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22일 스페인을 꺾음으로써 세계 축구계는 히딩크 감독에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아낌없이 내줬다. 일어날 수 없을 것 같던,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마술로 지구촌을 경악케 한 선물이다. 오랜 축구 ‘변방’ 한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옮겨놓은 히딩크 감독은 각기 다른 두 나라를 월드컵 4강으로 견인한 최초의 지도자가 됐다. 그 전인미답의 업적을 이루는 데 소요한 시간은 겨우 4년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 히딩크는 우리에게 큰 상처를 준 사람이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오렌지 군단’(네덜란드)은 한국을 무참히 짓밟는다(5대 0). ‘아시아의 제왕’으로 군림하며 적잖은 시간 어깨에 들어가 있던 한국의 과장된 힘은 당시의 참패로 풍선에 바람 빠지듯 사그라진다. 시드니올림픽 예선 탈락, 아시안컵 부진 등 뒤이은 실패는 일본의 쾌속행진(아시안컵 우승, 시드니올림픽 8강 진입)과 대비되어 상대적 패배감을 더했다. 게다가 월드컵 개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한 전례가 없었다는 점은 더 큰 부담으로 한국 축구계를 압박한다. 탈출구가 필요했고, 변하지 않고는 스스로 견딜 수 없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위기상황을 인식한 한국축구협회는 ‘용병’ 지도자에 눈을 돌렸다. 보수적인 축구계지만 당시 상황은 그것을 논할 계제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히딩크 감독을 겨냥하진 않았다. ‘최고’의 사령탑을 원했던 협회는 98년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끈 에메 자케 감독을 1순위에 두고 접촉을 시도한다. 그러나 에메 자케는 유소년축구 육성이라는 표면적 이유를 내세워 한국의 제안을 고사했다.
‘차선’이었던 히딩크 감독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당시 스페인 명문클럽 레알 마드리드를 거쳐 레알 베티스를 맡은 후 휴식기를 갖고 있던 히딩크는, 유럽 클럽팀 또는 뜻 맞는 대표팀을 물색중이었다. 사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의 제안을 받고도 상당히 망설였다. “감독 제안을 받았을 때 솔직히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한국이란 나라를 잘 알지 못했을 뿐더러 월드컵에서 네덜란드가 크게 이긴 팀이기에 껄끄럽기도 했다.” 히딩크의 말이다.
물론 지금도 본인 외에는 속내를 알 수 없다. 왜 한국이란 축구 변방국을 택했는지. 다만 지도자로서의 승부욕, 48년 월드컵 도전사에 1승도 거두지 못한 나라를 맡아 16강이란 ‘기적’을 일궈내고 싶은 승부사 기질이 발동하지 않았을까라고 짐작할 뿐이다.
모든 것을 바꿔라
“한국 선수들의 기술은 우수하다. 그러나 체력과 정신력은 아직 부족하다.” 히딩크 감독의 이 한마디는 국내 축구계를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일반화된, 너무나 깊이 뿌리내린 고정관념을 통째 뒤집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그 누가 이 엉뚱한 결론에 동의하겠는가. 체력과 정신력으로 대변되는 한국 축구, 그러나 기술이 부족해 늘 세계 수준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해 온 한국인들에게 명장의 한마디는 충격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무작정 필드를 누비는 단순 활동량이 아닌, 순간 움직임과 피로회복 속도의 간격을 좁혀 효과적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효율성을 체력의 기본으로 파악했다. 마찬가지로 정신력을 근성의 개념으로 이해한 한국적 사고방식을 경계했다. 근성은 단지 정신력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함께 정신력을 일곱 가지로 분류한 히딩크 감독은 그중 내적 동기 부여와 헌신도 측면에서 한국 선수들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 반면 성취도와 의사소통, 책임감, 자신감, 실전 경험 등의 항목에 대해서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지적 사항에 대한 체질개선 작업에 초점을 맞춘다.
현대축구의 ‘생존 키워드’를 스피드와 프레싱(압박)으로 분석한 히딩크 감독. 그의 예견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몸싸움과 개인기로 요약되는 유럽과 남미 중심의 월드컵이 이번 대회 들어 급속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세계 축구의 흐름이기도 하다. 이변, 돌풍이란 표현으로 소개되지만 사실 자연스러운 추세라 해야 옳다. 축구는 흐르는 물과 같아 정체되는 법이 없다. 한때를 풍미하는 전술이 나오면 다른 한편에선 그 해법을 연구해서 새로운 전술을 내놓게 마련이다. 2002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이 그 주인공이 됐다.
네덜란드를 4강 대열에 올려놓은 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토털사커’에서 한 단계 진화한 현란한 ‘상황 포메이션’으로 세계 축구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가, 4년이 지난 이번 대회에선 스피드와 압박이란 신상품을 출시한 것이다. 그리고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내로라하는 세계 정상급 강호들이 여기에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단순한 전술 같지만 실상 여기엔 축구의 모든 것이 포함돼 있다. 강한 체력, 상대를 압도하는 순간적 폭발력, 커버플레이와 포지션 체인지 등 유기적 플레이를 만들어내는 고도화된 전술 이해력, 경기 흐름 파악 등. 17개월에 걸친 훈련으로 히딩크 감독은 이름없는 한국 선수들을 정상 레벨의 플레이어로 만들었다.
인간 히딩크는 어떤 사람?
그의 입담은 타고났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버린다. 간혹 철저한 ‘정보 차단’으로 기자들을 당혹케 하지만, 일상의 유머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입력’은 지나칠 수 없는 매력이다. 그가 있는 기자 회견장엔 웃음이 따라다닌다. 히딩크를 보면 “쫓겨나기 위해 고용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를 달고 다니는 축구감독이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가장 가까이서 히딩크 감독을 지켜보며, 히딩크 감독의 공식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허진 미디어 담당관은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는 장점을 지닌 재치가 넘치는 사람이다. 필드에선 불 같은 열정을 쏟아내지만 경기장 밖에선 자기 생활을 가꿀 줄 아는 여유를 가졌다. 치열한 스페인 리그에서 활동한 탓인지 다혈질인 면도 있다. 그러나 뒤끝은 없다. 합리적 사고는 특히 돋보이는 강점이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 싶으면 바로 인정하는 스타일이다. 히딩크 감독을 통해 팀에서 지도자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때가 많다. 그는 분명 뛰어난 감독”이라고 말한다.
히딩크 감독 전담 운전기사 김재한씨 또한 “적어도 차에서만큼은 그렇게 부드러울 수 없는 사람이다. 이동중에도 축구 관련 자료를 들춰볼 정도로 축구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열정을 보인다. 항상 노력하는 진지한 모습엔 존경심마저 우러난다”고 한다.
프랭크 시내트라의 명곡 ‘My way’를 즐겨 부르며 승리의 기쁨을 샴페인으로 자축하는 히딩크, 그가 보여주는 힘의 원천엔 연인 엘리자베스가 자리하고 있다. 언젠가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내 마음의 고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만큼 엘리자베스는 히딩크에게 적잖은 버팀목이 돼주는 것 같다. 한때 대표팀의 성적이 부진하자 애꿎은 사생활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지만 국민적 영웅으로 자리매김한 지금은 다르다. 두 사람의 사랑을 비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꿈은 크다. 16강 이상에 대한 모든 계획이 머릿속에 담겨 있다고 했고, 벌써 4강을 밟았다. 철저한 지략가이기도 한 그의 가슴은 분명 우승에 대한 청사진을 품고 있을 것이다. 물론 드러내진 않는다. 암시에 그칠 뿐. ‘무적함대’ 스페인을 울린 그날(6월22일) 히딩크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한국의 전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잘 알려져 있듯 히딩크는 우리에게 큰 상처를 준 사람이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오렌지 군단’(네덜란드)은 한국을 무참히 짓밟는다(5대 0). ‘아시아의 제왕’으로 군림하며 적잖은 시간 어깨에 들어가 있던 한국의 과장된 힘은 당시의 참패로 풍선에 바람 빠지듯 사그라진다. 시드니올림픽 예선 탈락, 아시안컵 부진 등 뒤이은 실패는 일본의 쾌속행진(아시안컵 우승, 시드니올림픽 8강 진입)과 대비되어 상대적 패배감을 더했다. 게다가 월드컵 개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한 전례가 없었다는 점은 더 큰 부담으로 한국 축구계를 압박한다. 탈출구가 필요했고, 변하지 않고는 스스로 견딜 수 없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위기상황을 인식한 한국축구협회는 ‘용병’ 지도자에 눈을 돌렸다. 보수적인 축구계지만 당시 상황은 그것을 논할 계제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히딩크 감독을 겨냥하진 않았다. ‘최고’의 사령탑을 원했던 협회는 98년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끈 에메 자케 감독을 1순위에 두고 접촉을 시도한다. 그러나 에메 자케는 유소년축구 육성이라는 표면적 이유를 내세워 한국의 제안을 고사했다.
‘차선’이었던 히딩크 감독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당시 스페인 명문클럽 레알 마드리드를 거쳐 레알 베티스를 맡은 후 휴식기를 갖고 있던 히딩크는, 유럽 클럽팀 또는 뜻 맞는 대표팀을 물색중이었다. 사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의 제안을 받고도 상당히 망설였다. “감독 제안을 받았을 때 솔직히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한국이란 나라를 잘 알지 못했을 뿐더러 월드컵에서 네덜란드가 크게 이긴 팀이기에 껄끄럽기도 했다.” 히딩크의 말이다.
물론 지금도 본인 외에는 속내를 알 수 없다. 왜 한국이란 축구 변방국을 택했는지. 다만 지도자로서의 승부욕, 48년 월드컵 도전사에 1승도 거두지 못한 나라를 맡아 16강이란 ‘기적’을 일궈내고 싶은 승부사 기질이 발동하지 않았을까라고 짐작할 뿐이다.
모든 것을 바꿔라
“한국 선수들의 기술은 우수하다. 그러나 체력과 정신력은 아직 부족하다.” 히딩크 감독의 이 한마디는 국내 축구계를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일반화된, 너무나 깊이 뿌리내린 고정관념을 통째 뒤집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그 누가 이 엉뚱한 결론에 동의하겠는가. 체력과 정신력으로 대변되는 한국 축구, 그러나 기술이 부족해 늘 세계 수준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해 온 한국인들에게 명장의 한마디는 충격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무작정 필드를 누비는 단순 활동량이 아닌, 순간 움직임과 피로회복 속도의 간격을 좁혀 효과적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효율성을 체력의 기본으로 파악했다. 마찬가지로 정신력을 근성의 개념으로 이해한 한국적 사고방식을 경계했다. 근성은 단지 정신력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함께 정신력을 일곱 가지로 분류한 히딩크 감독은 그중 내적 동기 부여와 헌신도 측면에서 한국 선수들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 반면 성취도와 의사소통, 책임감, 자신감, 실전 경험 등의 항목에 대해서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지적 사항에 대한 체질개선 작업에 초점을 맞춘다.
현대축구의 ‘생존 키워드’를 스피드와 프레싱(압박)으로 분석한 히딩크 감독. 그의 예견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몸싸움과 개인기로 요약되는 유럽과 남미 중심의 월드컵이 이번 대회 들어 급속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세계 축구의 흐름이기도 하다. 이변, 돌풍이란 표현으로 소개되지만 사실 자연스러운 추세라 해야 옳다. 축구는 흐르는 물과 같아 정체되는 법이 없다. 한때를 풍미하는 전술이 나오면 다른 한편에선 그 해법을 연구해서 새로운 전술을 내놓게 마련이다. 2002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이 그 주인공이 됐다.
네덜란드를 4강 대열에 올려놓은 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토털사커’에서 한 단계 진화한 현란한 ‘상황 포메이션’으로 세계 축구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가, 4년이 지난 이번 대회에선 스피드와 압박이란 신상품을 출시한 것이다. 그리고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내로라하는 세계 정상급 강호들이 여기에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단순한 전술 같지만 실상 여기엔 축구의 모든 것이 포함돼 있다. 강한 체력, 상대를 압도하는 순간적 폭발력, 커버플레이와 포지션 체인지 등 유기적 플레이를 만들어내는 고도화된 전술 이해력, 경기 흐름 파악 등. 17개월에 걸친 훈련으로 히딩크 감독은 이름없는 한국 선수들을 정상 레벨의 플레이어로 만들었다.
인간 히딩크는 어떤 사람?
그의 입담은 타고났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버린다. 간혹 철저한 ‘정보 차단’으로 기자들을 당혹케 하지만, 일상의 유머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입력’은 지나칠 수 없는 매력이다. 그가 있는 기자 회견장엔 웃음이 따라다닌다. 히딩크를 보면 “쫓겨나기 위해 고용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를 달고 다니는 축구감독이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가장 가까이서 히딩크 감독을 지켜보며, 히딩크 감독의 공식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허진 미디어 담당관은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는 장점을 지닌 재치가 넘치는 사람이다. 필드에선 불 같은 열정을 쏟아내지만 경기장 밖에선 자기 생활을 가꿀 줄 아는 여유를 가졌다. 치열한 스페인 리그에서 활동한 탓인지 다혈질인 면도 있다. 그러나 뒤끝은 없다. 합리적 사고는 특히 돋보이는 강점이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 싶으면 바로 인정하는 스타일이다. 히딩크 감독을 통해 팀에서 지도자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때가 많다. 그는 분명 뛰어난 감독”이라고 말한다.
히딩크 감독 전담 운전기사 김재한씨 또한 “적어도 차에서만큼은 그렇게 부드러울 수 없는 사람이다. 이동중에도 축구 관련 자료를 들춰볼 정도로 축구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열정을 보인다. 항상 노력하는 진지한 모습엔 존경심마저 우러난다”고 한다.
프랭크 시내트라의 명곡 ‘My way’를 즐겨 부르며 승리의 기쁨을 샴페인으로 자축하는 히딩크, 그가 보여주는 힘의 원천엔 연인 엘리자베스가 자리하고 있다. 언젠가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내 마음의 고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만큼 엘리자베스는 히딩크에게 적잖은 버팀목이 돼주는 것 같다. 한때 대표팀의 성적이 부진하자 애꿎은 사생활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지만 국민적 영웅으로 자리매김한 지금은 다르다. 두 사람의 사랑을 비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꿈은 크다. 16강 이상에 대한 모든 계획이 머릿속에 담겨 있다고 했고, 벌써 4강을 밟았다. 철저한 지략가이기도 한 그의 가슴은 분명 우승에 대한 청사진을 품고 있을 것이다. 물론 드러내진 않는다. 암시에 그칠 뿐. ‘무적함대’ 스페인을 울린 그날(6월22일) 히딩크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한국의 전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