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호 ‘물고기병원’ 수산질병관리원장. [지호영 기자]
‘물고기병원’ 수산질병관리원장인 최상호(43) 수산질병관리사가 수조에서 여유롭게 헤엄치는 금붕어를 가리키며 환하게 웃었다. 수산질병관리사는 한마디로 ‘물고기 전문의’다. 2004년 수산생물의 질병을 전문적으로 다룰 인력을 양성하고자 도입됐다. 강릉원주대, 군산대, 부경대, 선문대, 전남대, 제주대에 있는 수산생명의학과를 졸업하고 해양수산부가 시행하는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수산질병관리사가 될 수 있다. 수산질병관리사는 대부분 양식장이나 수산물 검역시행장에서 일한다. 전국 수산질병관리원은 50곳 정도지만 반려물고기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곳은 드물다.
마흔 살에 시작한 물고기의사 꿈
최 원장은 지난해 수산질병관리원을 연 ‘개원 물고기의(醫)’이자 목사다. 어릴 적 초교 근처 청계천 ‘수족관 거리’에서 처음 물고기 사랑에 빠졌다. 초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사준 관상어 책에 푹 빠져 물고기 이름을 외우고 다녔다. 최 원장은 본래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신학대학원을 거쳐 목사가 됐다. 결혼 후 목사로 살면서도 어린 시절 좋아한 물고기에 대한 애정을 늘 가슴 한편에 품고 있었다. 2019년 마흔 살 나이로 군산대 수산생명의학과에 편입했다. 2년 동안 주말부부로 지내며 학업에 열중한 최 원장은 졸업과 동시에 수산질병관리사 시험에 합격했다. 지난해 4월 ‘물고기병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서울 시내 유일의 수산질병관리원을 열었다. 11월 7일 서울 노원구 물고기병원에서 최 원장을 만나 반려물고기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우는 법에 대해 물었다.물고기가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아직은 생소하다.
“과거엔 개와 고양이가 아플 때 동물병원에서 전문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없었다. 물고기도 수산질병관리사로부터 치료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이가 아직 많지 않다. 수산질병관리사는 해양포유류와 양서류, 어류, 해조류를 진료한다. 수의사도 물고기를 진료할 수 있으나, 대개 파충류와 포유류 등 육상동물을 진료하는 편이다. 육상동물과 비교해 어류는 면역체계, 생리구조에 차이가 있다. 수산질병관리사는 어류만 전문적으로 진료하고 치료하다 보니 특화된 전문성을 쌓을 수 있다.”
내원하는 ‘환어(患魚)’가 많나.
“환절기엔 환어가 급증한다. 물고기는 급격한 온도 변화에 적응하고자 표피에서 점액을 분비하는데, 여기에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 탓에 면역력이 약해지기 쉽다. 반려물고기를 진료하는 곳이 극히 적다 보니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문의 전화가 쇄도한다. 다만 비대면 물고기 진료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병명이나 치료 방법을 특정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므로 물고기의 서식 환경을 개선하라거나 근처 동물병원에서 약을 구입해 먹이라는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조언할 수밖에 없다. 물고기와 물고기를 키우는 이에게 더 큰 도움을 주지 못해 아쉽다.”
“물고기 특성에 맞는 신속한 치료 중요”
물고기병원에서 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회복중인 베타 ‘용이’(왼쪽)와 치료 후 퇴원을 앞둔 금붕어 ‘짹짹이’. [지호영 기자]
“물고기가 사는 물속엔 다양한 세균이 있다.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성 세균은 물론, 암모니아를 분해해주는 이로운 세균도 있다. 문제는 물고기의 면역력이 떨어질 때다. 세균이 쉽게 침투해 질병을 일으키는데, 물고기는 육상동물과 달리 림프절이 없어 큰 문제가 된다. 세균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방어막 구실을 하는 림프절이 없는 탓에 전신 감염과 패혈증 가능성이 높다. 야생에서 채집하거나 야외 양어장에서 키우는 어종은 기생충에 감염된 경우가 많다. 이런 물고기가 수조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물 양은 적은데 기생충이 늘면 위험성이 높아진다. 기생충에 시달리는 물고기는 아가미에 상처가 나기 쉬워서 허혈성 빈혈, 2차 세균 감염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기생충에 세균성 질병까지 겹치면 치료가 까다로워진다.”
물고기는 치료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물고기의 특성을 파악해 신속하고 정확히 치료해야 한다. 가령 주사를 놓을 땐 물고기를 수조에서 꺼내 눈을 가려야 한다. 주변이 깜깜해지면 물고기가 잠시 멈칫하고 움직임이 둔해지는데 그때를 노려 빠르게 주사해야 한다. 물고기 수술에서 주의할 점은 출혈이다. 가령 종양이 커지면 그 안에 혈관이 자라나 떼어낸 후에는 출혈이 심하다. 육상동물과 달리 물고기는 상처에 딱지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방치하면 과다 출혈로 죽는다. 그래서 바이폴라보비(bipolar bovie: 전기소작기)라는 기구로 환부를 태워 출혈을 멎게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표피를 질소가스로 얼려 일종의 딱지를 만들어주는데, 새살이 돋아날 때까지 환부를 보호하는 것이다.”
물고기 건강 관리법은 무엇인가.
“우선 평소 물고기의 면역력을 잘 키워야 한다. 그리고 수조 속 수질을 깨끗이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다. 물고기 질병의 주된 원인인 병원성 세균이 많이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필요하면 최대한 빨리 ‘골든타임’에 수산질병관리원을 찾아 치료받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물고기를 키울 때 보호자가 어종에 대한 정보를 알 필요가 있다. 물고기 종류에 따라 사육환경이 천차만별이다. 흐르는 물에서 사는 물고기가 있는가 하면, 정체된 물을 좋아하는 물고기도 있다. 물의 용존산소량이나 수소이온농도도 어종에 따라 잘 관리해야 한다.”
“물고기도 가족이자 하나의 생명체”
최 원장은 집에서 ‘럭키’라는 이름의 다섯 살배기 메기를 키운다. 반려물고기를 키우는 사람 중에는 이처럼 이름을 붙여주고 가족처럼 여기는 경우가 적잖다. 어종, 개체마다 성격이 다르고 사람과 교감할 수도 있다는 게 ‘애어인(愛魚人)’의 생각이다. 그만큼 키우던 물고기를 잃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도 크다. 최 원장은 “가족같이 키우던 아이(물고기)를 잃어서 힘들어하는 이를 많이 봤다”면서 “나도 수산질병관리사인 동시에 애어인이자 목회자이기에 물고기의 죽음을 알릴 때 보호자를 최대한 위로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기생충과 병원성 세균에 동시에 감염돼 면역력이 떨어진 물고기는 입원해 치료를 받아도 예후가 좋지 않다. 이런 경우 내원해 주사를 놓을 때부터 건강한 물고기와는 느낌이 다르다. 상태가 좋은 물고기는 주사를 놓으면 근육이 바늘을 꽉 잡는 촉감이 온다. 반면 마치 스펀지에 주삿바늘을 넣는 느낌이 들면 염증이 온몸에 퍼졌다는 방증이다. 혈관에서 혈장이 새어나온 것이다. 치료하기 어려울 것 같은 아이의 경우 앞에서 기도도 많이 하고 특별히 정성껏 치료한다. 물고기가 기적적으로 살아날 때 큰 보람을 느낀다.”
바람직한 반려물고기 문화 정착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물고기를 키우는 비용을 줄이는 데만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 내원 물고기 중 상당수는 치료와 진료에 구입한 비용의 10배 이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대다수 보호자가 ‘돈이 많이 들어도 상관없으니 살려달라’고 한다. 물고기의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경제적 문제도 간과할 순 없지만, 물고기도 사람과 공존하는 가족이자 하나의 생명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앞으로 포부는?
“물고기는 어종에 따라 생김새와 생태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편견과 달리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물고기도 적잖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것이 물고기의 매력이다. 반려물고기 진료 분야에서 최고 전문성을 갖춘 수산질병관리사가 되고 싶다. 물고기의 건강한 삶은 물론, 물고기를 키우는 사람도 행복할 수 있도록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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