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맛 바꾸는 오크통
위스키는 오크통에서 3년 이상 숙성을 거쳐 만들어진다(왼쪽). 스코틀랜드는 당초 스페인 오크통에서 위스키를 숙성시켰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 오크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위키피디아, 동아DB]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면 여러 이점이 생긴다. 오크통 내부는 그을린 나무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술은 여러 화학작용이 일어나 바닐라, 견과류, 초콜릿 등 다양한 향을 품게 된다. 게다가 여름과 겨울 오크통이 팽창과 수축을 거듭하며 알코올이 증발되는데, 그만큼 맛과 향이 진해져 풍미가 깊다. 더 나아가 오크통 숙성과 무관하게 시간이 지나면서 물 분자에 알코올 분자가 회합돼 알코올 특유의 찌르는 맛이 사라지고 부드러워지는 효과도 난다.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시킬수록 맛이 깊어지고 진해지며 부드러워지니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숙성 과정에서 위스키가 증발해 희소성이 커지고 그만큼 가격이 상승하는 효과도 더해진다. 특히 셰리 와인을 품었던 셰리 캐스크에 담긴 위스키는 달콤한 향미를 지니게 된다. “위스키 맛의 70% 이상은 오크통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통빨’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스페인산 셰리 캐스크보다 미국산 버번 오크통을 사용하는 추세다. 스페인 내전이 변화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 벌어진 스페인 내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예고편으로 여겨진다. 당시 스페인은 공화제였는데,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군부세력인 국민파가 내전을 일으켰다. 당시 국민파는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반면, 공화파는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좌파라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결국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 장군의 국민파 승리로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게르니카 폭격 등 수많은 민간인 탄압과 희생이 있었다. 특히 바스크와 카탈루냐 지방에서 차별이 이어져 카탈루냐 독립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1939년부터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 스페인 상품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더 나아가 각 분야에서 스페인과 관계를 끊으며 홀로서기가 진행됐다. 결국 셰리 와인 수출길도 상당히 막히면서 영국에 셰리 캐스크 공급이 부족해졌다.
1975년 프랑코 장군 사망 이후 스페인 정부는 다른 나라들과 국교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특히 1986년 유럽연합(EU) 전신인 EC(European Council)에 가입했다. 당시 스페인의 와인 수출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셰리 와인의 병입은 반드시 산지인 스페인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법령이 생기면서 병입된 와인만 수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간 오크통에 셰리를 담아 수출한 후 현지에서 숙성시키기도 했는데 이것이 불법이 된 것이다. 셰리 와인 원산지를 지키기 위한 스페인 측 조치로 보인다. 이전에는 영국에서 숙성시킨 셰리 와인이 마치 영국산 와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결국 영국은 셰리 캐스크 공급 쇼트에 직면한다.
미국 버번 오크통의 대두
이런 흐름에서 미국 오크통은 꾸준히 영역을 넓혀왔다. 1920년부터 1933년까지 있었던 미국 금주령은 위스키를 담던 오크통을 더욱더 잉여자원으로 만들었다. 더는 술을 만들지 못하니 갖고 있던 오크통도 필요가 없어졌고, 실험적으로 영국에 수출하게 됐다. 게다가 미국 연방알코올관리법(FAA)은 미국의 버번위스키(옥수수를 51% 이상 사용해 만든 위스키)를 내부를 태운 새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도록 했다. 한 번 사용한 오크통을 더는 쓰지 못하게 된 것이다. 반면 스카치위스키는 오크통 재활용이 가능했다. 버려질 운명에 놓인 미국 오크통이 자연스럽게 스코틀랜드로 이동하게 된 배경이다.셰리 캐스크와 버번 캐스크에서 숙성시킨 위스키는 같은 원액이라도 맛과 향이 상당히 다르다. 달콤한 셰리 캐스크에서 숙성시킨 제품은 향미가 더욱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단향이 잘 올라오는 특성을 보인다. 버번 캐스크는 비교적 드라이한 맛과 향을 품고 있다. 중요한 것은 셰리 캐스크는 공급이 부족하고 버번 캐스크는 공급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셰리 캐스크 숙성이 프리미엄 지위를 갖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