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최종승자로 기록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올 여름 극장가의 블록버스터 전장에서 선제공격에 나선 영화는 미국 디즈니사의 전쟁영화 ‘진주만’(6월1일 개봉). 단일 스튜디오로는 사상 최대규모인 1억4500만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들어간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미 태평양함대 공습을 영화화한 전투액션 블록버스터다.

심각한 전쟁영화도 많지만, ‘진주만’은 ‘더 록’ ‘아마겟돈’ 등 초대형 오락영화를 만든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와 마이클 베이 감독이 손잡고 만든 영화다. 이들에게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 또한 ‘골치 아픈 철학’보다는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 볼거리와 스펙터클한 액션일 것이다.
진주만 공습은 미군 전사상 최대의 치욕으로 기억되는 사건이지만, 그런 역사적 의미는 이 영화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물론 영화에 대해 미국 내 일본 단체들이 반발하였고, 일본 관객을 의식해 영화의 일부분을 삭제하기도 했다지만 ‘진주만’은 아군과 적군을 선과 악으로 구분해 맹목적인 애국심을 고취하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제작비의 절반 가량을 폭격장면에 투입해 스케일과 위용을 뽐내고,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복잡한 러브스토리에 긴 시간을 할애해 ‘타이타닉’처럼 여성 관객층을 끌어들이고자 한다. 참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지만, 이상하게도 이들의 비극적 사랑은 관객의 감정선을 자극하지 못한다. 두 남자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는 에블린의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노라면, 2시간 50분이나 되는 상영시간도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사랑’과 ‘전쟁’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조화롭게 어우러져 감동을 준다는 게 사실은 아주 어려운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