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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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과 매력이 숨 쉬는 그곳

‘오래된 도시의 골목길을 걷다’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12-11-05 1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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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과 매력이 숨 쉬는 그곳

    한필원 지음/ 휴머니스트/ 384쪽/ 2만3000원

    “통영은 오감을 자극하는 도시다. 우리가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모든 감각을 동원해 만나고 싶은 도시도 사실 드물다. 세병관 뒤로 가서 바다를 바라보며 대향이 그랬듯 이상향을 그리고, 바닷가를 거닐며 백석이 그랬듯 “조개 울”음도 듣고, “김 냄새 나는 비”를 맞을 수도 있다. 세병관 마룻바닥에 앉아 부드럽고 따스한 나무의 촉각을 느끼고, 부둣가로 가서 맛있는 해산물을 맛볼 수도 있다.”

    밀양, 통영, 안동, 춘천, 안성, 강경, 충주, 전주, 나주. 저자가 7년간 발품을 팔며 찾아 나선 지방도시 9곳은 개발의 속도경쟁에서 한발 비켜선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푸근한 모습과 현대도시의 매력 및 잠재력을 동시에 지닌 곳이다. 특히 개인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대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운 공간과 장소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한국 정신문화를 꼿꼿이 지켜온 안동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그래서인지 유독 막다른 골목이 발달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거나 그보다 조금 넓은 골목이 여전히 많다. 모양이 제각각인 만큼 골목엔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남아 있고, 그 길 끝에는 다양한 한옥이 자리 잡았다. 어느 집 대문 밖으로 양반의 ‘에헴’ 헛기침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춘천은 호반의 도시, 낭만의 도시다. 최근에는 예술과 축제 덕에 도시에 생명력이 넘친다. 사람을 불러 모으는 매력은 여러 가지겠지만, 춘천 도심 곳곳에 널린 마당도 한몫했다. 닭갈비와 막국수만 먹고 휙 돌아설 것이 아니라 춘천에 있는 공간들을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춘천에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다양한 크기의 공공 공간이 많아 축제를 위한 공간적인 토대가 갖추어져 있는 셈이다. 피카디리극장 앞의 삼각형 마당, 브라운5번가의 길과 광장, 춘천예술마당의 마당 등 곳곳에 도시 활동 무대가 있어 축제가 건물 안에 갇히지 않고 도시를 활기차게 해준다.”



    한반도 내륙 중부에 위치한 충주는 평온한 모습과 달리 늘 전운이 감도는 최전방이었다. 고대부터 전략·교통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일부였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이곳에서 충돌했다.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고, 죽령과 이화령 등의 고갯길이 모여드는 충주에는 예(藝)의 품격 우륵과 무(武)의 강건함을 상징하는 임경업의 숨결이 살아 있다. 이 두 걸출한 인물 덕에 충주는 틀에 갇히지 않는 역사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을 삶터로 오랫동안 지속하려면 상점, 전시관 같은 주거 외의 용도를 큰 가로변에만 선(線)으로 위치시켜 이 건물들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 개방적인 한옥에서 사적인 영역을 만들려면 담을 잘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통마을에서 담은 사적인 공간을 구성하고 차분하고 통일된 마을 분위기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다. 따라서 담을 허물고 밖으로 열린 큰 마당을 두는 한옥형 전시관을 더는 지어서는 안 된다.”

    건축학자의 시선은 단순히 문화와 도시 산책에 머물지 않는다. 도시 문제를 진단하고 미래 도시를 어떻게 디자인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한다. 오래된 도시의 큰길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시간과 역사가 켜켜이 쌓였다. 비록 많은 사람이 그 골목을 떠났어도 추억과 매력은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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