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 방송에 앞서 로또 리허설 중인 ‘행운의 사나이’ 박찬민 아나운서와 ‘로또걸’ 조수아 씨. 2 방송 전에 지름 45mm, 무게 4g의 로또볼을 매번 검사한다. 3 로또볼이 든 가방은 봉인해 보관한다 .
워낙 짧은 순간에 큰돈의 향방이 갈리기 때문일까. 로또 당첨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2008년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이 로또 7대 의혹을 제기하고 2009년 감사원이 대대적인 조사까지 했지만 로또 조작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과연 로또 방송은 투명할까? 7월 17일 서울 SBS 목동 사옥 6층 공개홀에서 있었던 제398회차 로또 추첨을 기자가 참관했다.
방송 끝나면 추첨볼·추첨기 보관창고 봉인
오후 6시30분. 장마 첫 자락,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나눔로또 사업운영본부 운영지원팀 관계자 5명이 SBS 목동 사옥으로 들어섰다.
“2007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로또 추첨 방송 있는 토요일에 쉬어본 적이 없네요. 검수 및 방송 진행에 늘 5명 정도 필요하거든요.”
오후 8시45분경 SBS TV를 통해 전국 생중계되는 로또 추첨 방송은 복권법에 의거한 매뉴얼에 따라 매번 철저한 검수를 거친다. 2시간가량 진행되는 검수 및 리허설의 첫 순서는 추첨기와 추첨볼을 보관하는 창고의 봉인을 해제하는 것. 방송이 끝나면 추첨볼이 든 007 가방과 추첨기를 보관하는 창고는 봉인한다. 이는 외부에서 충격을 가하면 열리지만 한 번 잘리면 재사용할 수 없다.
SBS에는 총 3대의 기계가 보관돼 있는데 이 중 2대를 세트장에 설치한다. 실제 이용하는 것은 1대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다. 45개 추첨볼이 들어 있는 추첨볼 세트는 총 5세트. 각각의 기계와 볼세트를 세트장에 설치하고 기계의 작동 여부를 살핀다. 로또 기계가 보통 작동하는 시간은 약 1분. 작동 시간이 지나치게 길거나 짧으면 방송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점검한다. 모든 설치 및 테스트가 끝나는 오후 7시30분. 20여 명의 참관단이 들어온다. 그중 2명은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순번제로 파견 나온 경찰관이다. 그들은 매번 로또 검수과정 및 방송이 공정하게 이뤄지는지 감시한다.
“홍콩에서는 회계사, 대만에서는 고액 기부자, 한국에서는 경찰이 로또 추첨 전 과정을 감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나라별로 ‘공정성’을 상징하는 사람이 다른 거죠.”
방청객이 모두 입장하면 공식적인 사전검수가 시작된다. 먼저 추첨볼 무게와 둘레를 측정한다. “특정 추첨볼이 무거워 가라앉거나 가벼워 더 잘 뜨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잠재우기 위해서다. 5개 세트 모든 공의 무게와 둘레를 잴 수는 없으니 세트당 5개씩을 선정해 측정한다. 이때 각 세트 5개씩, 총 25개의 공을 고르는 역할은 방청객들이 맡는다. 검수 과정에는 총 3명의 일반 방청객이 참여하는데 이를 두고 ㈜나눔로또 관계자는 “로또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추첨 과정에 어떤 부정도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이날 방청객으로 참여한 김하나(22) 씨는 “실제 해보니 정말 공정하게 진행된다는 믿음이 갔다. 방송 준비를 돕는다는 재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로또 추첨볼은 지름 45mm, 무게 4g, 오차범위는 ±10%다. 이때는 추첨볼을 재기 위해 특수하게 제작된 저울을 이용한다. 맨 위에는 44mm원, 아래는 46mm원이 있다. 즉, 공이 위에서는 통과하지 않고 아래에서는 통과해야 하는 것. 그리고 가장 아래에는 소수점 둘째자리까지 측정하는 전자저울이 있다. 방청객 중 한 명이 골라주는 공을 나눔로또 직원이 일일이 측정한다. 그리고 경찰관 한 명은 이 과정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본다.
방청객이 눈 가리고 볼세트 선정
로또 검수 전 과정을 기록한 문서는 나눔로또 측에서 보관한다 .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추첨기 이름은 ‘비너스’. 프랑스에서 제작된 모델로 통 안의 공기가 공을 회전시키는데, 사방에 달린 홀에 순간적으로 문이 열렸을 때 그 안에 들어가는 공이 당첨공이 되는 방식이다. 기계 윗부분에는 총 6개의 투입구가 있는데 방청객이 눈을 가리고 선택한 볼을 방청객이 정한 가로 또는 세로 배열 방식에 따라 한 투입구당 7~8개를 순서 없이 넣고 동시에 아래로 떨어뜨린다. 그리고 3차례 테스트를 해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한다. 사전검수 과정이 끝나면 8시쯤. 일주일간의 로또 판매가 끝나는 시점과 일치한다.
이어 로또 추첨방송 리허설이 시작된다. 로또 추첨방송 9년차 SBS 박찬민 아나운서와 ‘로또걸’ 조수아 씨가 세트장에 들어선다. 3분 남짓한 로또 방송을 실제와 똑같이 리허설한다. 역시 한 차례 오차도 없다. 박 아나운서는 “지금까지 방송하면서 단 한 차례도 실수하거나 문제가 생긴 적이 없다. 워낙 사전검수 과정이 철저히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후 8시45분경. 드디어 방송이 시작된다. 오늘의 당첨번호는 10, 15, 20, 23, 42, 44, 보너스 번호는 7. 준비해간 로또를 꺼내보지만 한 줄에 겹치는 숫자가 2개 이상은 없다. 역시 꽝. 방송이 끝나고 방청객이 자리를 비우면 나눔로또, SBS 직원들은 다시 추첨기와 볼세트를 봉인하고 창고에 넣는다. “정말 로또 방송은 공정한가?”하고 묻자 박 아나운서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로또맨’을 하면서 6년간 줄곧 같은 번호로 로또를 사고 있는데 4등 한 번 됐네요. 만약 로또가 조작이라면 저부터 당첨돼야 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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