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공간 자체가 유럽 최고 상류층의 방이 떠오를 정도로 고급스럽다.
1920~3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크게 유행했던 아르데코(Art Deco) 디자인 가구와 생활용품을 전시한 ‘아르데코 마스터피스’전을 보는 순간, 촌스러운 나무색 합판으로 만든 그 책장이 떠올랐어요. 실제로 서랍 문을 내려 책상으로 활용한 가구도 있었고요. 럭셔리와 기능성을 동시에 추구한 아르데코 스타일은 당시 상류층만 가질 수 있던 맞춤 주문제작 가구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공장에서 개성 없이 막 찍어낸 옛 가구가 생각난 거죠.
서울 종로 소격동 국제갤러리 신관에서 8월 15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아르데코 스타일의 고급 가구와 피카소 등 거장의 작품이 어우러진 공간을 선보이는데요. 언뜻 보면 책상과 책장, 전등, 소파, 그리고 차를 마시거나 게임을 즐기기 위한 테이블이 아기자기하게 놓인 평범한 방 같습니다. 하지만 낮잠을 위한 ‘데이베드(daybed)’는 마호가니 골격에 살굿빛 고급 벨벳이 씌워져 있고, 8각 테이블(가운데 사진)의 윗부분은 부드러운 상어 가죽으로 이뤄져 있으며, 책장은 나뭇결 하나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전시 작품들은 에밀 자크 룰만, 장 미셸 프랭크, 유진 프린츠 등 아르데코를 대표하는 거장들이 컬렉터들의 요구에 맞춰 직접 제작한 것인데요. 이런 가구 하나의 가격이 1920년대 당시 파리의 집 한 채, 최고급차 4대의 값이었다고 해요. 그러고 보니 책장에 놓인 화병들도 옻칠공예로 유명한 장 뒤낭의 작품이었죠. 정말로 고급스러운 이 공간에 대해 정혜연 국제갤러리 디렉터는 “유럽 최상류층 컬렉터의 방을 재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 아르데코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사그라지고 말죠. 그런데 저는 럭셔리와 실용성을 모두 강조한 이 스타일이 획일적인 대량생산 시대에서도 살아남았다고 보는데요. 어릴 때 저희 집에 있던 가구들이 그 증거죠. 비록 마호가니 나무와 고급 벨벳, 상어 가죽이 아닌 합판과 인조가죽으로 만들어졌지만 스타일만은 아르데코와 큰 차이가 없었거든요. 마치 피카소 그림이 담긴 이발소 달력처럼 말이죠.
그렇기에 이 전시는 더욱 재미가 있습니다. 조악한 복제품의 원형을 보는 즐거움이랄까. 또 오늘날 가구들이 지닌 ‘세련된 차가움’이 아닌 ‘오래된 따뜻함’도 느껴집니다. 문뜩 그 촌스럽던, 어릴 적 제 가구들이 그리워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