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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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페라하우스가 반한 선율

호주 한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원, 여왕 생일 축하 음악회서 확실한 ‘눈도장’

  • 시드니=윤필립 시인·호주 전문 저널리스트 phillipsyd@hanmail.net

    입력2010-07-26 15: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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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오페라하우스가 반한 선율
    6월 12일 밤,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음악회가 열렸다. 그런데 이날의 주인공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아닌 호주 한인동포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원(25) 씨였다. 시드니심포니를 지휘한 가이 노블은 “오늘은 여왕 생일을 축하하는 음악회라서 주로 영국 작곡가의 곡을 선정했는데, 김지원은 영국의 앙숙이었던 프랑스 태생 작곡가들의 선율로 우리의 영혼을 빼앗아갔다”며 “그의 성공적인 오페라하우스 데뷔를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뿐이 아니다. 호주의 저명한 소설가 겸 비평가인 밥 엘리스는 “오늘밤 오페라하우스의 여왕은 퀸 엘리자베스 2세가 아니라 ‘퀸 김지연’”이라면서 “내가 지금까지 수없이 들었던 ‘타이스의 명상곡’ 중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연주였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좀처럼 호평을 하지 않는 독설가이기도 하다.

    2700석에 이르는 오페라하우스 콘서트홀을 가득 메운 청중을 사로잡은 김씨의 카리스마는 강약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던 청중은 숨을 죽이며 바이올린 선율에 흠뻑 젖어들었고, 연주가 끝나자 박수갈채와 커튼콜이 이어졌다.

    김씨는 지난해 호주 최고 권위의 ‘ABC 젊은 연주가상’ 대상을 받은 호주 음악계 신성이다. 이날 연주도 ‘젊은 연주가상’ 대상 수상자에게 부여하는 특전이었다. 이 콩쿠르는 정상을 향해 가고자 하는 호주의 연주자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등용문. 경쟁도 치열하지만, 일단 그 관문을 통과하면 ‘떠오르는 샛별’ 대우를 받는다.

    ABC 젊은 연주가상 받은 ‘신성’



    이 콩쿠르는 여느 국제 콩쿠르와 많이 다르다. 180여 명의 연주자가 무려 8개월 동안 4차례 경연을 펼쳐 수상자를 뽑는다. 그로 인해 참가자들의 정신적 부담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3차와 4차 경연은 실제 연주회처럼 오케스트라와 1000명이 넘는 관중 앞에서 연주해야 한다. 현악, 피아노, 기타 악기 분야에서 우승자를 뽑은 다음, 악기 구분 없이 최종 경연을 벌여서 대상 수상자 한 명을 뽑는다. 콩쿠르 과정은 호주국영 ‘abc-FM’으로 생중계되고, 최종 결선은 ‘abc-TV’를 통해 방송한다.

    김씨는 ‘디 에이지’와의 인터뷰에서 “바이올린은 경이로운 악기다. 인간의 감정을 악기에 담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느끼는 바를 창조할 수도 있다. 사람의 목소리를 가장 많이 닮은 악기이며 몸통이 인체와 닮아서, 연주자들은 바이올린과 쉽게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하루에 5시간 정도 연습한다. 10시간씩 연습하는 다른 연주자들에 비해 긴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무리한 연습으로 손가락에 마비가 오거나 팔의 통증이 생길 수 있어 김씨는 시간을 늘리기보다 집중도를 높이는 쪽을 선택했다. 대신에 꿈속에서도 연주할 만큼 곡에 몰입한다.

    네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그가 훌륭한 연주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어머니 진성희(54) 씨의 역할이 컸다. 아마추어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어머니는 ‘세 자녀 중 하나는 세계 톱클래스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우겠다’고 결심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큰딸에게는 피아노와 플루트, 아들에게는 첼로와 클라리넷, 둘째딸인 김지원 씨에게는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그 가운데 김씨의 재능이 탁월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바이올린이 그냥 좋았다. 언니는 손가락과 어깨가 아프다고 징징거렸지만, 난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정경화, 장영주 등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비디오로 많이 보여주셨다.”

    다행히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재능을 타고났고,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연주 자체를 즐길 만큼 바이올린을 좋아했다.

    그날 오페라하우스가 반한 선율
    김씨가 호주에 온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로열멜버른어린이병원의 교환교수로 부임하며 온 가족이 호주로 왔다. 호주에서도 바이올린을 계속하며 여러 차례 콩쿠르에서 1위를 했다. 멜버른심포니 제1바이올린 주자에게서 “사라 장을 능가하는 재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김씨는 바이올린 실력 하나만으로 일류 사립학교인 카울필드 그래머스쿨에 전액 장학생으로 뽑혔고, 레슨비까지 제공받는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자 아버지의 교환교수 임기가 끝나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끝없는 경쟁과 일방적인 수업 방식 등 한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마음고생을 했지만 그럴수록 바이올린에 매달려 중학교 3학년 때 ‘음악저널’이 주최하는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1위를 했다. 그러나 막상 서울예고에 입학한 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지치기 시작했다. 음악과 바이올린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릴 무렵 “오스트리아로 진출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끊임없는 연습과 완벽한 연주만 추구하는 한국 음악계의 풍토에서 벗어나 음악 자체를 사랑하고 즐기는 연주자가 되고 싶었던 김씨는 결단을 내렸다. 테크닉에 강한 한국의 장점과 음악성을 추구하는 유럽의 장점을 조화롭게 살려내기 위해 클래식 음악의 본바닥으로 옮겨간 것.

    고작 6개월 독일어를 공부하고 그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 합격했다. 최연소 입학생(16)이었다. 그곳에서 다시 음악에 대한 열정을 찾았다. 물론 빈 국립음대에서 겪은 눈물겨운 시기도 있었다. 동료 학생들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재능이 넘쳐나 그는 골리앗 앞에 서 있는 다윗처럼 주눅이 들었던 것. 심각하게 귀국을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교수는 물론 선배나 친구들에게도 레슨을 요청해 도움을 받았다.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로 연주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잘츠부르크, 뉴욕, 스위스 시온, 도쿄 등에서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에 참가해 기량을 닦았다. 제12회 브람스 국제콩쿠르에서 1위를 했다.

    10월엔 연방국회의사당서 독주회

    그날 오페라하우스가 반한 선율
    5년의 학부과정을 3년 만에 마친 뒤 2004년(19) 빈 시립음대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석사과정 도중에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피아졸레 음악원에서 6개월간 추가로 수학하고, 1년 후 오스트리아 린츠의 브루크너 음대 대학원 과정을 다니던 중 ‘20세기 바이올린 대가’로 추앙받는 넬리 쉬코르니코바 교수가 멜버른 대학에서 가르친다는 소식을 접했다.

    김씨는 유럽에서 계속 경력을 쌓고 싶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서양인, 특히 유대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유럽 음악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쉬코르니코바 교수의 지도를 받기 위해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어릴 때부터 존경하고 좋아했던 쉬르코니코바 교수에게 배우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워낙 고령이라 늦어지면 영영 배움의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는 걱정도 앞섰다.

    호주인들은 이방인에 대해 유럽인들보다 따뜻했다. 연주 여건 역시 유럽보다 좋았다. 호주의 클래식 음악계가 미국이나 유럽보다 수준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특히 젊은 연주자를 적극 발굴하고 육성해서 호주는 젊은 연주자의 천국이나 다름없다.

    멜버른 음대 석사과정을 최우수로 졸업한 김씨는 활동무대를 시드니로 옮겼다. 2년 동안 사사한 쉬코르니코바 교수가 암에 걸려 더 이상 그를 가르칠 수 없었기 때문. 그는 시드니 음대 앨리스 와튼 교수한테 사사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시드니는 그에게 행운의 도시였다. 초청 연주 일정이 촘촘하게 잡혔다. 시드니심포니를 비롯해 멜버른심포니, 퀸즐랜드심포니, 애들레이드심포니 등과 협연하러 호주 전역의 대도시를 순회했다. 그사이 5월엔 독일 무대에 섰고 7월에는 대만에서 타이완심포니와 협연을 했으며, 이후 이스라엘에서 3주 동안 마스터클래스 참가와 몇 차례 연주회가 예정돼 있다.

    오는 10월 25일엔 호주연방국회의사당 중앙홀에서 바이올린 독주회를 연다. 연방국회와 호주기업인협회(AIG)가 공동 주관하는 이 연주회는 그해에 가장 괄목할 활동을 한 클래식 연주자를 초청해 갖는 연례행사로, 이 행사에 초청됐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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