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29일(이하 현지 시간) 백악관 앞을 걷고 있다. 뉴시스
이스파한은 또 ‘이란의 영변’으로도 불린다. 이곳에는 핵 프로그램에서 과학·기술적 중추 역할을 하는 핵심 거점인 핵기술연구센터(NTRC)뿐 아니라 우라늄 전환시설(UCF), 핵연료 제조 시설, 연구용 원자로, 핵물질 저장 및 각종 연구소 등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 지하 터널에는 60% 고농축우라늄이 비축돼 있다. 미군은 이스라엘과 이란이 ‘12일 전쟁’을 벌일 때인 지난해 6월 22일(이하 현지 시간) ‘미드나이트 해머(한밤의 망치)’라는 작전명으로 포르도와 나탄즈를 B-2 스텔스 폭격기 7대를 동원해 공습했다. B-2는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해온 포르도와 나탄즈 핵시설에 벙커버스터(GBU-57) 12발, 2발을 각각 폭격했다. 이스파한 핵시설은 중동 지역에 배치된 미 해군 핵잠수함이 발사한 22발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공격만 받았다.
‘12일 전쟁’ 공습에도 고농축우라늄 남아

미국 위성업체 맥사테크놀로지가 지난해 6월 22일 촬영한 이란 중부 이스파한 핵시설 위성사진. 미국은 전날 이곳에 24발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했다. 뉴시스
이 때문인지 몰라도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8일 ‘에픽 퓨리(장대한 분노)’라는 작전명으로 공습 등 군사작전을 시작하면서 이란의 핵 개발 포기와 고농축우라늄 제거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목표는 임박한 이란 위협을 제거함으로써 미국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이란은 지난해 6월 미군의 핵시설 공격 이후 핵 프로그램 재건을 시도했고, 최근 협상에서도 핵 포기를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란의 테러리스트 정권은 절대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란은 현재 10~11개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양의 60% 고농축우라늄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미군의 폭격 전 가장 마지막으로 공식 추정한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이란이 60% 고농축우라늄을 440.9㎏ 보유한 것으로 판단한 바 있다. 60% 고농축우라늄을 무기급인 90%로 끌어올리는 과정은 2~3주면 가능하다. IAEA는 60% 고농축우라늄 42㎏이면 핵폭탄 1개를 제조할 수 있는 90% 무기급 우라늄 25㎏으로 전환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인 스티브 윗코프 중동특사는 3월 2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란 대표단은 2월 6일 오만에서 열린 첫 핵협상에서 ‘60% 고농축우라늄 460㎏을 갖고 있고, 이걸로 11개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스파한 지하 터널에 60% 고농축우라늄 은닉
더욱 주목할 점은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이스파한 지하 터널에 60% 고농축우라늄 절반가량이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3월 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뉴클리어 에너지 서밋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마지막으로 사찰했을 당시 이스파한에는 60% 고농축우라늄이 200㎏ 조금 넘는 양, 어쩌면 그보다 약간 더 많은 양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성사진과 다른 방법 등으로 시설을 관찰하는 모든 사람이 확인했지만, 우라늄이 다른 곳으로 이동됐음을 보여주는 움직임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나탄즈 시설에도 일부 60% 고농축우라늄이 있으며, 이 역시 여전히 그곳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이란은 지난해 6월 미군의 폭격 이후 고농축우라늄 상태나 위치에 대해 IAEA에 통보하지 않았고, 폭격당한 핵시설에 IAEA 사찰단의 재방문도 허용한 바 없다. 하지만 서방 핵 전문가들은 이란 강경파가 미국의 이번 군사작전 직전에 빼돌렸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440㎏가량의 고농축우라늄은 스쿠버다이빙용 산소통처럼 생긴 90㎝ 길이의 실린더 약 15개에 담을 수 있고, 무게도 각 25㎏ 정도로 두 사람이 트럭 한 대에 실어 옮길 수 있는 양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명분으로 내세운 이란의 핵무기 제조 능력 제거를 현실화할 수 있을까. 미국은 중재국인 파키스탄을 통해 15개의 종전 요구 조건을 이란에 제시했다. 그 내용을 보면 △핵 프로그램 전면 해체 △핵무기 개발 영구 포기 △이란 내 우라늄 농축 금지 △고농축우라늄(60%) 440㎏의 IAEA 이전 △나탄즈·포르도·이스파한 핵시설 해체 △IAEA의 전면 사찰 허용 △호르무즈해협 자유 통행 △대리 세력 지원 중단 △미사일 규모 및 사거리 제한 등으로 핵과 관련된 요구 조건이 핵심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 프로그램을 ‘암’에 비유하면서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며 “단기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암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 암이란 바로 핵무기를 보유한 이란”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란이 미국의 15개 요구 조건을 수용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이란은 미국이 제시한 조건이 과도하고 비현실적이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고, △적에 의한 침략·암살 완전 중단 △이란에 대한 전쟁 재발 방지 △전쟁 피해 배상 △중동 전역에 걸친 모든 전선과 저항 조직을 대상으로 한 전쟁 완전 종결 △호르무즈해협에서 이란의 합법적인 주권 행사와 이에 대한 보증 등을 역으로 제시했다. 게다가 이란은 전쟁 발발 이전과 마찬가지로 우라늄 농축은 포기할 수 없는 권리라고 맞서고 있다.
특수부대 투입 시 대규모 사상자 발생 우려

미 해군과 해병대원들이 3월 27일 강습상륙함 트리폴리에 탑승해 중동 지역을 담당하는 미국 중부사령부 작전 책임 구역에 도착하고 있다. 미국 중부사령부 제공
만약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결렬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특수부대 등 지상군의 제한적인 투입을 통해 이란의 고농축우라늄을 확보 또는 제거하는 지상 작전을 결단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최고 난도의 위험한 작전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란이 비축한 60% 고농축우라늄은 지하 깊숙이 묻혀 있어 특수부대나 대량살상무기 전문팀이 투입돼도 이를 확보하거나 반출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자칫해서 보관 용기가 손상될 경우 치명적인 방사능 유출 위험도 있다. 게다가 미군 특수부대가 이스파한 핵시설을 사수하려는 혁명수비대와 교전을 벌여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지상 작전이 실패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선뜻 지상 작전 감행을 결정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이나 지상 작전으로도 이란의 핵무기 제조 능력을 제거하지 못할 경우 미국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란은 어떻게든 이번 전쟁이 마무리된 후 핵무기 제조에 나설 수도 있다. 수잰 멀로니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이번 전쟁으로 구체적인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상당히 성공했지만, 이란이 핵무기 개발 능력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전략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최대 딜레마에 직면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