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 참석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폿’과 무대에 오르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기아 배당금 증가세 두드러져
현대차 배당액은 정 회장 취임 이듬해인 2021년을 기점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주당 배당액이 2년 사이 3000원에서 7000원으로 133.33% 증가한 것이다(그래프 참조). 현대차는 2015년 연 배당 정책에서 반기 배당 정책으로 전환한 이래 5년 동안 주당 배당액을 4000원으로 동결했다. 같은 기간 주가가 16만9000원에서 12만500원으로 하락한 만큼 배당률은 증가했으나, 물가인상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배당금은 줄어들었다.2년간 주당 배당액이 1000원에서 3500원으로 250% 증가한 것이다. 10년 사이 배당금 증가율은 400%를 넘어섰다.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숙제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의 주당 배당액이 늘어나면서 정의선 회장 몫의 배당금도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정 회장은 5월 15일 기준 현대차 보통주 559만8478주(2.65%), 우선주 298주를 갖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최대주주로 749만9991주 (20%)를 보유 중이다. 지난해 기준 두 기업에서의 배당수익만 각각 391억9114만 원, 427억4994만 원에 달한다. 정 회장은 기아 주식 역시 706만1331주(1.74%)를 보유하고 있어 지난해 247억1465만 원 배당을 받았다. 세 기업을 통한 배당수익만 1000억 원이 넘는 셈이다. 정 회장이 현대위아, 이노션, 현대오토에버 등 여러 계열사의 지분도 갖고 있어 실질 배당액은 이보다 더 클 것으로 전망된다.시장에서는 현대차가 올해 역대급 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배당수익 역시 향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현대차는 4월 25일 경영실적 콘퍼런스콜에서 1분기 3조5927억 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달성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전년 동기 대비 86.3% 증가한 액수로 1분기 역대 최고 실적이다. 이 덕분에 2009년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이후 처음으로 상장사 분기 영업이익 1위 달성이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차량용 반도체 및 기타 부품의 수급 상황이 개선되면서 차량 판매 대수가 증가한 점이 실적 개선을 이끈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의 주주친화 정책 제고 방침 역시 배당 확대 전망에 힘을 싣는다. 현대차는 올해를 기점으로 반기 배당에서 분기 배당으로 배당 주기를 단축할 계획임을 밝혔다. 현대차는 2015년 연 배당에서 분기 배당으로 전환하며 주당 배당액을 23.75% 늘린 바 있다. 현대차 주주들이 이번 분기 배당 결정에 기대를 보이는 이유다. 현대차 측은 “향후 연간 연결 지배주주 순이익의 25% 이상을 배당하겠다”는 입장이다.
행동주의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폴 싱어 회장. [세계경제포럼 제공]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가 관건
현대차그룹도 그간 순환출자 구조 해소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2018년 자동차 부품사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통해 지배구조를 개편하려 했으나 엘리엇과 글로벌 의결자문사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들은 두 기업의 합병 비율이 현대글로비스 주주들에게 유리하다며 반발했다. 당시 현대모비스 대주주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었고, 현대글로비스 대주주는 정의선 부회장이었다. 경영 승계를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현대차그룹은 이후에도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려 했으나 지난해 1월 이를 철회했다. 당시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글로벌 경기가 꺾이기 시작하면서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탓이다.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은 11.72%다. 당시 재계에서는 정 회장이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을 통해 4000억 원 상당의 자금을 확보하고 이를 지배구조 개편에 사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바 있다.
정 회장이 지배구조를 강화하려면 지분 확대와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 현대차그룹의 실질적 지주사인 현대모비스에 대한 정 회장의 지분은 0.32%에 불과하다. 현대모비스 시가총액이 20조 원에 육박하는 만큼 보유 지분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들어간다. 정 명예회장으로부터 관련 지분을 상속받을 경우 막대한 상속·증여세를 내야 해 이를 위한 재원도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이 최근 배당 정책을 확대한 배경에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실탄’ 마련 필요성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현대차의 경우 전기차 산업 등에 대단히 큰 투자 계획을 갖고 있는데, 당장 배당을 우선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상식과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는 만큼 승계를 위한 재원 마련 목적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과거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과정에서 시장 반대에 직면한 적이 있는 만큼 시장친화적인 배당 정책을 통해 난국을 풀어가려는 의도가 있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 교수는 “합병 이슈의 경우 승계 작업을 위한 행보가 아닌지를 비교적 쉽게 입증할 수 있지만, 배당 확대는 시장도 원하는 분위기다 보니 그 나름 명분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경영권 승계가 원활히 마무리되려면 배당 외에도 현대엔지니어링의 IPO를 재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대모비스 지분 확대 과정에서 엄청난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다각도로 자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엔지니어링이 지난해 실적 악화에도 배당 성향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IPO 재추진을 위한 포석 쌓기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033억 원으로 전년 동기(2480억 원) 대비 58.35% 급락했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부동산시장에 한파가 불면서 업계 전반이 위축된 데 따른 결과다.
“현대엔지니어링 IPO 내부 논의 없어”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현금 배당 성향을 직전년도(31.81%)보다 끌어올려 40.18%라고 발표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등을 겪으면서 부동산업계가 현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과는 반대되는 행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에 대해 “IPO를 염두에 두고 주주친화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상장을 앞뒀던 2019년 배당 성향을 63.25%까지 끌어올린 바 있다.현대엔지니어링 측은 IPO를 염두에 둔 결정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IPO에 관해 따로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배당 성향은 순이익 추이를 고려해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정 회장은 다방면으로 재원 마련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는 2021년 미국 로봇개발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는데, 당시 정 회장이 관련 지분 20%를 직접 투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이 역시 지배구조 개편을 염두에 둔 행보로 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꼬인 실타래 풀기’ 리포트에서 “정 회장이 보스턴다이내믹스에 2400억 원을 투자해 지분 20%를 확보했는데 향후 IPO 시 일부 투자금을 회수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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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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