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07

..

‘이유있는 자살’ 들어 보실래요?

  • 김정희 기자 yhong@donga.com

    입력2007-02-01 14:1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11월4일부터 24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오르는 연극 ‘아름다운 사인(死人)’은 뮤지컬이나 퍼포먼스 양식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연극’의 시도와 ‘시신들의 수다’라는 컬트적 내용 구성으로 눈길을 끄는 무대다. 검시실에 한날 들어온 여섯 구의 시신. 모두 여성들이며 사인은 자살이다. 이 시신들이 각자 목숨을 끊게 된 사연을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기꺼이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부조리한 사회를 고발한다는 게 극의 줄거리.

    시체들과의 대화를 유도하고 중간중간 상황을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검시관 ‘유화이’. 그녀는 자살한 이들을 ‘인생의 실패자’로 규정하고 우월감을 느끼며 대화를 진행해 간다. 그러나 그녀 역시 마지막 순간 의문을 품는다. “나는 과연 저들보다 행복하다고, 삶은 살아갈 만한 것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화이’라는 주인공의 이름, 자살한 시체들이나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이나 결국 ‘행복의 절대치는 거기서 거기’라는 주제, 둘 다 낯이 익다. 그렇다. 이 연극은 작품마다 ‘화이’라는 여주인공을 등장시킨 ‘스타 연출가’ 장진의 원작-연출작이다. 장진 감독은 이 작품 바로 직전 대학로에서 크게 성공한 자작 ‘허탕’을 통해서도 “감옥에 갇힌 수인이나 감옥 밖의 일반인이나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바 있다. 메시지는 다소 무겁지만, 적당한 재미가 요소요소 깔려 있어 부담이나 지루함 없이 극을 쫓아갈 수 있다.

    때로는 경쾌하고, 때로는 유장한 여러 장르의 노래가 뮤지컬처럼 삽입되고 음악적 장치가 무대 장면 곳곳과 치밀하게 결합된 ‘영화적 구성’ 역시 장진 감독의 장기. 극적인 오버 액션을 적절히 구사하며 무대에 활기를 주는 김지영 이용이 이미라 등의 출연진은 재기와 유머가 톡톡 튀는 장진씨의 대본을 무난히 소화하고 있다.



    검시관 역은 오랜만에 대중 앞에서 연기하는 탤런트 배종옥과 ‘드라큘라’ ‘라이프’ 등에서 주연을 맡은 뮤지컬 배우 김선경이 더블 캐스팅되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배종옥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검시관으로서 카리스마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데 비해 독창을 소화하기엔 가창력이 너무 딸리고, 김선경은 가창력은 검증된 데 비해 딕션은 배종옥의 ‘장악력’에 다소 처진다.

    특이한 것은 극에 등장하는 일곱 여성의 상대역을 탤런트 조민기씨 혼자 1인7역으로 맡는다는 점. 이 역시 연출가의 세심한 복선이 깔린 설정이다. “1인7역은 결국 ‘그놈이 그놈’이란 사실을 상징하며, 심지어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화이’의 남자까지도 여섯 시체들의 남자를 고스란히 닮아 있다. 이 ‘남자’는 시신들을 자살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 ‘사회’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다”는 게 장진씨의 설명. 공연 문의:진우예술기획(02-516-1501~2).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