면서 검은 거래 가능성을 일축했다.

    한전 관계자들은 과거에 장기 공급 계약을 맺었던 것은 발전용 유연탄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한다. 노태우정부 말기 연료처장을 역임했던 김응환씨는 “과거 한전 입장에서는 유연탄 도입을 위해 유연탄 공급사들에 사정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장기 계약이 오히려 유리했다”고 설명했다.

    한전 관계자들은 장전사장이 장기 공급 물량 가격을 인하할 수 있었던 것은 97년 동남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유연탄 수급상황이 변했기 때문이었다고 강조했다. 이 지역의 경기 위축으로 산업용 전력 수요가 급감함에 따라 발전용 유연탄 수요가 감소, 유연탄 가격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어서 장기 공급사들을 ‘압박’해 가격을 인하할 수 있었다는 것.

    한전은 실제로 작년에 현물시장 도입 물량을 대폭 확대, 449만t을 구입했다. 현물시장 가격이 장기 공급 계약가보다 t당 평균 8달러57센트나 낮아 3848만달러(577억원)를 절감할 수 있었다. 한전은 또 작년에 유연탄 수입 대금 지불 방식 개선을 통해 734만달러(110억원)의 비용을 절약하는 등 유연탄 도입에서만 총 1억3663만달러(2049억원)를 절감했다. 한전의 98년 유연탄 도입 물량이 97년(2205만3000t)에 비해 대폭 늘어난 2478만t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산이 7억8683만2000달러에서 7억8249만7000달러로 감소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여기에 또하나 변수로 등장한 것이 중국산 유연탄. 중국산 유연탄이 값도 싼 데다 최근 들어 질도 개선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중국산 유연탄도 장기 공급사들과의 가격 협상에서 유리한 카드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 실제 한전은 작년 11월11일 김대중대통령의 중국 방문 당시 합의한 대로 올해부터 중국산 유연탄 구매 물량을 연간 100만t에서 800만t으로 대폭 늘렸고, 앞으로도 매년 200만~300만t씩 구매 물량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한전 연료처 박영만부처장).

    그러나 아무리 좋은 상황이 주어졌다고 해도 이를 적극 활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법. 장전사장은 그런 기회를 십분 활용해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그는 유연탄 가격인하 협상 과정에 “많은 압력과 사내외의 반발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장전사장의 설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전사장은 “한전 내부의 ‘반발’로 연료처 직원들을 배제한 채 내가 직접 유연탄 가격 인하 협상을 했다”고 밝혔다.

    동남아 외환위기 뒤 가격인하 압박

    어쨌든 장전사장의 유연탄 도입가 인하는 결과적으로 기존 장기 공급사의 구조조정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됐다. 현재 인도네시아 키데코사(社)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삼척탄좌㈜가 대표적인 경우. 연간 200만t의 유연탄을 한전에 공급하는 키데코는 작년 공급가를 서닐 다음으로 많은 7달러50센트나 인하할 수밖에 없었다.

    삼척탄좌 국내영업팀 김명환차장은 “유연탄 공급이 과잉이기 때문에 한전의 가격 인하 요구에 응하는 대신 생산량을 늘려 수지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키데코는 작년의 경우 전년보다 100만t이 늘어난 500만t을 생산했고, 올해는 750만t으로 대폭 늘릴 계획이다.

    장전사장의 비용절감 노력은 결과적으로 최수병 현 사장의 짐을 크게 덜어주었다. 최사장이 장전사장의 방침을 그대로 이어받음으로써 상당한 경비 절감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전은 △장기 계약 가격 인하로 7800만달러 이상 △현물시장 구매 확대로 2657만달러 이상 △중국산 유연탄 신규 도입으로 2150만달러 이상 등 총 1억1607만달러 이상의 예산 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꽉 다문 입 “…”

    중도하차 배경에 묵묵부답 … 주위선 “실세 청탁 거부·장관과 갈등 때문”


    김대중정부 출범과 함께 한국전력 사장에 취임했으나 올 4월 정부와의 갈등으로 중도 하차했던 장영식 전 한전사장(사진)이 9월부터 한양대 석좌교수로 대학 강단에 복귀했다. 강의 과목은 자신의 전공인 에너지 경제.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라는 장전사장은 구조조정 등 한전 사장 재임시절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중도 하차한 것이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10월13일, 재임 중 자사주 매입으로 한전의 수익을 크게 늘린 공로로 최수병 현사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등 뒤늦게 자신의 ‘업적’을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고 있는 듯했다.

    그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전 민영화 작업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영화 뒤 전기요금이 인하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발전 원가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연료비 절감 시스템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

    장전사장과 관련해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부분은 ‘분명치 않은 이유로’ 한전 사장직을 물러난 배경. 정부는 올 4월 “한전 경영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그를 중도 하차시켰다. 그러나 한전은 작년 말 공기업 평가에서 최우수 공기업으로 평가됐다. 따라서 정부의 설명은 납득하기 어려웠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나 그는 당시의 일에 대해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었다. 다만 박태영 당시 산업자원부장관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는 사실은 간간이 내비쳤다. 그의 주변에서는 장전사장이 현 정권 핵심실세들의 ‘청탁’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한 것도 석연치 않은 경질배경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즉각 민영화” “서서히 하자”

    10월28일 법안 제출 … 정부-노조 대국민 홍보 한판 승부


    산업자원부가 10월28일 ‘전력산업 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법률안’을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정기국회에 제출하기로 함에 따라 정부와 한전 민영화를 반대하는 노조 및 시민단체들의 한판 대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노조는 이미 8월5, 6일 이틀에 걸쳐 파업 찬반투표를 강행, 전체 조합원 2만4659명 가운데 62.6%의 찬성으로 국회 상임위에서 이 법률안이 통과될 경우 파업에 돌입키로 결의해 놓은 상태. 1948년 국내 노조 결성 1호를 기록한 한전 노조가 파업을 결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앞둔 노조원들의 불안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산자부 전력산업 구조개편 방안의 핵심 골자는 현재 가동중인 발전소 및 건설중인 수화력발전소 42개소를 5개의 수화력발전회사에 배분하고 원자력발전소는 분리해 총 6개의 자회사로 분리한다는 내용. 이 가운데 한개는 연내 매각 작업에 들어가고 나머지 자회사들도 경쟁력을 갖추는 대로 연차적으로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한전 노조는 전력산업이 해외에 매각되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해지고 이에 따라 우리 상품의 원가 상승으로 수출경쟁력이 떨어져 경제위기 탈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며 전력산업 구조 개편을 반대하고 있다. 한전 노조 권원표위원장은 “공기업 민영화 원칙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며 “한전 민영화는 경제위기를 완전히 극복한 다음에나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자부는 한전 민영화와 관련한 노조의 반발을 민영화 이후 고용 불안 때문으로 파악하고 있다. 산자부 이기우 전력산업구조개혁팀장은 “영국의 경우 전력산업 민영화 이후 많은 근로자들이 직장을 떠났는데, 이는 독점으로 인해 근로자들이 그만큼 혜택을 받았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팀장은 그러나 “우리의 경우 당분간 매년 240만kw 이상의 전력수요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에 영국과 같은 대규모 정리해고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자부가 민영화 이후 고용 승계 보장 방안을 뒤늦게 들고나온 것도 이런 전망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전 노조의 고민은 정부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추진을 저지할 마땅한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점. 노조 집행부에서는 최악의 경우 파업까지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지만 그동안 온건 노선을 걸어온 한전 노조 입장에서 이같은 선택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한전 안팎의 관측이다.

    결국 한전 노조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산자부 법률안이 국회에 상정되면 국민과 여야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전력산업 해외 매각의 부당성을 적극 홍보하는 것. 한전 민영화를 둘러싸고 정부와 한전 노조 및 시민단체들의 치열한 홍보전이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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