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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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가, 집단도취의 ‘파괴적 전령’

‘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 전 국민 하나로 묶어 … 독특한 리듬에 체험적 엑스터시 느껴져

  • < 강헌/ 대중음악 평론가 > authodox@empal.com

    입력2004-10-18 18: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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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원가, 집단도취의 ‘파괴적 전령’
    1987년 6월10일 한국 젊은이들의 이성을 하나로 묶어준 구호는 ‘호헌철폐 독재타도’였지만 그들의 뜨거운 심장을 고동치게 한 것은 ‘애국가’와 ‘아침 이슬’이었다. ‘애국가’의 장엄함과 ‘아침 이슬’의 영웅적인 비극성은 일체감이라는 강력한 주술을 수행하며 한국 현대사의 새 장을 기술하는 붉은 잉크가 되었다.

    그리고 15년 뒤의 6월 오늘, 우리는 똑같은 거리에서 당시에는 차마 입을 수 없었던 붉은 셔츠를 입고 연일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과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새로운 공동체적 체험의 엑스터시를 맛보고 있다. 87년의 열정을 상징하는 구호와 두 노래가 성가(anthem)적인 엄숙한 민족주의였다면, 2002년의 그것은 고유의 신명을 바탕으로 한 축제적 민족주의 미학이다. 이 집단적 동일성은 지금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고, 이 환각의 한가운데에 바로 구호와 노래가 놓여 있다.

    거리의 외국인들조차 스스럼없이 따라 하는 ‘대~한민국’ 구호부터 살펴보자. 원래 수원 삼성구단 서포터들이 자신의 팀을 위해 만든 구호 리듬에 ‘대~한민국’을 붙인 것이다. 이 국가 연호는 기본적으로 4박자 두 마디의 틀을 지니고 있지만, 박자라는 서양적 리듬감각만으로 해부하기 어려운 기묘한 시간의 울림을 지니고 있다. 본래 2박자 중심적인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일본에서는 ‘니폰 짝짝 짝’이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단순반복적으로 2박자의 국호를 연호한다. 그러나 ‘붉은 악마’에 의해 널리 퍼진 한국의 구호는 어쩌면 우리의 전통적인 7채 장단의 DNA가 현대적 리듬감각과 결합하면서 재해석되고 재탄생한 듯하다.

    도전적 몸동작에 절묘하게 어울려

    응원가, 집단도취의 ‘파괴적 전령’
    이 독특한 구호엔 한민족 고유의 박진감과 휴지감, 그 찰나의 순간에 엇갈리는 독창적인 리듬의 특성이 복류하고 있다. 축구가 민족과 국가, 그리고 이념과 종교, 언어와 젠더의 벽을 넘어 글로벌리즘을 구현하고 있다면 이 구호는 한국의 독창적인 로컬리즘을 보여준다. 그것이 한국이라는 땅에서 훌륭히 융합하고 있다.



    구호와 함께 전국을 열광의 용광로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노래는 단연 ‘오 필승 코리아’다. 사실 노래라고 하기엔 너무 짧고, 단 두 마디의 선율은 집단 안무를 동반한 구호에 가깝다. 부천 구단의 응원가로 시작되었다가 ‘붉은 악마’에 의해 대표팀 응원가로 자리잡았고, 모 통신사의 광고음악으로 널리 알려진 이 노래가 지금 한국 록밴드의 자존심인 윤도현 밴드의 최대 히트곡이 되었다.

    두 마디 선율의 출처는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어쩌면 노래 ‘사노라면’처럼 익명의 가슴속에서 탄생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짧은 두 마디가 여섯 번 반복하는 동안 우리는 축구경기를 넘어서 어떤 초월의 극점에 도달하는 듯한 도취감을 경험한다. 이 노래는 그 집단 도취의 가장 효과적이고 파괴적인 영매인 셈이다.

    노래의 첫 서주는 강인하고 용맹한 중간 템포로 운을 뗀다. 그리고 첫 반복 테마에서 균형을 잡은 뒤 세 번째 대목에서 비약적으로 상승하며 ‘오오오오오’의 스타카토 후렴을 불러온다. 이때의 안무, 아니 액션이(붉은 악마의 응원에 가담해 본 이들은 몸으로 느꼈겠지만) 하이라이트인데, 약 45도 전방을 향해 비스듬히 튼 자세에서 리듬에 맞춰 상체를 앞으로 내미는 비트는 상당히 도전적이며 공격적이다.

    응원가, 집단도취의 ‘파괴적 전령’
    그리고 이어지는 반복의 마무리는 바로 머플러를 휘두르며 수직으로 뛰어오르는 도약의 에너지 섹션이다. 단언컨대 어떤 축구 선진국의 팬덤문화에서도 이와 같이 요약적이면서 복합적이고 미적으로 세련된 공간과 시간의 교직점을 창출해내지 못했다.

    월드컵 신드롬을 상징하는 앞의 두 응원 구호와 노래 외에도 우리는 붉은 악마의 부지런한 노력에 힘입어 몇 가지 응원가를 더 갖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아리랑’. 몇 차례 남북 단일팀 구성 때 한시적 통일 국가(國歌)로 쓰였던 이 민요는 경기가 시작되고 난 뒤 심리적 안정감과 정서적 헤게모니를 선취하는 데 주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불발로 끝난 남북 단일팀이 실현되었더라면 더욱 감동적으로 한반도를 물결치게 했을 것이다.

    응원가 중에는 독특하게도 두 개의 서양 고전음악 테마가 있다. 목청 팡파르로 합창하는 베토벤 9번 교향곡 4악장 ‘환희의 송가’ 테마와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중 ‘개선행진곡’이 그것이다. 이 두 응원가는 개최국으로서 내셔널리즘을 벗어나 세계에 보내는 동참과 공감의 메시지다. 전자는 인류의 위대한 이상을, 후자는 인간이 지닌 낭만주의의 광채를 구현한다.

    아리랑·개선행진곡도 응원가 한몫

    응원가, 집단도취의 ‘파괴적 전령’
    특히 한밭벌 혈투였던 16강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베르디의 테마는 참으로 미묘한 울림을 자아냈는데, 바로 베르디가 민족국가 완성기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국민음악가였기 때문이다. 아주리 유니폼을 입고 입장한 이탈리아 선수들과 팬들은 자국의 멜로디를 들으며 어떤 감흥을 느꼈을지 자못 궁금하다. 경기 후 이탈리아 언론의 치졸한 쇼비니즘적 작태가 이 역사적인 경기를 동네싸움 수준으로 전락시키면서 유럽 중심주의의 오만과 방자함으로 얼룩지게 된 것이 참으로 유감스럽다.

    6월25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질 4강전 상대는 독일. 이때 베토벤 ‘합창’ 테마에 경기장 안의 한국과 독일 관중들이, 아니 한국 거리의 시민들과 독일 거리의 시민들이 ‘오 필승 코리아’와 ‘환희의 송가’를 함께 부른다면 이 또한 20세기의 월드컵에서 보지 못한 환상적인 장면이 아니겠는가? 정말이지 4강이나 우승보다도 그 장면을 목격하고 싶다.

    지난 3주 동안의 응원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며, 붉은 것이 단순히 여러 색깔 중 하나가 아님을 확인했다. “혁명이 있기 전엔 모든 깃발은 헝겊에 지나지 않았지만, 혁명이 있고 난 후엔 모든 헝겊은 깃발이 되었다”는 어느 시인의 웅변처럼 우리는 2002년 6월을 정점으로 또 다른 세계를 우리들 속에서 발견했다.

    매맞아 가며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하고 아침 조례마다 지루하게 애국가 4절까지를 불러대야 했던 위로부터의 국가관은 단숨에 폐기되었고, 첫 데이트에 나가는 두근거림으로 맞이하게 된 자신의 국가와 또 다른 나라들. 한국의 경기마다 국가가 울려 퍼질 때 붉은 악마의 응원석에서 마치 환영처럼 펼쳐졌다 사라지는 태극기를 보며 우리는 처음으로 강요되지 않은, 그리고 닫혀 있지 않은 감동의 애국심을 경험한 것이다.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포르투갈과의 경기가 끝난 뒤 옆자리에 앉아 있던 포르투갈 중년 남자는 자국의 탈락에도 불구하고 한쪽 눈을 찡긋하며 엄지손가락을 펴 보였다. 그저 한국 축구의 승리에 대한 축하 인사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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