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오른쪽 비었다. 빨리 패스해!” “슛~.”
6월4일 한강시민공원 망원지구 축구장. 마포여성축구단 선수들이 국가대항전 못지않은 열기로 연습경기를 벌이고 있다. 4-4-2 진을 펼쳐놓고 밀고 당기는 선수들. 양편으로 나뉜 주부들의 고함소리가 끝없이 메아리치고, “와…” “아…” 환호와 탄식이 엇갈린다. 다부진 종아리에서 나오는 ‘강슛’, 온몸을 내던지는 태클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줌마’들이 축구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바야흐로 여자축구의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있는 것. 1949년 동대문구장에서 최초의 여자축구 경기가 열렸지만, 그 경기를 끝으로 40여년 동안 축구는 남자들만의 스포츠였다. 여자축구는 긴 동면기를 거친 뒤 1999년 미국 여자월드컵을 계기로 꿈틀대기 시작했다. 어머니축구단과 지역 YMCA 주부축구단이 속속 창단돼 현재 울산에만 8팀, 전국적으로 50여개의 아줌마축구단이 활동중이다.
“축구에 미친 여자 딱 내 얘기”
6월12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성내천 둔치에 자리잡은 축구장. 98년 창단된 송파여성축구단 선수들이 굵은 빗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관객들 앞에서 시범경기를 선보이고 있다. 관객들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달려온 150여명의 유치원 어린이들. 빗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선수들을 진두지휘하는 주부 한 명이 20여명의 선수 중 유독 눈에 띈다.
송파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김정희씨(42·서울 송파구 방이동)가 그 주인공. 수비형 미드필더로 게임에 나선 김씨는 큰 목소리로 선수들을 독려하며 경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는 경기 내내 월드컵 미국전에서 눈여겨봐 둔 김남일 선수의 플레이를 복기했다고 한다. 김씨와 김선수는 같은 포지션. 국가대표팀과 송파축구단이 맞붙는다면 김씨는 김선수의 ‘카운터파트’가 되는 셈이다.
“월드컵 중계를 시청하면서 수비형 미드필더들의 플레이를 모니터하고 있어요. 오늘은 김남일 선수의 흉내를 내려 했는데 마음처럼 몸이 따르지 않더군요.”
김씨가 축구에 입문한 것은 98년 송파구청이 모집한 주부축구교실 회원에 응모하면서부터. 축구교실에 등록한 초기 멤버는 150명이었는데, 강훈련을 이기지 못해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주부 100여명이 떨어져 나갔다. 체력이 따라주는 ‘열성 아줌마’들만 남았는데 공교롭게도 ‘살아남은’ 사람들 대부분이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 주부들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남편으로부터 “여자가 무슨 축구냐” “창피하니 그만두라”는 말을 들은 ‘왕초보’들이었지만, 이제는 웬만한 기술을 모두 익힌 데다 러닝으로 체력을 다져 중학생 남자선수와도 어울릴 정도로 실력을 갖추었다. 반대하던 남편들도 축구를 통해 건강하고 활기차게 생활하는 부인들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됐다. 지방에서 경기가 열릴 때면 온 가족이 원정응원에 나서 엄마, 아내, 할머니에게 힘을 실어준다. 김씨는 축구를 하면서 얻은 것은 건강과 활력, 잃은 것은 날씬한 종아리와 하얀 피부라고 했다.
“바지를 살 때도 허벅지, 종아리에 맞춰야 해요. 굵은 장딴지와 검은 피부가 여자에게 자랑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축구의 매력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로 모릅니다. ‘축구에 미친 여자’란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아요. 축구가 어떤 매력이 있냐고요? 딱 한 달만 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승패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경기에 패하면 속이 상하는 것은 인지상정. 5월23일 대전광역시장배 축구대회에서 김씨가 이끄는 송파팀은 울산 캥거루축구단과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1대 0으로 패했다. 김씨는 이상하게 캥거루팀만 만나면 맥을 추지 못한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승전에서 만난 캥거루축구단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여성축구단. 송파팀처럼 30대 후반과 40대를 주축으로 팀이 구성돼 있다. 캥거루팀은 제1, 2회 전국여성축구대회(2000, 2001년)를 제패했고 지난해엔 문화관광부 장관배도 거머쥐었다.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여자가 그것도 주부가 축구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어요. 아줌마들이 남자들이나 하는 억센 운동을 한다고 놀림감이 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6년 동안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저희들이 여자축구의 프런티어인 셈이죠.”
캥거루팀 회장 장순천씨(40·울산 동구 방어동)는 전국 최초로 창단된 여성축구단의 창단멤버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99년 만들어진 최초의 여성실업팀 숭민선더스보다도 창단이 2년이나 빠르다는 것. 장씨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팀 내에서 국가대표팀의 이천수 선수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들어 다른 팀들도 실력이 크게 늘고 있지만 랭킹 1위를 유지할 자신이 있어요. 역사도 가장 오래됐고 훈련도 가장 열심히 한다고 자부합니다. 생활체육으로 시작한 축구팀이 이렇게 발전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죠.”
아줌마 축구선수 중엔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에 노익장을 과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마포여성축구단의 김숙자(63) 할머니가 바로 그런 경우. 풀백을 맡고 있는 김할머니는 9명의 손자들의 응원을 받으며 그라운드를 누빈다. 10년 넘게 축구로 건강을 유지해 온 김할머니는 40대 후반으로 보일 정도로 건강하다.
“나이 먹고, 늙어보면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 내가 먼저 튼실해야 자식들도 잘되지. 그래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을 차는 거야. 건강하려고 공을 차기 시작했는데 몸만 좋아지는 게 아니라 정신도 건강해지더라고.”
김할머니는 경력 10년을 자랑하는 베테랑 축구선수다. 할아버지와 함께 조기축구회에서 공을 차기 시작했는데, 싱싱한 젊은이들이 킥한 강한 공을 맞으면 아프기는커녕 되레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매일 아침 한강시민공원을 찾아 할아버지와 ‘똥볼’(두 사람이 롱패스를 주고받는 것)을 차길 수년. 언제부터인가 잔병치레 한번 하지 않았다.
‘아, 요것이 보약보다 좋다는 축구의 효험이구나! 옳다꾸나’ 싶었던 김할머니는 97년 주부축구교실에 등록해 전문적으로 축구를 배우기 시작했고 2000년 7월 마포여성축구단이 창단될 때 창단멤버로 참여했다. 그는 축구단 연습 외에 요즘도 매일 아침 할아버지와 똥볼을 차고, 주말엔 손주 아들과 함께 드리블 슈팅연습을 한다. 하루라도 축구를 거르면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는 것. 김할머니는 “공을 다루는 솜씨를 타고난 막내손주는 꼭 국가대표 축구선수로 만들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아마추어 여자 축구선수들에게 축구를 시작한 이유를 물으면, 한결같이 “살을 빼려고 시작했다. 그런데 축구의 매력에 빠져 이젠 다른 운동은 재미가 없어 못한다”고 답한다. 월드컵 쾌거! 어찌 보면 엘리트 선수들의 성적보다 생활체육으로서의 저변 확대가 축구발전에 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지금도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운동장을 내달리는 아줌마들의 함성이 전국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6월4일 한강시민공원 망원지구 축구장. 마포여성축구단 선수들이 국가대항전 못지않은 열기로 연습경기를 벌이고 있다. 4-4-2 진을 펼쳐놓고 밀고 당기는 선수들. 양편으로 나뉜 주부들의 고함소리가 끝없이 메아리치고, “와…” “아…” 환호와 탄식이 엇갈린다. 다부진 종아리에서 나오는 ‘강슛’, 온몸을 내던지는 태클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줌마’들이 축구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바야흐로 여자축구의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있는 것. 1949년 동대문구장에서 최초의 여자축구 경기가 열렸지만, 그 경기를 끝으로 40여년 동안 축구는 남자들만의 스포츠였다. 여자축구는 긴 동면기를 거친 뒤 1999년 미국 여자월드컵을 계기로 꿈틀대기 시작했다. 어머니축구단과 지역 YMCA 주부축구단이 속속 창단돼 현재 울산에만 8팀, 전국적으로 50여개의 아줌마축구단이 활동중이다.
“축구에 미친 여자 딱 내 얘기”
6월12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성내천 둔치에 자리잡은 축구장. 98년 창단된 송파여성축구단 선수들이 굵은 빗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관객들 앞에서 시범경기를 선보이고 있다. 관객들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달려온 150여명의 유치원 어린이들. 빗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선수들을 진두지휘하는 주부 한 명이 20여명의 선수 중 유독 눈에 띈다.
송파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김정희씨(42·서울 송파구 방이동)가 그 주인공. 수비형 미드필더로 게임에 나선 김씨는 큰 목소리로 선수들을 독려하며 경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는 경기 내내 월드컵 미국전에서 눈여겨봐 둔 김남일 선수의 플레이를 복기했다고 한다. 김씨와 김선수는 같은 포지션. 국가대표팀과 송파축구단이 맞붙는다면 김씨는 김선수의 ‘카운터파트’가 되는 셈이다.
“월드컵 중계를 시청하면서 수비형 미드필더들의 플레이를 모니터하고 있어요. 오늘은 김남일 선수의 흉내를 내려 했는데 마음처럼 몸이 따르지 않더군요.”
김씨가 축구에 입문한 것은 98년 송파구청이 모집한 주부축구교실 회원에 응모하면서부터. 축구교실에 등록한 초기 멤버는 150명이었는데, 강훈련을 이기지 못해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주부 100여명이 떨어져 나갔다. 체력이 따라주는 ‘열성 아줌마’들만 남았는데 공교롭게도 ‘살아남은’ 사람들 대부분이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 주부들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남편으로부터 “여자가 무슨 축구냐” “창피하니 그만두라”는 말을 들은 ‘왕초보’들이었지만, 이제는 웬만한 기술을 모두 익힌 데다 러닝으로 체력을 다져 중학생 남자선수와도 어울릴 정도로 실력을 갖추었다. 반대하던 남편들도 축구를 통해 건강하고 활기차게 생활하는 부인들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됐다. 지방에서 경기가 열릴 때면 온 가족이 원정응원에 나서 엄마, 아내, 할머니에게 힘을 실어준다. 김씨는 축구를 하면서 얻은 것은 건강과 활력, 잃은 것은 날씬한 종아리와 하얀 피부라고 했다.
“바지를 살 때도 허벅지, 종아리에 맞춰야 해요. 굵은 장딴지와 검은 피부가 여자에게 자랑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축구의 매력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로 모릅니다. ‘축구에 미친 여자’란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아요. 축구가 어떤 매력이 있냐고요? 딱 한 달만 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승패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경기에 패하면 속이 상하는 것은 인지상정. 5월23일 대전광역시장배 축구대회에서 김씨가 이끄는 송파팀은 울산 캥거루축구단과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1대 0으로 패했다. 김씨는 이상하게 캥거루팀만 만나면 맥을 추지 못한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승전에서 만난 캥거루축구단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여성축구단. 송파팀처럼 30대 후반과 40대를 주축으로 팀이 구성돼 있다. 캥거루팀은 제1, 2회 전국여성축구대회(2000, 2001년)를 제패했고 지난해엔 문화관광부 장관배도 거머쥐었다.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여자가 그것도 주부가 축구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어요. 아줌마들이 남자들이나 하는 억센 운동을 한다고 놀림감이 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6년 동안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저희들이 여자축구의 프런티어인 셈이죠.”
캥거루팀 회장 장순천씨(40·울산 동구 방어동)는 전국 최초로 창단된 여성축구단의 창단멤버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99년 만들어진 최초의 여성실업팀 숭민선더스보다도 창단이 2년이나 빠르다는 것. 장씨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팀 내에서 국가대표팀의 이천수 선수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들어 다른 팀들도 실력이 크게 늘고 있지만 랭킹 1위를 유지할 자신이 있어요. 역사도 가장 오래됐고 훈련도 가장 열심히 한다고 자부합니다. 생활체육으로 시작한 축구팀이 이렇게 발전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죠.”
아줌마 축구선수 중엔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에 노익장을 과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마포여성축구단의 김숙자(63) 할머니가 바로 그런 경우. 풀백을 맡고 있는 김할머니는 9명의 손자들의 응원을 받으며 그라운드를 누빈다. 10년 넘게 축구로 건강을 유지해 온 김할머니는 40대 후반으로 보일 정도로 건강하다.
“나이 먹고, 늙어보면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 내가 먼저 튼실해야 자식들도 잘되지. 그래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을 차는 거야. 건강하려고 공을 차기 시작했는데 몸만 좋아지는 게 아니라 정신도 건강해지더라고.”
김할머니는 경력 10년을 자랑하는 베테랑 축구선수다. 할아버지와 함께 조기축구회에서 공을 차기 시작했는데, 싱싱한 젊은이들이 킥한 강한 공을 맞으면 아프기는커녕 되레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매일 아침 한강시민공원을 찾아 할아버지와 ‘똥볼’(두 사람이 롱패스를 주고받는 것)을 차길 수년. 언제부터인가 잔병치레 한번 하지 않았다.
‘아, 요것이 보약보다 좋다는 축구의 효험이구나! 옳다꾸나’ 싶었던 김할머니는 97년 주부축구교실에 등록해 전문적으로 축구를 배우기 시작했고 2000년 7월 마포여성축구단이 창단될 때 창단멤버로 참여했다. 그는 축구단 연습 외에 요즘도 매일 아침 할아버지와 똥볼을 차고, 주말엔 손주 아들과 함께 드리블 슈팅연습을 한다. 하루라도 축구를 거르면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는 것. 김할머니는 “공을 다루는 솜씨를 타고난 막내손주는 꼭 국가대표 축구선수로 만들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아마추어 여자 축구선수들에게 축구를 시작한 이유를 물으면, 한결같이 “살을 빼려고 시작했다. 그런데 축구의 매력에 빠져 이젠 다른 운동은 재미가 없어 못한다”고 답한다. 월드컵 쾌거! 어찌 보면 엘리트 선수들의 성적보다 생활체육으로서의 저변 확대가 축구발전에 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지금도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운동장을 내달리는 아줌마들의 함성이 전국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