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일본 전역을 떠들썩하게 한 뉴스가 있었다. 유네스코가 사케(日本酒), 쇼츄(焼酎) 등 일본의 전통 술 빚기 문화에 대해 인류무형문화유산 등록을 권고한 것이다. 이 내용은 12월 2~7일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위원회에서 공식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실제 등재가 이뤄지면 일본의 23번째 세계문화유산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일본의 전통 술 역사가 우리 고대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사케라는 단어의 어원부터 보자. 사케는 일본에서 술이라는 보통 명사로도 사용되는 단어다. 여기서 사케라는 말은 교토 사가신사(佐牙神社)에서 유래했다. 서기 573년에 세워진 이 신사는 백제 근초고왕 시절 방문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인 수수보리(또는 수수허리, 스스코리)를 술의 신으로 모신 곳이다. 그는 일본 왕실에 양조법을 전했다고 알려졌으며, 당시 일왕 오진 덴노(応神天皇)가 수수보리가 빚은 술에 아주 기뻐하며 취했다는 내용이 일본 역사서 ‘고사기’에 기록돼 있다. 일본 법정대(法政大) ‘물질과 인간의 문화사(ものと人間の文化史)’에 따르면 고사기에 등장하는 백제인 수수보리는 한국어 술고리에서 온 것으로 해석된다. 사가신사의 사가라는 단어 역시 한국어 ‘삭히다’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많다. 즉 사케는 한반도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과 한반도 관계의 흔적은 사가신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서기 701년 세워진 교토 사케마을 후시미 주변에 있는 마츠오 다이샤(松尾大社)도 특별하다. 다이샤는 말 그대로 신사의 상위급인 거대한 신사를 의미한다. 마츠오 다이샤의 주인공 역시 한반도와 깊은 연관성을 가진 씨족 하타 가문(秦氏)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따르면 이 가문은 서기 283년에 백제 120현 사람을 일본으로 데려왔으며, 그는 백제인 궁월군(弓月君)을 선조로 한다. 백제인이 아니라 삼한 중 하나인 진한, 혹은 신라에서 왔다는 기록도 있다. 확실한 것은 이 하타 가문이 가진 양조법이 차별화됐고, 이들이 신에게 바치는 술을 전담했다는 점이다.
주옥신사에서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는 백제사(百済寺)라는 절이 있다. 606년 일본에 불교를 적극 전파한 쇼토쿠 다이지(聖徳太子)와 고구려 승려 혜자가 이곳에서 불가사의한 광경을 목격한 뒤 세운 절로 알려졌다. 백제사에서는 현재 백제사준이라는 일본식 청주가 주조되고 있다.
일본 전통 술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실시되는 이유는 세세한 기록에 있다고 본다. 구체적인 기록이 공간과 물질로 이어지는 데다, 현재도 실생활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적절히 보존·계승했다는 점에서 우리 모습을 뒤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한국 역시 조선시대 한글로 기록된 조리서 ‘음식디미방’과 ‘주방문’, 그 외에 수많은 농업서적에 우리 전통 술을 기록한 내용들이 보인다. 그러나 시중에 유통되는 술에서는 대부분 명맥을 찾아보기 어렵다. 즉시 비즈니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전통 가치와 철학이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본은 돈 이상의 국제적 신뢰와 명성을 갖게 됐다. 또 이번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점으로 일본 전통 술은 비즈니스적으로 더 큰 확장성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사케를 비롯한 일본 전통 술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그들이 가진 진정성이 세계적으로 통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연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사케를 비롯한 일본 전통 술 빚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전망이다. [ETTYIMAGES]
사케 어원, 한국어 ‘삭히다’서 출발
일본식 청주인 사케, 일본식 증류주인 쇼츄는 어떤 맥락에서 유네스코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일까.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전통 술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전통 술을 둘러싼 문화와 제도, 기술이 특별할 것, 그러면서도 인권 공동체적 관계와 지속가능 개발에 대한 대응이 있을 것 등이다. 일본 전통 술은 일본인 특유의 세심함, 정중함, 그리고 인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한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일본의 전통 술 역사가 우리 고대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사케라는 단어의 어원부터 보자. 사케는 일본에서 술이라는 보통 명사로도 사용되는 단어다. 여기서 사케라는 말은 교토 사가신사(佐牙神社)에서 유래했다. 서기 573년에 세워진 이 신사는 백제 근초고왕 시절 방문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인 수수보리(또는 수수허리, 스스코리)를 술의 신으로 모신 곳이다. 그는 일본 왕실에 양조법을 전했다고 알려졌으며, 당시 일왕 오진 덴노(応神天皇)가 수수보리가 빚은 술에 아주 기뻐하며 취했다는 내용이 일본 역사서 ‘고사기’에 기록돼 있다. 일본 법정대(法政大) ‘물질과 인간의 문화사(ものと人間の文化史)’에 따르면 고사기에 등장하는 백제인 수수보리는 한국어 술고리에서 온 것으로 해석된다. 사가신사의 사가라는 단어 역시 한국어 ‘삭히다’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많다. 즉 사케는 한반도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츠오 다이샤(松尾大社)에는 일본 각지 사케 통이 전시돼 있다. [명욱 제공]
한국 전통 술 기록·명맥 이어가야
그 밖에도 우리의 고대 양조법이 일본으로 흘러갔다는 흔적이 많다. 또 다른 하나는 주옥신사(酒屋神社), 일본 발음으로 사카야신사가 있다. 사가신사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이곳은 한반도에서 가져온 술을 기리는 곳이다. 신공황후(神功皇后)라는 인물이 삼한정벌 이후 한반도에서 직접 술항아리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사실 관계에 대한 논란이 있어 아직 이름을 널리 알리지 못하고 있다.
주옥신사에서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는 백제사(百済寺)라는 절이 있다. 606년 일본에 불교를 적극 전파한 쇼토쿠 다이지(聖徳太子)와 고구려 승려 혜자가 이곳에서 불가사의한 광경을 목격한 뒤 세운 절로 알려졌다. 백제사에서는 현재 백제사준이라는 일본식 청주가 주조되고 있다.
일본 전통 술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실시되는 이유는 세세한 기록에 있다고 본다. 구체적인 기록이 공간과 물질로 이어지는 데다, 현재도 실생활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적절히 보존·계승했다는 점에서 우리 모습을 뒤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한국 역시 조선시대 한글로 기록된 조리서 ‘음식디미방’과 ‘주방문’, 그 외에 수많은 농업서적에 우리 전통 술을 기록한 내용들이 보인다. 그러나 시중에 유통되는 술에서는 대부분 명맥을 찾아보기 어렵다. 즉시 비즈니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전통 가치와 철학이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본은 돈 이상의 국제적 신뢰와 명성을 갖게 됐다. 또 이번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점으로 일본 전통 술은 비즈니스적으로 더 큰 확장성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사케를 비롯한 일본 전통 술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그들이 가진 진정성이 세계적으로 통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연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