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들이 에코프로를 2000년대 초 닷컴버블의 상징인 새롬기술(현 솔본)에 빗대고 있다. [네이버 증권 에코프로 종목토론실, 에코프로 제공]
2차전지 소재 기업 에코프로그룹의 최근 주가 추이를 두고 개인투자자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지주사 에코프로 주가(종가 기준)는 4월 11일까지만 해도 장중 최고점인 82만 원을 찍었다(그래프 참조). 하지만 그 뒤로 하락세를 나타내기 시작하더니 5월 15일 한때 50만 원 선이 무너졌다. 에코프로가 2000년대 초 닷컴버블의 상징과도 같은 무료 인터넷 전화(다이얼패드) 서비스 기업 새롬기술(현 솔본)에 비견되는 이유다.
유력하던 MSCI 지수 편입도 불발
새롬기술은 1999년 8월 공모가 2300원으로 코스닥에 상장돼 이듬해 2월 장중 30만 원을 돌파할 정도로 단기간에 주가가 폭등한 종목이다. 1999년 12월 주당 500원으로 한 차례 액면분할을 거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6개월 만에 주가가 수백 배 뛰어오른 셈이다. 그러나 새롬기술의 상승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03년 12월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며 주가가 3000원대로 곤두박질 쳤고 개인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에코프로 주가가 고점 대비 30%가량 떨어진 가운데 새롬기술 등 과거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과열에 장사 없다”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5월 들어 에코프로그룹 주가를 끌어내린 건 연이은 악재다. 5월 11일 장 마감 직전인 오후 3시쯤 이동채 전 에코프로 회장의 항소심 실형 선고 및 법정 구속 소식이 전해진 게 그중 하나다. 자사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1억 원 상당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불구속기소된 이 전 회장은 앞선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런데 이날 열린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1심을 뒤집고 이 전 회장에게 징역 2년에 벌금 22억 원, 추징금 11억872만 원을 선고한 것이다. 또 재판부는 “도주 우려가 크다”며 이 전 회장을 법정 구속했다.
이튿날인 5월 12일에는 시장의 기대를 모았던 에코프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한국지수 편입도 끝내 불발됐다. 전 세계 투자의 기준이 되는 이 지수에 포함되면 기업에 흘러드는 패시브 자금(지수를 추종하는 외국인 투자자금) 규모가 늘어난다. 지수 편입은 기업의 전체 시가총액 및 유동 시가총액으로 정해지는데, 연초부터 개인투자자들의 강한 매수세가 이어진 에코프로가 유력 후보로 거론돼왔다. 하지만 에코프로의 MSCI 지수 편입은 최종 무산됐다. 심사 기준 중 하나인 ‘극단적인 주가 상승’ 조항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증권사들 매도·중립 보고서 쏟아내
BNK투자증권, 교보증권, 하이투자증권, 삼성증권, 유안타증권, 대신증권 등 6개 증권사도 최근 에코프로비엠에 대한 기존 매수 의견을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단기간에 급등한 주가를 경계하는 기관과 외국인투자자의 동반 매도세도 나타났다. 이들의 대량 매도는 에코프로그룹 주가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에코프로 주가가 최고점을 찍은 4월 11일부터 5월 17일까지 기관과 외국인은 에코프로를 각각 1325억1253만 원, 8400억8592만 원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에코프로비엠은 57억5506만 원, 1782억5287만 원 순매도했다. 이들은 가진 주식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공매도도 크게 늘렸다.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은 5월 2~12일(5월 17일 기준 공개 범위) ‘코스닥 공매도 잔고 상위 50종목’에 하루도 빠짐없이 이름을 올렸다. 5월 4일에는 에코프로 공매도 잔고액이 9107억 1220만 원으로 1조 원에 육박했다.
이 밖에 주가 고점 신호로 인식되는 임원 및 대주주의 주식 매각도 4월 이래 계속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문호 에코프로비엠 사장은 5월 2일 자사주 2000주를 주당 25만4000원에 장내 매도했다. 약 5억800만 원 규모로 4월 에코프로비엠 임직원에게 지급된 자사주 상여금의 절반가량을 처분한 것이다. 박모 에코프로 경영관리본부장(전무)은 그보다 앞선 시점인 4월 13일 자사주 1924주를 장내 매각했다. 처분 단가는 주당 60만7604원이며 매각 대금은 약 11억6903만 원이다. 에코프로비엠 2대 주주이자 이 전 회장의 가족 기업인 이룸티엔씨도 4월 11일부터 26일에 걸쳐 603억7543만 원 상당(20만9000주)의 에코프로비엠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손절했다”… 흔들리는 개인투자자
2021년 9월 9일 경북 포항시와 에코프로의 대규모 투자 양해각서(MOU) 체결식에 참석한 이동채 전 에코프로 회장(가운데). [뉴스1]
포털사이트 종목토론실과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에는 “손실폭이 더 커질까 무서워 전부 털고 나왔다”거나 “유튜브 보고 뛰어들었는데 안 되겠다 싶어 손절했다”는 개인투자자의 반응이 적잖다. 반면 버티고 있는 투자자들은 “다시 주가를 끌어올릴 방법은 매수뿐”이라며 “매수 금지”를 주문하고 있다.
에코프로그룹은 이 같은 시장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특히 이 전 회장 구속으로 경북 포항시 생산 공장 건설 등 사업 확장에 차질을 빚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에코프로는 5월 11일 홈페이지 공고문을 통해 “지난해 3월 이 전 회장이 대표직에서 사임한 이후 에코프로와 에코프로 가족 기업은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고,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강화해왔다”며 “이번 항소심 판결이 에코프로 가족 기업의 주요 사업 및 해외 투자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에코프로 홈페이지에 5월 11일 올라온 이동채 전 회장 항소심 판결 관련 공고문. [에코프로 홈페이지 캡처]
“외형만 그럴 듯, 주가 더 떨어져야”
악재에 따른 주가 하락도 단기적 조정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에코프로 관계자는 5월 17일 통화에서 “1분기 실적에서 알 수 있듯이 (에코프로그룹의) 성장 여력은 충분하기에 투자자들이 걱정하는 주가 하락세도 일시적 현상일 것으로 본다”면서 “향후 실적을 통해 기업가치를 증명해나가겠다”고 밝혔다.이른바 ‘배터리 아저씨’로 불리는 박순혁 전 금양 홍보이사도 최근 악재가 에코프로그룹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전 이사는 “삼성, SK 등도 기업 총수가 구속된 적이 있지만 기업 실적이나 성장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며 “이 틈에 공매도 세력이 기승을 부리는 게 위험할 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초체력으로만 따지면 에코프로그룹 주가 하락이 당연하다고 평가한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주가가 시장 수요가 아닌 기업 펀더멘털과 비례한다고 가정하면 에코프로그룹 주가는 지금보다 더 떨어지는 게 맞다”며 “국내 최초로 (양극재 생산 핵심 원료인) 전구체를 국산화하는 등 수직계열화를 이뤘다고 하는데 외형만 그럴듯할 뿐, 실제로는 대부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수준 높은 수직계열화에 성공했다면 에코프로그룹이 중국 전구체 생산 기업 GEM과 합작사를 설립할 이유가 없다”면서 “이 점으로 미루어 에코프로그룹의 기술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보긴 어렵고, 에코프로머티리얼즈 등 비상장 자회사가 자체적으로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는지 등 여전히 검증할 부분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