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백인들’(나무와 숲 펴냄)에서 마이클 무어가 미국 사회의 제도적 부조리와 정경유착 문제를 통렬히 비판한 데 이어, 문화역사학자 모리스 버만은 ‘미국 문화의 몰락’을 예고한다. 4~5세기경 로마제국처럼 미국은 화려했던 전성기를 뒤로하고 몰락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버만은 ‘미국 문화의 몰락’에서 얼핏 보기에 미국이 에너지와 활력이 넘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이러한 활력이 상품 구매와 소유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혼란스러움에 불과한 이런 에너지가 미국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공허함을 숨기는 구실을 해서 사람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게 만든다고 경고했다.
사실 미국 지식인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비슷한 경고를 했다. 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플란은 “미국이 겉으로는 민주주의라는 화려한 장식을 했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몇몇 기업이 권력을 휘두르는 과두정치 체제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고, 사회비평가인 토머스 프랭크는 “인간 의식에 대한 시장의 화려한 승리”라며 ‘암흑시대’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버만이 “미국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독일 철학자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저서 ‘서구의 몰락’에서 찾을 수 있다. 슈펭글러의 종말론적 역사관에 근거해 저자는 미국 몰락의 징후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가속화, 둘째 사회·경제적 문제를 사회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한 비용투자에 따른 한계이익 감소, 셋째 비판적 사고 및 지적 의식수준 등의 급격한 저하와 문맹률의 확산, 넷째 정신적인 죽음(문화의 저급화). 21세기 미국은 이미 이 네 가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둔재 생산국 미국’의 현실은 참담하다. 미국 성인의 42%가 세계지도에서 일본이 어디 있는지 모르고, 15%는 미국조차 찾지 못한다. 1996년 10월 설문조사에서 대통령 후보가 누구인지 모르는 유권자가 10명 중 1명. 저자는 과거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의 정신병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대통령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던 것을 상기시켰다. 그 밖에도 한 토크쇼에서 미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무작위 인터뷰를 한 결과, 지구에 달이 몇 개 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한 학생(천문학 수업은 A학점이었다고 함)이 있는가 하면, 3의 제곱을 6 혹은 27이라고 대답한 경우도 있다. 일본의 저술가 다치바나 다카시도 ‘도쿄대생은 바보가 됐는가’라는 책에서 일본 대학생들의 무식함을 개탄한 적이 있는데, 일본의 추락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미국 문화의 몰락’은 역설적으로 몰락을 막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여기서 저자는 ‘수도사적 해법’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문화를 지키기 위한 역사적 선례를 보면 로마제국의 혼란기에 그리스 로마가 남긴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 앞장선 것은 수도사들이었다. 이들은 그리스 로마시대의 책과 필사본을 모으고 베껴 600년 후 새로운 유럽 문화 태동에 쓰일 수 있도록 했다.
현대의 정신적 수도사들은 상업주의 광고에서 거짓과 진실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으며, 컴퓨터와 인터넷을 유용한 도구로 활용하지만 삶과 도구를 바꿀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이들은 다니엘 스틸 대신 호머를 읽고, 자녀를 데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러 가는 대신 캠핑이나 박물관을 찾는다. 진리의 탐구, 예술의 함양, 비판적 사고방식은 바로 이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즉 쇼핑이라는 오락에 빠져 있는 98%를 제외한 나머지 2%가 미국 사회를 구해낼 정신적 수도사가 될 것이다.
‘미국 문화의 몰락’은 미국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문화비평서이나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드러난다. 먼저 저자는 미국이 직면한 문화적 위기를 경고하는 데 급급해 정작 지켜야만 하는 ‘미국 문화’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또 ‘수도사적 해법’이 담고 있는 엘리트주의나 지나친 고급문화 취향은 거부감을 준다. 그러나 ‘지구를 살리자’ 유의 구호성 문화운동이 지닌 한계를 감안하면 소수가 조용히, 그렇지만 맡은 소임을 다하자는 ‘게릴라성 문화재건 운동’에 기대를 걸어봄직하다. 세계화 과정에서 더 이상 ‘미국 문화’가 미국만의 것이 아니듯, ‘미국 문화의 몰락’은 한가한 남의 나라 걱정거리로만 읽히지 않는다.
미국 문화의 몰락/ 모리스 버만 지음/ 심현식 옮김/ 252쪽/ 1만원
버만은 ‘미국 문화의 몰락’에서 얼핏 보기에 미국이 에너지와 활력이 넘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이러한 활력이 상품 구매와 소유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혼란스러움에 불과한 이런 에너지가 미국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공허함을 숨기는 구실을 해서 사람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게 만든다고 경고했다.
사실 미국 지식인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비슷한 경고를 했다. 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플란은 “미국이 겉으로는 민주주의라는 화려한 장식을 했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몇몇 기업이 권력을 휘두르는 과두정치 체제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고, 사회비평가인 토머스 프랭크는 “인간 의식에 대한 시장의 화려한 승리”라며 ‘암흑시대’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버만이 “미국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독일 철학자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저서 ‘서구의 몰락’에서 찾을 수 있다. 슈펭글러의 종말론적 역사관에 근거해 저자는 미국 몰락의 징후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가속화, 둘째 사회·경제적 문제를 사회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한 비용투자에 따른 한계이익 감소, 셋째 비판적 사고 및 지적 의식수준 등의 급격한 저하와 문맹률의 확산, 넷째 정신적인 죽음(문화의 저급화). 21세기 미국은 이미 이 네 가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둔재 생산국 미국’의 현실은 참담하다. 미국 성인의 42%가 세계지도에서 일본이 어디 있는지 모르고, 15%는 미국조차 찾지 못한다. 1996년 10월 설문조사에서 대통령 후보가 누구인지 모르는 유권자가 10명 중 1명. 저자는 과거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의 정신병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대통령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던 것을 상기시켰다. 그 밖에도 한 토크쇼에서 미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무작위 인터뷰를 한 결과, 지구에 달이 몇 개 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한 학생(천문학 수업은 A학점이었다고 함)이 있는가 하면, 3의 제곱을 6 혹은 27이라고 대답한 경우도 있다. 일본의 저술가 다치바나 다카시도 ‘도쿄대생은 바보가 됐는가’라는 책에서 일본 대학생들의 무식함을 개탄한 적이 있는데, 일본의 추락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미국 문화의 몰락’은 역설적으로 몰락을 막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여기서 저자는 ‘수도사적 해법’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문화를 지키기 위한 역사적 선례를 보면 로마제국의 혼란기에 그리스 로마가 남긴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 앞장선 것은 수도사들이었다. 이들은 그리스 로마시대의 책과 필사본을 모으고 베껴 600년 후 새로운 유럽 문화 태동에 쓰일 수 있도록 했다.
현대의 정신적 수도사들은 상업주의 광고에서 거짓과 진실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으며, 컴퓨터와 인터넷을 유용한 도구로 활용하지만 삶과 도구를 바꿀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이들은 다니엘 스틸 대신 호머를 읽고, 자녀를 데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러 가는 대신 캠핑이나 박물관을 찾는다. 진리의 탐구, 예술의 함양, 비판적 사고방식은 바로 이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즉 쇼핑이라는 오락에 빠져 있는 98%를 제외한 나머지 2%가 미국 사회를 구해낼 정신적 수도사가 될 것이다.
‘미국 문화의 몰락’은 미국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문화비평서이나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드러난다. 먼저 저자는 미국이 직면한 문화적 위기를 경고하는 데 급급해 정작 지켜야만 하는 ‘미국 문화’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또 ‘수도사적 해법’이 담고 있는 엘리트주의나 지나친 고급문화 취향은 거부감을 준다. 그러나 ‘지구를 살리자’ 유의 구호성 문화운동이 지닌 한계를 감안하면 소수가 조용히, 그렇지만 맡은 소임을 다하자는 ‘게릴라성 문화재건 운동’에 기대를 걸어봄직하다. 세계화 과정에서 더 이상 ‘미국 문화’가 미국만의 것이 아니듯, ‘미국 문화의 몰락’은 한가한 남의 나라 걱정거리로만 읽히지 않는다.
미국 문화의 몰락/ 모리스 버만 지음/ 심현식 옮김/ 252쪽/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