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부동산관계장관회의’에서 “과도하게 상승했던 주택 가격의 하향 조정은 불가피하지만 최근의 가파른 금리인상 추세와 결합된 급격한 시장 냉각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실제로 부동산시장에는 이미 경착륙 경고등이 켜졌다. 집값 하락이 갈수록 폭을 키우면서 역대 최대 하락폭 기록 경신이 잇따르고, 거래량 역시 역대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치며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이로 인한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경색도 우려할 수준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자칫하다가는 국내 경제가 외환위기 이상의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는 뇌관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추 부총리는 이를 타개하기 위한 카드로 “중장기적 주택 수급 안정, 서민·실수요자를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맞춤형 대응 방안”을 내놨다. 이른바 ‘11·10 대책’이다.
규제지역 과감한 해제
이번 대책의 방향은 크게 세 갈래다. ①실수요자 중심의 주택 수요 살리기 ②주택 공급 기반인 건설업체의 위축 방지를 위한 유동성 지원 ③서민·중산층의 주거 부담 경감이다. 이를 위해 이번 대책은 대부분 문재인 정부 때 묶었던 규제들을 완화하거나 철폐하는 데 초점이 맞춰 있다.주택 수요 살리기로 맨 먼저 제시된 방안은 과감한 규제지역 해제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6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규제지역 해제 조치를 단행했다. 이번에는 나머지 지역 가운데 서울과 서울에 연접한 경기 △과천 △성남 분당·수정 △하남 △광명 등 4곳을 제외한 나머지 규제지역을 모두 해제했다. 이에 따라 투기과열지구에서 경기 △수원 △안양 △안산 단원 △구리 △군포 △의왕 △용인 수지·기흥 △화성 동탄2 등 9곳이 풀렸다.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였던 지역 중에는 인천 중·동·미추홀·연수·남동·부평·계양·서구와 세종이 모두 해제된다. 또 경기에서는 △수원팔달·영통·권선·장안 △안양 만안·동안 △안산 △구리 △군포 △의왕 △용인 수지·기흥·처인 △고양 △남양주 △화성 △부천 △시흥 △오산 △광주 △의정부 △김포 △화성 동탄2 △광교지구 △성남 중원 등 22곳이 조정대상지역에서 제외된다. 이번 조치는 11월 14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 [뉴스1]
내달부터 대출 규제 완화
주택 수요 되살리기의 또 다른 방향은 실수요자의 구매 능력을 높이기 위한 금융 규제 완화다. 우선 내년 초 시행 예정이던 규제지역 내 무주택자에 대한 LTV(주택담보대출비율) 50% 단일화와 투기과열지구 내 15억 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허용 조치가 다음 달로 앞당겨진다. 이에 따라 현재 규제지역에서 무주택자 및 1주택자에 대해 20~50%가 적용되던 LTV가 50%로 통일된다. 또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내 무주택자나 1주택자가 15억 원 넘는 주택을 살 때도 LTV 50%를 적용받는다. 현재는 15억 원 초과 주택은 대출이 안 된다. 조치들로 고가 주택이 많은 서울에서 내 집 마련에 나서는 무주택 실수요자가 그만큼 대출을 받기가 쉬워질 것으로 예상된다.여기에 부부 합산 연소득이 9000만 원 이하인 무주택자가 8억 원 이하(조정대상지역) 또는 9억 원 이하(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주택을 살 때 적용되던 LTV 우대혜택도 확대된다. 현재는 4억 원 한도에서 LTV 우대폭이 10~20%p가 적용되고 있다. 그런데 12월부터는 6억 원까지 20%p로 단일화돼 적용된다. 결국 LTV를 70%까지 인정받아 대출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주택 수요 되살리기의 세 번째 방안은 부동산 수요층을 넓히기 위한 청약 자격 규제 완화와 취득세 감면 대상 확대다. 일단 청약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규제지역에서 무순위 청약 시 무주택자에게 요구되던 해당 지역 거주 자격 조건이 폐지된다. 예비당첨자 범위도 현재 공급 주택 수의 40%에서 500% 이상으로 대폭 늘어난다. 예비당첨자 명단 보존 기간도 최초 계약일로부터 60일에서 180일로 연장된다. 이번 조치는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최근 빠르게 늘어나는 미분양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생애 최초 주택 매입자에 대한 취득세 감면 혜택 확대는 6월 발표돼 내년 초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번 조치에 감면 대상이지만 추징받는 조건을 완화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현재는 3개월 내 입주하지 않으면 감면해준 세금을 추징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임대차 권리관계로 입주가 늦어지면 3개월이 넘어도 추징 대상에서 제외된다.
공급 기반인 건설업체에 대한 유동성 지원은 두 갈래다. 보증 강화와 사업성 확보를 위한 관련 규제 완화다. 보증 강화 방안으로는 우선 5조 원 규모로 미분양 주택에 대한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보증 상품이 신설된다. 현재도 준공 후 미분양에 대해서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주택담보대출 보증을 통해 유동성 지원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준공 전 미분양에 대해서도 금융기관에서 PF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보증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분양가 할인 등 미분양 해소를 위한 건설업체의 자구 노력이 선제 조건이다.
HUG와 한국주택금융공사(HF)가 시행하는 PF 대출 보증 지원 기준도 대폭 완화된다. 현재는 주택만 보증 대상이지만 앞으로는 주거용 오피스텔 같은 준주택과 복리시설도 대상에 포함된다. 또 지역에 상관없이 100채 이상이면 보증받을 수 있다. 또 중소형 사업장 대상 PF 보증이 10조 원으로 확대된다.
주택업체의 자금줄이 될 수 있는 부동산 리츠 관련 규제도 완화된다. 리츠는 총자산의 70% 이상을 부동산으로 갖고 있어야 하는데, 리츠가 부동산법인의 지분을 50% 넘게 보유할 때만 해당 투자 지분을 부동산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앞으로는 20% 이상 보유한 경우에도 해당 지분을 부동산으로 인정받는다.
주택업자의 사업성 강화 방안에서는 재건축·재개발 활성화의 걸림돌로 여겨지던 안전진단 규제 완화 조치 연내 마무리, 공공택지 사전청약 의무화 폐지가 눈에 띈다. 안전진단 규제 완화 방안은 50%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안전성의 평가 비중을 낮추고,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사 의무화는 필요시 진행하는 것으로 바꾸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재 연구용역이 진행 중인데, 다음 달 초 최종 방안을 마련해 공개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시장 반응은 일단 긍정적
문재인 정부가 주택 공급을 앞당기기 위해 도입했던 공공택지 사전청약 의무화는 폐지된다. 또 이미 매각된 공공택지의 경우 사전청약 시기가 6개월 이내에서 2년 이내로 대폭 늦춰진다. 이번 조치로 민간 사전청약 물량은 2024년까지 7만4000채에서 1만5000채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2020년 이후 지속적으로 축소돼온 등록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은 부활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구체적인 시행 방안은 과거 제도 운영 사례 등에 대한 검토를 거쳐 다음 달 공개된다.‘11·10 대책’에 대한 전문가들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수도권 규제지역 해제와 대출 규제 완화가 시장 연착륙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올해보다 내년 부동산시장과 이와 연결된 경제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커 연착륙 대책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좀 더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주택 경기 호황기에 집값 조절 수단으로 활용한 정책들의 빠른 궤도 수정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취득 및 양도 단계의 세금 중과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재성 기자는…
동아일보 경제부장을 역임한 부동산 전문기자다. 30년간의 기자생활 중 20년을 부동산 및 국토교통 정책을 다루는 국토교통부를 취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