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20년 6월 18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회의 도중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뉴시스]
“트럼프 ‘트루스소셜’ 메시지 주목해야”
서울 여의도의 한 베테랑 애널리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입’에 글로벌 경제와 증시가 요동치는 현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트루스소셜은 트럼프 당선인이 2022년 2월 창업한 SNS다. 트위터를 비롯한 주요 SNS 운영사들이 2021년 미국 의회 난입 사건을 문제 삼아 자신의 계정을 폐쇄한 데 반발해 새로운 플랫폼을 만든 것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트위터를 인수한 직후 계정이 복구됐지만, 최근까지도 트럼프 당선인은 트루스소셜을 통해 주요 정책 방향과 인선을 공개하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상 트럼프 당선인이 내비친 정책 기조에 산업 전망과 주가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내 산업계의 유불리 전망은 엇갈린다. 조선, 방위산업(방산), 우주항공, 바이오 분야는 트럼프 당선인의 경제 정책으로 수혜가 예상된다. 반면 반도체와 이차전지 산업은 트럼프발(發) 리스크로 먹구름이 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트럼프 랠리’가 현실화된 산업은 한국 조선업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결과가 나온 직후인 11월 7일 윤석열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미국 조선업에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며 “한국의 군함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고 유지·보수·정비(MRO)에서도 협력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K-조선업을 콕 짚어 언급한 배경에는 최근 국제 안보와 산업 생태계의 상황이 있다.
최근 중국이 항공모함을 비롯해 각종 전투함 건조에 박차를 가하면서 미국 해군이 양적으로 밀리고 있다. 자국 조선업 기반이 와해된 상황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 조선업에 손을 내민 것이다. 이미 한국 조선업의 미국발 해양 방산 호재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화오션은 8월에 이어 11월에도 미국 해군의 MRO 사업을 수주했고, 입찰 자격을 취득한 HD현대중공업 역시 미국 MRO 시장에 본격 뛰어들 전망이다. 국내 증시가 약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도 두 기업을 필두로 조선주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을 해양 방산 파트너로 지목한 배경에 대해 “현재 군함을 제대로 건조할 수 있는 역량과 인프라를 가진 나라는 한국과 일본, 중국 정도에 그친다”면서 “그중 중국은 미국과 건함 경쟁을 벌이고, 일본은 지나친 선형 표준화 부작용으로 군함 건조 능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한국 조선업이 소구력을 발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공약집에서 “미국 무기고는 텅 비었다”며 “미군에 기록적인 자금을 투입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최근 몸값이 높아진 한국 방산 업계가 1000조 원 규모의 미국 방산시장에 진출할 기회가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우주항공, 바이오 산업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다. 우주항공의 경우 대선 기간 트럼프의 최대 후원자였던 머스크의 역점 사업이다. 최근 그는 ‘스페이스X’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설 정부효율부 수장에 지명된 머스크는 트럼프 당선인의 지지를 등에 업고 우주항공 사업과 관련된 규제부터 손볼 가능성이 크다.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민간기업의 우주 사업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한 바 있다. 미국을 필두로 민간이 주도하는 뉴스페이스(new space) 산업이 확대될 경우 한국 항공우주 기업들도 성장 모멘텀을 맞이할 전망이다. 바이오 산업은 트럼프 당선인의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수혜주로 꼽힌다. 9월 미국 하원에서 중국 바이오 산업을 겨냥한 규제 법안 ‘생물보안법’이 통과됐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중국 때리기’에 적극적인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면 대중(對中) 규제 기조는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바이오 기업들의 위탁생산(CMO)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세를 키울 수 있다.
‘트럼프 리스크’ 직격탄 맞은 한국 증시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자본시장이 ‘트럼프 랠리’로 상승세를 탄 와중에 국내 증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반도체 산업 전망이 불투명해진 게 주된 배경이다. 2022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제정된 ‘반도체 칩과 과학법’(Chips Act·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은 대규모 생산 보조금과 연구개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 기업은 매우 부유하다”며 각종 지원을 줄이는 대신 ‘관세 폭탄’을 부과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트럼프 리스크’에 국내를 대표하는 삼성전자 주가는 약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수술대에 오를 가능성이 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관련해서도 국내 기업이 유탄을 맞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그간 미국 정부가 IRA에 따라 전기차 구입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후방 산업인 국내 이차전지 업계도 수혜를 입었다. 트럼프 리스크에 따른 국내 증시 냉각과 관련해 염승환 LS증권 이사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트럼프 당선인과 머스크의 최근 행보를 보면 국내 조선, 방산, 우주항공, 바이오 등이 수혜주로 꼽힌다. 다만 이들 종목은 국내 증시에서 주도주라고 보기 어렵다. 향후 미국 경제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국내 증시가 펀더멘털에 비해 과도하게 떨어지고 있다. 특히 올해 하반기 외국인들이 국내 주도주 삼성전자를 대거 팔면서 주가가 약세다. 트럼프 당선인이 향후 중국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관세 전쟁에 나서면 한국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겹쳤다. 다만 이처럼 국내 증시가 단기적으로는 위기이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본격 출범하면 중장기적으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내년 1월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고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국내 증시도 다시 상승 모멘텀을 맞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한국 경제에 위기인 동시에 기회라고 분석한다. 당장 트럼프 당선인이 강한 언사로 자국 우선주의 경제 정책, 해외 기업에 대한 관세 폭탄을 시사하고 있지만 ‘협상’을 위한 블러핑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지레 겁먹기보다 새로운 성장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은 “최근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후 중국과의 본격적인 통상 협상에 앞서 ‘엄포’를 놓고 있다”며 “기존 국제 무역 규범이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한국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이어 “트럼프 당선인의 엄포 대상은 어디까지나 한국이 아닌 중국”이라면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집권 초기 친기업 정책을 펴며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도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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