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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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절한 정의감에서 비롯된 표절 의혹 제기 지양해야

[미묘의 케이팝 내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3-05-2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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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8일 아이유에 대한 고발장이 경찰에 접수됐다. 그의 히트곡 6곡이 표절이라는 내용이다. 표절 송사는 일반적으로 표절을 당한 원저작권자가 표절을 행한 저작자를 상대로 이뤄진다. 이번 고발은 저작자가 아닌 일반인이 가창자를 상대로 한 것이다. 소속사의 입장 표명과 비판적 여론 속에서 각 곡 작곡자들 역시 표절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표절은 오래된 콤플렉스와도 같다. 한국은 영미권 중심의 대중음악시장에서 변방에 위치해 해외의 경향을 수입해 재가공하는 입장이었고, 지나친 모방이나 표절이 이뤄진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오늘날 K팝 위상 뒤에 가려진 어두운 역사라고도 하겠다. 대중에 의해 제기된 표절 의혹이 공식화된 사례도 드물지 않다. 표절을 감시하는 대중의 존재가 표절로 얼룩진 시장에서 제어력으로 작용했다는 설명도 가능할 듯하다.

    일반인으로부터 표절 의혹이 있다며 고발당한 아이유. [EDAM엔터테인먼트 제공]

    일반인으로부터 표절 의혹이 있다며 고발당한 아이유. [EDAM엔터테인먼트 제공]

    제3자가 나서는 비상식적 상황

    그러나 이 콤플렉스가 작동하는 방식에는 깔끔하지 못한 구석도 있다. 1990년대까지 해외 음악과 매체를 접하는 이는 한정적이었다. 해외 매체의 글을 옮겨 적기만 해도 음악평론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던 시절이다. 그런 유의 음악평론가는 문화 개방과 초고속 인터넷 앞에서 입지를 잃었다. 점차 더 많은 이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PC통신과 인터넷상에서 급격히 많아진 ‘표절 의혹’은 음악적 지식의 깊이와 넓이를 뽐내기 위한 일종의 ‘놀이’로서 성격 또한 갖고 있었다. “나는 시시한 한국 음악보다 더 나은 것을 접하고 있으며, 한국 음악은 그것들을 베껴대고 있음을 알고 있다” 같은 과시 문화였다. 전부 무의미한 유희였다고 치부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지금 인터넷 문화의 많은 부분이 2000년대 전후에서 그 계보를 찾아볼 수 있고, 표절 의혹 제기 행위 역시 일정 부분 그렇다.

    2000년과 2023년은 다르다. K팝은 내수시장을 벗어났다. 해외 창작자도 K팝을 손쉽게 접하고, 유사시에는 국내 대중이 그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직접 연락할 수도 있다. 해외의 ‘숨겨진 원곡’을 누구나 찾아 들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과거처럼 원작자가 몰라서 넘어가는 시대는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제기된 표절 의혹에 대해 해외 ‘원저작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표절이 아니라는 의견을 밝힌 사례도 숱하다. 또는 악곡의 표절뿐 아니라, 이미지나 의상 등이 유사성을 보였을 때 해외 창작자가 문제제기를 한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오래된 곡을 표절하고 넘어갈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최근 대중음악시장에서 논란이 된 에드 시런의 표절 의혹은 1984년에 사망한 마빈 게이의 1973년 곡과의 유사성에 관한 것이었다.

    2000년 전후 일부 누리꾼이 식자이자 감시자를 자처했던 근거는 모두 사라졌다. 그럼에도 표절 의혹 제기 행위는 인터넷 문화의 일부로 살아남았다. 부적절한 정의감이나 자신감, 또는 악의를 새로운 근거로 취하면서 말이다. 저작자도 아닌 이가 가창자를 상대로 표절을 고발하는 비상식은 그것이 어디까지 잘못 뻗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불과하다. 표절을 당한 이가 표절작을 접했을 때는 그것이 표절임을 제3자보다 훨씬 잘 알 수 있다. 표절작을 접할 수 있는 정보력 역시 피해자와 제3자 사이에 차이가 있지 않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표절은 당사자들의 일이다. 그 ‘선을 넘으면 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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