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시기 환구단 터에 세워진 ‘웨스틴 조선 서울’(오른쪽). 가운데 3층 지붕의 목조 구조물이 환구단과 짝을 이루던 황궁우다. [안영배 제공]
환구단의 옛 모습. 왼쪽이 황궁우이고 오른쪽이 환구단이다. 일제가 환구단을 허물고 그 자리에 호텔을 지었다. [안영배 제공 ]
명당 호텔의 풍수 마케팅
그런데 피서와 힐링 여행의 후유증도 만만찮다. 막상 일상으로 복귀하니 피곤함과 무력감이 더 심해졌다고 하소연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대부분은 무리한 여행 일정 탓이려니 하고 넘어가고 만다. 필자는 후유증의 원인을 휴가지의 숙소에서 찾는다.
잠자리는 숙박을 낀 장단기 여행에서 여행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다. 인체에 좋지 않은 기운이 흐르는 호텔 방 또는 펜션 등에서 숙박할 경우 잠을 설치거나 아침에 일어나도 몸이 개운하지 않다. 이것이 누적되면 만성 피로와 무력감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런 증상은 나이가 들수록 심하게 느껴진다. 젊었던 20, 30대 시절에는 아무 데서나 잠을 자도 그다지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는데, 해가 바뀔수록 객지의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하소연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인체 노화로 외부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짐으로써 나쁜 자극(기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외지에서 잠자는 것이 고역이라 여행 자체를 아예 기피하거나 당일치기 여행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적잖다.
사실 잠자리가 편한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의 편차는 매우 크다. 필자는 외부 기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좋은 기운, 즉 생기(生氣)가 있는 잠자리에서는 낮에 무리한 일정을 보냈더라도 다음 날 일어나면 몸이 별로 피곤하지 않다. 잠을 푹 자는 동안 방전된 몸이 활기 있는 에너지로 충전되기 때문이다. 반면 유해한 기운이 감도는 터에서 잠을 자고 나면 다음 날 일어나서도 하루 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다.
잠자리를 둘러싼 터의 기운은 숙박을 주업으로 삼는 호텔업계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터에서 나오는 좋은 기운을 제공하는 호텔은 그렇지 못한 입지에 세워진 호텔보다 경쟁력 면에서 월등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웰빙 호캉스(호텔+바캉스)’가 주목받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최근 영화 ‘파묘’의 촬영 장소로 유명해진 ‘더 플라자 호텔’. [안영배 제공 ]
1976년 문을 연 더 플라자 호텔은 역사적으로도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명소였다. 고려 말 국가 차원에서 기상이변 같은 천변(天變)이나 재난을 물리치고자 기도를 드린 지천사가 있었고, 조선 초기엔 중국 사신이 머무는 공간인 태평관과 가까워 사신의 수행원 숙소로 이용됐다고도 한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인들이 조선으로 이주해오면서 이곳 소공동 일대는 중국인의 중요 생활 근거지가 됐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곳은 화교가 북적거리는 중국인 거리로도 유명했다.
더 플라자 호텔 측은 이곳이 사람들이 모여드는 명당 터라는 점을 활용한 ‘풍수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 2019년에는 풍수지리 관련 웨딩 패키지를 선보였으며, 조선시대 귀한 손님이 묵던 태평관처럼 객실을 꾸며 외국인 대상 객실 패키지를 판매하기도 했다. 최근 호텔 측은 ‘파묘’ 흥행에 맞춰 예비부부를 위한 상견례 패키지인 ‘백년가약(百年佳約)’을 출시했다고 밝혔다. 호텔 터가 부와 행복, 장수를 보장하는 명당임을 홍보하는 마케팅 전략 중 하나다.
더 플라자 호텔은 병풍처럼 펼쳐진 반월형 외관도 풍수적으로 돋보인다. 초승달이나 반달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커진다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반월 형상은 풍수적으로 무궁한 성장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신라 수도 경주의 월성과 백제 수도 부여의 사비도성이 반월형으로 조성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늘에 제사 지내던 웨스틴 조선 서울 터
호텔 풍수 마케팅은 더 플라자 호텔이 처음은 아니다. 더 플라자 호텔에서 직선거리로 200m 남짓 떨어진 ‘웨스틴 조선 서울’ 역시 반월형 외관이 특징적인 곳으로, 호텔 풍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11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호텔은 터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이곳은 원래 대한제국 제단(祭壇) 터였다.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황제로 등극한 고종(조선 26대 왕)이 이곳에 환구단을 조성해 제천의식을 치렀다. 당시 고종은 풍수사를 동원해 여러 자리를 물색한 끝에 이곳 남별궁 터(환구단)를 ‘천손(天孫)의 나라’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장소로 꾸몄던 것이다.
환구단 영역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례공간(환구단)과 하늘과 땅 신을 비롯해 여러 신의 신패를 모신 황궁우(1899년 조성), 석고각(1909년 조성)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지금은 황궁우와 석고각 안에 있던 석고(石鼓)만 남아 있다. 현재 웨스틴 조선 서울 바로 북쪽에 있는 팔각형의 3층 목조 건물이 바로 황궁우이고, 그 인근에 석고가 자리하고 있다.
풍수적으로 볼 때 환구단은 황궁우와 함께 쌍으로 이뤄진 구조물이었다. 터 기운도 음양의 조화를 갖추고 있었다. 환구단은 지기(地氣)가 충만한 풍요의 공간이고, 황궁우는 하늘의 천기(天氣)가 하강하는 신령스러운 공간이었다. 가히 대한제국의 풍수 실력을 확인해볼 수 있는 빼어난 명당 터였던 것이다.
아쉽게도 원형 제단인 환구단은 사라진 지 오래다. 1910년 대한제국을 병탄한 일본은 1914년 제단을 헐어버린 다음 조선총독부 직영의 철도호텔(현 웨스틴 조선 서울)을 지었다. 하늘에 제사 지내는 신성한 터를 숙박시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비분강개한 대한제국 청년들이 호텔 공사장을 지키던 일본 헌병을 때려죽이는 일까지 생겼다.
이런 역사적 아픔에도 호텔은 명당 터에 자리 잡은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호텔 측은 이곳이 환구단이 들어서기 전까지 조선 태종의 둘째 딸인 경정공주가 살던 저택이었다는 점, 임진왜란 이후에는 왕들이 중국 사신을 만나 접대하는 장소로 사용해 ‘남별궁’으로 불렸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역사적 배경은 호텔 터가 품격 있는 가족 행사 공간이자, 비즈니스 거래가 잘 성사되는 미팅 공간이라고 홍보할 수 있는 훌륭한 소재가 된다.
한편 이 호텔 역시 ‘고궁 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웨스틴 조선 서울 2층 라일락홀에서는 통창 너머로 아름다운 황궁우가 보인다. 호텔 측은 황궁우을 배경으로 한국 전통미를 살린 오방색을 활용하는 등 ‘한국의 정원’ 콘셉트를 내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