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려원과 드라마 ‘원더풀 라이프’에 출연한 ‘SES’전 멤버 유진. 유진은 연기대상 신인상도 받았다.
‘핑클’의 이효리·성유리, ‘SES’의 전 멤버 유진, ‘쥬얼리’의 박정아 등이 선배 격이라면 ‘샤크라’의 전 멤버 정려원을 비롯해 ‘베이비복스’의 윤은혜, ‘쥬얼리’의 이지현, ‘핑클’의 이진, ‘슈가’의 정음 등은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는 새내기들이다.
사실 가수의 연기 외도는 화제성이라는 측면에서 수년 전부터 종종 시도됐던 카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흐름은 단발성이 아닌 연예계의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즉 예전에 가수의 드라마나 영화 출연은 ‘외도’ 등으로 표현될 만큼 예외적이고 일회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최근엔 마이크 대신 대본을 손에 쥔 여성 가수들이 당당히 드라마의 주역을 꿰차면서 연기자 ‘풀’ 자체까지 뒤흔들 조짐이다.
올 상반기 최고의 스타는 뭐니 뭐니 해도 정려원(23)이다. MBC 미니시리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현빈의 옛 애인 유희진 역을 열연한 그는 잘생긴 남자 다니엘 헤니와 함께 요즘 절정의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3년 전 KBS2 아침드라마 ‘색소폰과 찹쌀떡’에 출연하면서 연기에 발을 들여놓은 정려원은 SBS 일일시트콤 ‘똑바로 살아라’와 MBC 주간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를 거쳐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여세를 몰아 9월21일 첫 방송을 한 MBC 미니시리즈 ‘가을 소나기’(조명주 극본·윤재문 연출)에서 김소연, 오지호 등과 함께 공동 주연을 맡아 운명적인 사랑과 애증을 그려간다.
‘단발성’ 아닌 드라마의 주연
2005년이 정려원의 해였다면 2006년 상반기는 ‘베이비복스’ 윤은혜(21)의 행보가 화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윤은혜는 내년 1월 방송하는 MBC 미니시리즈 ‘궁’(인은아 극본·황인뢰 연출)에서 여주인공을 맡아 신예 주지훈, 보컬 그룹 UN의 멤버 김정훈, 송지효 등과 연기 호흡을 맞춘다. 박소희 원작의 동명 만화가 원작인 ‘궁’은 대한민국에 아직도 왕이 존재한다는 가정 아래 꽃미남 황태자 ‘이신’과 결혼을 하게 되는 10대 평민 소녀 ‘채경’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핑클’의 이진(맨 오른쪽), ‘쥬얼리’의 박정아(왼쪽 두 번째)와 이지현(세 번째), ‘슈가’의 정음(맨 오른쪽·왼쪽부터).
정려원이 열연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박정아가 출연한 ‘남자가 사랑할 때’, 이지현(왼쪽부터 세 번째)이 출연한 모바일 시트콤 ‘얍’(왼쪽부터).
이진은 SBS ‘일요일이 좋다’의 인기 코너 ‘반전 드라마’를 통해 연기 수업을 차곡차곡 쌓고 있으며, 옥주현과 슈는 뮤지컬을 통해 다재다능한 끼를 발산하고 있다. 옥주현은 초대형 뮤지컬 ‘아이다’, 슈는 ‘동아비련’ ‘뱃보이’ 등에 거푸 출연해 가창력과 연기력을 동시에 뽐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쥬얼리의 맏언니 박정아는 지난해 SBS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에 출연해 ‘연기력 부족’이라는 평과 낮은 시청률로 ‘연기의 쓴맛’을 봤지만 최근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조연을 맡아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또 다른 쥬얼리 멤버 이지현은 위성DMB에서 방영 중인 주간시트콤 ‘얍’에서 코믹 연기에 도전하고 있고, 아역배우 출신 조민아도 작품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말 슈가를 탈퇴한 정음은 에릭과 CF를 같이 찍은 데 이어 뮤직비디오와 SBS 드라마 ‘루루 공주’ 등을 통해 연기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만능 엔터테이너’로 가는 길
여성 가수들뿐만 아니라 연기자 전업 혹은 병행은 남자 가수들도 비슷한 추세를 따르고 있다. 그룹 신화의 에릭·김동완·앤디, UN의 김정훈, 이기찬, 강타 등이 본격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 좋은 평을 받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가장 큰 이유는 오프라인 음반시장이 구조적 불황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음반시장이 디지털 ‘음원’을 파는 시장으로 바뀌면서 ‘비주얼’이 강점인 댄스 그룹들의 몫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 이에 따라 가수들은 자구책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생겼고, 드라마와 영화계에서는 스타 배우 잡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면서 다른 장르의 스타라도 데려와야 하는 절박한 상황인지라 양쪽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연예인의 엔터테이너화는 90년대 후반 이후의 일관된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변신이 언제나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가수로서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더라도, 연기자로서는 캐릭터 표현력이나 대사 전달력이 부족하다는 혹평을 듣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안 하느니만 못한 경우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연기 능력에 알맞은 배역 선택, 신인 배우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치열한 각오만이 어느 그룹 출신 연기자라는 꼬리표를 떼고 진정한 엔터테이너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