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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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법칙이 있다고?

‘버스트’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0-08-09 14: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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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법칙이 있다고?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동아시아 펴냄/ 448쪽/ 1만8000원

    디지털 네이티브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수신하는 ‘다운로드 세대’에서 스스로 구하고 발신하는 ‘업로드 세대’로 변신했다. 하지만 개인이 생산하는 무수한 디지털 데이터는 큰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사소한 이야기, 즉 정보의 노이즈에 불과한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구입했는가, 취향은 어떻고 지불 능력은 어떤가 하는 시시콜콜한 정보는 신용카드 회사에 의해 일일이 수집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생활 모두는 기록되고,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 구축된다.

    21세기 신개념 과학인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창시자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는 ‘버스트’에서 인간의 행동은 이산적이고 독립적이고 무작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재현 가능한 모종의 패턴에 따라 움직이며, 그 패턴은 모종의 폭넓은 법칙에 지배된다고 말한다.

    나아가 저자는 이제 단순한 인적 관계의 네트워크를 분석하는 것을 뛰어넘어 인간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일마저 가능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것은 인간 행동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가 저절로 수집되고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 주장을 논증하기 위해 무슬림 이름 때문에 미국연방수사국(FBI)에 심문당하는 것이 지긋지긋해 자신의 현재 위치와 상황을 남기는 것을 프로젝트화한 중동인 예술가 하산 엘라히를 등장시키는가 하면, 1달러 지폐에 ‘조지는 어디에?’라는 표시를 한 뒤 그 화폐를 추적하는 사이트를 소개하는 등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저자는 e메일 발송과 웹브라우징 습관, 전화 통화, 도서관의 대출, 병원 방문, 위인들의 서신 교환 등 모든 인간 활동에는 긴 휴식기 뒤에 격렬히 폭발하는 짧은 기간이 오는 하나의 패턴이 나타난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런데 그 패턴은 모두 멱함수 법칙을 따른다. 세계대전 발발이나 갑부 등장, 월드와이드웹의 허브 출현처럼 큰 사건일수록 드물게 마련인데 그것이 멱함수 법칙의 핵심이다. 멱함수 법칙이 있는 곳에는 늘 ‘예욋값’이 존재한다.

    인간 행동에 이렇게 폭발성이 드러나는 것은 ‘해리 포터’ 시리즈가 출간된 날이나 메이저 리그의 챔피언 시리즈가 열리는 날에는 병원에 가서 치료하는 일마저 미루는 것과 같은 인간의 ‘우선순위 설정’ 때문이다. 우리가 한정된 자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늘 우선순위를 설정하기 때문에 행동 패턴이 멱함수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으며, 일단 우선순위가 정해지면 멱함수 법칙과 폭발성이 필연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폭발을 뜻하는 ‘버스트’란 책 제목은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답변의 요지라 할 수 있다. 주식 가격의 연쇄 폭등과 폭락, 글로벌 경제 현상, 어느 날 갑자기 터지는 누리꾼들의 댓글 잔치, 그로 말미암아 각광을 받은 루저, 거리로 물밀듯 쏟아져 나온 촛불시위 군중 등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이면에 숨은 법칙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버스트다. 이런 폭발성은 인간의 의지나 의식보다 깊은 기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불륜, 무능력, 도둑질, 질병, 고난, 우정, 미움 등 그 어떤 것도 숨길 수 없을 만큼 모든 사람의 삶이 유례없이 면밀하게 관찰돼 세세히 기록되면서 사람들의 모든 행동을 정량화하는 과학까지 태동하는 바람에 우리는 그동안 지극히 당연시했던 프라이버시마저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어쩌면 이 점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16세기 십자군을 이끌었던 비운의 헝가리 대장 죄르지 세케이의 인생행로와 인간 역학의 발전 과정을 교차시키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무명의 범죄자라는 밑바닥에서 출발해 우연한 하나의 폭발적 사건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다음, 불과 3개월 만에 왕이라는 정상에 도달할 뻔했던 세케이야말로 역사의 무작위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상징하는 ‘예욋값’ 같은 존재다.

    세케이의 일생을 다룬 부분은 박진감이 넘치는 소설과 같다. 저자는 물리학, 천문학, 컴퓨터과학, 생물학 등 다양한 학문에 대한 지식을 총동원해 매우 평이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책은 끔찍한 미래에 대해 불안에 떨게 만들기도 하지만 독특한 상상력과 뛰어난 통찰력으로 흥분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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