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에두아르트 슈프랑거 하우프트슐레’. 김나지움이나 레알슐레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의무교육을 시키는 하우프트슐레는 독일 사회에서 ‘문제아 집합소’로 여겨진다.
먼저 2001년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를 통해 발표된 제1차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00)를 들 수 있다. 이 평가에서 독일 15세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OECD 평균에 못 미치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는 독일 사회에 메가톤급 충격을 줬다. 왜냐하면 독일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우수한 대학들과 김나지움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
‘도대체 독일의 교육시스템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기에 이 같은 결과가 나왔는가’라는 주제를 놓고 학생, 교사, 학부모, 교육전문가 사이에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특히 최하위 등급 학생의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매우 높았다. 이들이 전체 평균을 크게 낮추는 구실을 했다는 사실이 PISA 결과보고서 분석을 통해 드러났다. 주로 사회·경제적 배경이 좋지 못한 저소득층 학생과 실업계 중등학교(레알슐레, 하우프트슐레)에 다니는 학생, 그리고 외국인 이주민 가정의 자녀들이었다. 즉 교육문제가 단순히 학생들의 지적 능력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경제적 배경과 빈부격차 등 더 큰 문제와 연결돼 있던 것이었다.
11세에 진로 결정, 외국인 자녀 불리
독일 교육계를 발칵 뒤집은 또 한 가지 일은 2006년 베를린 뤼틀리 학교 사건이다. 그해 2월 28일 뤼틀리 교사들은 베를린 시 교육당국에 긴급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학생들의 폭력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교사들의 힘만으론 감당하기 어려우니 교내 치안 유지를 위해 경찰을 배치해주거나, 아니면 학교 문을 닫아달라”는 호소였다. 언론에 공개된 편지에 따르면 많은 학생이 칼, 가스총, 몽둥이 등 흉기를 소지하고 등교해 기물 파괴는 물론 폭력을 일삼을 뿐 아니라, 심지어 교사를 위협하는 사례도 빈번했다고 한다.
뤼틀리 학교 문제는 두 가지로 진단됐다. 하나는 독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외국인 학생들이고, 또 하나는 전통적 중등교육 학제의 문제였다. 뤼틀리 전체 학생 중 부모 양쪽 혹은 둘 중 하나가 외국인인 학생의 비율이 83.2%에 달했다. 그들 대부분이 가난하고 사회적 기반이 약한 터키와 아랍계였다. 또 당시 내전 중인 아프리카나 세르비아에서 도망쳐 베를린에 홀로 체류하는 청소년도 적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독일의 전통적 교육시스템이 갖고 있던 문제점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학생들은 초등교육 4년을 마친 11세에 자신의 평생을 좌우할 세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김나지움(5학년부터 12학년 또는 13학년까지 다님)과 실업계인 레알슐레(5학년부터 10학년까지), 하우프트슐레(5학년부터 9학년까지)가 그것인데, 뤼틀리 학교는 하우프트슐레에 속한다.
하우프트슐레는 김나지움이나 레알슐레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중등 의무교육을 시킨다. 그런데 하우프트슐레 졸업생의 취업 전망은 매우 어둡다. 김나지움을 나와 아비투어(대학 입학 종합 자격)를 취득하고 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태반이 노는 현실에서 하우프트슐레 졸업장만 가지고는 취업을 쉽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우프트슐레를 ‘잔반 쓰레기 학교(Restschule)’라 폄하하기도 한다. 하우프트슐레 학생 대다수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학교를 다닌다. 학교가 본래 취지와 달리 학생들에게 ‘사회적 낙오자’라는 자괴감만 심어줬던 것이다.
이런 문제점이 집중적으로 거론되면서 독일의 각 주정부는 교육제도 개혁을 통해 기존 시스템의 폐단을 제거하려 했다. 독일은 교육에 관한 전권이 연방정부가 아닌 주정부에 있다. 따라서 각 주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제도도 바뀌었다. 그동안 복잡하고 다양한 교육실험이 있었지만, 개혁의 노력은 크게 두 분야에서 모색됐다. 하나는 중등교육 분야에서 하우프트슐레처럼 ‘문제아 집합소’로 낙인찍힌 곳을 폐지하고, 인문계 김나지움과 실업계 레알슐레의 구분도 모호하게 해 학생들이 교육적 차별을 느끼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초등교육 기간을 늘려 학생들이 친구들과 다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확대하는 것이다. 전통적 시스템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친 11세에 인생의 진로가 결정되는 셈이다. 이 교육제도는 외국인 자녀들에게 치명적으로 불리했다. 그들은 독일어가 익숙하지 않아 초등학교에서 다른 학생과의 경쟁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하우프트슐레행(行)을 피하기 어려웠다. 초등학교 연한을 늘린다면 그나마 사정이 나아질 수도 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진로를 결정하는 독일 교육시스템은 독일어가 서툰 외국인 자녀들에게 불리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2008년 함부르크 시의회 선거에서 기민련은 녹색당과 연정을 맺었다. 이때 녹색당은 초등교육 기간 연장을 연정 협상에 담는 데 성공했다. 시의회 교육위원장이 된 크리스타 괴취(녹색당 소속)는 올레 폰 보이스트 시장(기민련)을 설득, 그를 학교제도 개혁의 전도사로 만들었다. 초등학교를 6년제로 늘려 학생들이 더 오래 함께 학교에 머물게 하고, 각자의 진로 선택은 그 후에 하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자민당만 제외하고 수긍하는 편이었다.
김나지움 약화 우려에 강력한 반대
그러나 문제는 학부모들이었다. 함부르크 학부모 연합회에서는 제도개혁안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나지움 교육의 약화 우려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원래 13학년까지 다녀야 했던 김나지움은 미국, 영국 등 국제 표준에 맞춘다는 명분하에 12학년까지 교육하는 것으로 바뀌는 추세라 초등학교를 제외한 순수 김나지움 교육기간이 9년에서 8년으로 줄어든 셈. 즉 초등학교를 6년제로 만들면 김나지움 교육기간도 6년으로 단축되는데, 그래서는 제대로 된 중등교육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 지역 아이들이 다른 지역 출신보다 대학 진학과 사회생활에서 열세에 놓인다는 게 학부모 연합회의 반대 논리였다.
독일인들의 김나지움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다. “김나지움을 건드리는 자,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이 정가에 불문율처럼 떠돌 정도다. 교육개혁안이 워낙 민감한 문제이다 보니, 함부르크 시의회는 이 사안을 시민 투표에 부쳤다. 전 독일의 시선이 함부르크로 쏠렸다. 유사한 개혁을 준비 중인 지역(자를란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니더작센)에서의 관심은 더욱 컸다.
7월 18일 투표가 치러졌다. 결과는 제도 개혁에 반대한 쪽의 승리였다(찬성 21만8000명, 반대 27만6000명). 투표율이 결정적 요인이었는데, 부유한 동네 투표율이 가난한 동네보다 두 배 이상 나왔다. 학교 개혁 전도사를 자처했던 올레 폰 보이스트 시장은 투표 당일 “정치에 피로를 느낀다. 시장에서 물러날 뿐 아니라 아예 정계를 떠나겠다”고 발표했고, 시의회 교육위원장인 크리스타 괴취 의원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각계각층의 논평이 뒤따랐는데, 그 내용은 소속 정파의 입장에 따라 다양했다. 베를린에서는 아쉬움의 탄식이 나온 반면 바이에른 사람들은 환호를 질렀다. 보수적인 바이에른 주정부는 전통 교육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주의 깊게 결과를 지켜봤던 자를란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니더작센 주는 ‘왜 함부르크의 개혁 시도가 실패했는지’ 분석에 들어갔다. 정치권이 지나치게 개혁을 서둘렀다는 진단이 나왔다. 정치권의 과도한 정책 추진 의욕이 반대자들을 자극해 그쪽 투표율이 높게 나왔다는 것.
결국 함부르크의 교육시스템은 기존 그대로 남게 됐다. 아이들은 4학년을 마치면 본인의 학습능력에 따라 상이한 중등학교에 진학할 것이다. 하지만 자유경쟁을 통한 수월성 향상과 사회 통합 및 공존의 두 가치관은 다시 나타나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일으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