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84

..

트럼프 관세전쟁의 무기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

대통령이 국가안보 직결된 ‘비상사태’에 경제 규제하도록 1977년 제정

  • reporterImage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5-04-13 09: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미국 대통령의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따른 권한 행사는 국가안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사법부 통제를 거의 받지 않았다. 미국 법원이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는 이유로 IEEPA에 근거한 조치에는 사법 심사를 자제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법 소극주의를 노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대규모 무역적자는 국가비상사태’라며 IEEPA를 근거로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현지 시간)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사실상 모든 교역국가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들어 보이고 있다.  GETTYIMAGE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현지 시간)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사실상 모든 교역국가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들어 보이고 있다.  GETTYIMAGES

    알카에다·북한·이란 경제제재 근거 IEEPA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IEEPA에 근거해 대외 관세를 부과한 배경에 대해 신동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사법연수원 26기·미국 뉴욕주 변호사)는 이렇게 분석했다. 중국을 핵심 타깃으로 해 ‘관세전쟁’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 손에는 IEEPA와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이라는 무기가 들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2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과 교역하는 사실상 모든 나라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는데 그 주된 법적 근거가 바로 IEEPA다. IEEPA가 관세 부과에 활용된 미국 역사상 첫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행정명령에서 “호혜주의에 반하는 통상 행위, 환율 조작, 부가가치세 및 기타 정책으로 발생한 미국의 대규모 무역적자를 해소해 국가비상사태를 해결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첫 집권 때인 2019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IEEPA를 근거로 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를 검토했으나 현실화되진 않았다. 

    1977년 제정된 IEEPA는 국가안보와 직결된 ‘비상사태’에 한해 대통령이 대내외 경제 규제를 가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이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1979년 이란의 미국대사관 인질 억류에 대한 대응 조치로 처음 활용했다. 이후 2001년 9·11 테러 등 굵직한 안보 정국마다 미국은 알카에다 등 테러단체나 이란·북한 등 국가에 대한 경제제재의 핵심 법 근거로 IEEPA를 사용했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IEEPA 도입 취지는 미국 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전쟁이나 무력 충돌을 상정한 것이지만 비상사태 여부에 대한 판단은 대통령이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사태 범위를 상당히 넓게 잡고 IEEPA를 근거로 관세 부과 행정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 말고도 각종 대내외 정책에 행정명령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1월 20일 취임 직후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각종 정책 무력화, 불법 이민자 추방,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등 100건에 달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행정명령은 미국 대통령이 연방정부 운영 과정에 권한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대통령 입장에선 의회를 거치지 않고 즉각 정책을 집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바이든 전 대통령도 재임 기간 연평균 30∼40여 건의 행정명령을 내렸다. 다만 두 번째 임기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행정명령 건수가 전임자들에 비해 많고 그 내용도 논란을 사고 있다. 신동찬 변호사는 “미국의 대통령 행정명령은 모법(母法)에 근거를 둬야 하지만 한국 대통령령과는 달리 법률과 거의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며 “특히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IEEPA에 근거해 관세를 부과한 행정명령은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긴급재정경제명령’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IEEPA에 근거한 행정명령으로 관세전쟁에 나서자 미국 내에서 반발도 일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와 기업은 법원에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를 막아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곳은 의회와 법원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 상하원 모두 여당인 공화당이 다수인 데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도 여전히 45%에 달하는 상황이다. 당장 공화당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에 반기를 들어 행정명령을 무력화하는 입법을 할 가능성은 낮다. 미국 사법부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남발을 우려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적성국국민법(AEA)’에 근거한 행정명령으로 베네수엘라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하자 연방법원이 이를 가로막은 바 있다.



    다만 미국 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행정명령을 원천 무효화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그간 유사 사건에 대한 미국 법원의 판례에 비춰본 결과다. IEEPA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것이 적성국교역법(TWEA)이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1971년 해당 법을 근거로 모든 수입품에 10% 보편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당시 한 일본계 기업이 관세 부과가 부당하다며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당시 미국 관세·특허 항소법원은 “행정부가 국가비상사태 와중에 대외 무역을 규정하는 광범위한 권한을 의회로부터 위임받았다”며 미국 정부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이후 IEEPA와 관련된 소송에서도 해당 판례가 적용됐다. 이재민 교수는 “미국 법원의 행정명령에 대한 오랜 판례는 대통령이 외교나 국방과 관련해 내린 결정을 가급적 존중하는 것”이라며 “행정명령 자체는 법률보다 하위 개념이지만 미국 대통령의 헌법상 권리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미국 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민심 악화되면 공화당 내 이탈 움직임 가능성”

    앞으로 변수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이 미국 경기 악화로 이어져 유권자 사이에서 인기를 잃는 경우다. 이미 미국 여권의 관세전쟁 단일 대오에 미세하게나마 균열이 감지된다. 4월 2일 미국 상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캐나다 관세 부과를 취소하라는 결의안이 통과된 것이다. 다수당인 공화당에서 4명의 이탈표가 발생한 결과다. 당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여당 장악력이 강하지만 경제 상황이 악화될 경우 중간선거를 의식한 공화당 의원들이 추가로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을 바라보는 미국 정계와 사회 분위기에 대해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는 ‘손 떼라(Hands Off)’ 시위 기세가 예상보다 강한 점이 변수다. 과거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처럼 특정 인권 의제가 아닌, 트럼프 대통령을 정조준한 시위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마트한 인물이다. 만약 관세전쟁에 대한 반발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갉아먹는다고 판단될 경우 정책을 수정할 것이다. 관세전쟁 결과 경기가 악화해 민심이 나빠진다면 이를 의식한 일부 공화당 의원의 이탈 가능성도 있다.” 

    *유튜브와 포털에서 각각 ‘매거진동아’와 ‘투벤저스’를 검색해 팔로잉하시면 기사 외에도 동영상 등 다채로운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김우정 기자

    김우정 기자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김우정 기자입니다. 정치, 산업, 부동산 등 여러분이 궁금한 모든 이슈를 취재합니다.

    [오늘의 급등주] 이재명 “석탄발전 폐쇄” 공약에 그린케미칼 장중 상한가

    [오늘의 급등주] “中, 희토류 수출 중단” 소식에 유니온 주가 급등

    • 많이 본 기사
    •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