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사요궁에서 바라본 에펠탑과 이탈리아 로마의 대표적 관광지 콜로세움 및 포로 로마노(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1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 하며 서명해달라면 소매치기단!
프랑스 파리 개선문 광장. 이민자로 구성된 소매치기단이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고 나서 지하철역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걷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고개를 홱 돌리니 그 여자애들이 내 뒤에 달라붙어 배낭 지퍼를 열고 있는 거다. “파리에서 가방을 뒤로 메는 것은 소매치기에게 ‘네 가방이다’ 하는 것과 같다”고 한 유튜브 영상의 한 대목이 뒤늦게 떠올랐다. “왜 남의 가방에 손대느냐”고 고함쳤다. 소녀단은 뭔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내게 쏟아부은 뒤 멀리 달아나버렸다. 지나가던 백인 여성이 덜덜 떨고 있는 내 어깨를 살포시 잡고 말했다. “쟤들은 돈이 목적이야. 괜히 말 섞었다 더 큰 봉변을 당할 수 있어. 그냥 피하는 게 좋아.” 파리 사람들은 이런 소매치기단을 보는 것이 일상인 듯했다. 그저 각자 바삐 출근길에 나설 뿐이었다.
파리에서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기차 안. 스페인 국경으로 넘어가자 대한민국 외교부로부터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바르셀로나 황색경보(여행자제). 절도, 강도, 차량사고 시 소지품 주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사람 북적이는 아담한 카페로 들어와 물건을 훔쳐가는 사람은 없겠지. 아침 7시, 안전한 편이라는 그라시아(Gracia) 거리의 숙소 옆 카페에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 내 뒤의 유리창을 쾅쾅 두드린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웬 남자가 내게 손짓하며 뭐라고 말한다. 당황하는 내게 카페 직원이 다가와 따끔하게 잔소리한다. “여긴 바르셀로나야!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면 어떻게 해. 저기 남자 둘이 호시탐탐 네 가방을 노리고 있잖아!” 주변을 둘러보니 여행자든, 바르셀로나 현지인이든 가방을 끌어안고 있었다. 큰 배낭을 가진 사람들은 양다리 사이에 배낭을 끼워 넣은 채 빵을 먹었다.
이후 우리 일행은 안전에 만전을 기했다. 손바닥만 한 크로스백을 앞으로 멘 뒤 그 위에 외투를 입었다. 지갑과 여권은 숙소에 두고, 크로스백 안주머니에는 신용카드 한 장과 얼마간의 현금만 넣었다. 생수병을 넣을 가방을 갖고 다니느니, 차라리 목이 마를 때마다 물을 사 먹자고 생각했다. 휴대전화는 되도록 크로스백 안에 넣고 지퍼를 잠갔다(외투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전화도 순식간에 털어간다고 한다). 지하철에선 가방 위에 손을 얹어놓았다.
2 파리인데 예술에 관심 없다면? 국립자연사박물관으로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 알팡 가든(Jardin Alpin) 내 위치한다.
박물관은 크지 않아 둘러보는 데 부담은 없다. 3개 층에 곤충에서 포유류, 어류, 인간, 공룡 등의 뼈와 내장 생물표본, 화석이 알차게 전시돼 있다(‘해부학 전시관’이다). 경악한 표정으로 목이 잘린 원숭이 얼굴 박제도 있고, 이구아나 피부껍질을 벗겨 내장을 그대로 볼 수 있게 한 표본도 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 앞에서 초점 잃은 눈으로 다리 아파 죽겠다던 애들이 이 박물관에선 요리조리 헤집고 다닌다. 그러고 보니 일요일 오후임에도 오르세미술관보다 자연사박물관의 입장 대기 줄이 더 길었다. 대부분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었지만, 성인끼리 온 경우도 꽤 많았다. 1793년 설립됐으며 미국 스미소니언재단, 영국 국립자연사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국립자연사박물관으로 꼽힌다고 한다. 입장료는 성인 12유로(약 1만5300원), 18세 미만 무료.
3 파리 센강변에서 전동킥보드 타보면 어떨까
일요일 오후 파리 센강변에는 걷거나 자동차, 전동킥보드 등을 타는 사람들로 붐볐다(왼쪽). 최근 파리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는 공유 전동킥보드 ‘라임’은 여행자도 쉽게 빌릴 수 있다.
공공자전거를 처음 도입한 도시는 파리인데, 파리에서는 오히려 공유 전동킥보드가 더 애용되는 듯했다. 거리 곳곳에서 ‘라임(Lime)’ ‘버드(Bird)’ 등 미국에서 건너온 공유 전동킥보드가 흔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이 보였다. 호기심에 라임 애플리케이션(앱)을 다운로드 받아 전동킥보드를 빌려봤다. 생각보다 간단하다. 페이스북 아이디로 로그인할 수 있고, 한국 휴대전화를 로밍해놓았다면 문자메시지로 인증번호를 받아 회원가입을 할 수 있다. 전동킥보드를 빌리는 것도 쉽다. 주변에 주차된 전동킥보드를 찾아 킥보드에 부착된 QR코드를 휴대전화 앱으로 찍으면 잠금 장치가 해제된다. 두세 번 연습하면 전동킥보드 타는 법을 금세 익힐 수 있다.
다만 여행자가 도로변을 달리다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센강변에서 타보는 게 어떨까 싶다. 센강변의 풍경은 서울 한강변과 닮았다. 사람들은 산책,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 아니면 전동킥보드를 탄다. 전동킥보드를 함께 타며 데이트하는 것이 요즘 파리에서 하나의 트렌드(?)라던데, 실제로 남녀가 함께 전동킥보드에 올라탄 모습이 자주 보였다. 아이를 태우고 달리는 엄마 아빠도 많았다.
4 가이드 투어, 라디오 듣는 것처럼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한 카사 밀라(왼쪽)와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음악과 함께하는 가우디 가이드 투어는 꽤 만족스러웠다(가운데).
우리 일행은 20명 남짓의 다른 투어 참가자들과 함께 가이드를 따라 버스와 도보로 이동하며 가우디가 건축한 카사 비센스,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구엘공원,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을 둘러봤다. 이 투어의 가장 큰 특색은 라디오를 듣는 것 같다는 점. 가이드는 가우디의 우정, 사랑, 삶, 죽음 등 4개 테마로 이야기해주면서 각 내용에 어울리는 곡들을 들려줬다. 가우디를 아끼고 존경한 건축주들에 대한 이야기 끝에는 성시경의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평생 가우디를 후원한 구엘에 대한 설명 뒤에는 데이브레이크의 ‘꽃길만 걷게 해줄게’, 중년의 가우디가 자신의 남은 평생을 바치고 그 아래 묻힌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을 처음 목도하는 순간에는 리베라소년합창단의 ‘상투스(Santus)’가 수신기에 꽂은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왔다. 라디오를 들으며 여행하는 것 같다며 우리 일행 모두 좋아했다. 이 여행 상품에는 ‘가이드님, 라디오 디제이 같아요’라는 후기가 많다. 서울로 돌아와 취재차 메멘토투어에 연락했다. 권혁상 메멘토투어 대표는 “최근 음악과 함께하는 가이드 투어가 많아지는 추세”라며 “여행 테마에 맞게 선곡해 여행의 감동과 여운을 더 깊이 느끼게 만들고자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바르셀로나 숙소 근처의 그라시아 광장(위)과 로마 티부르티나역 인근 동네 카페에서 맛본 쿠키. 로마 시내와 30분가량 떨어진 이 동네의 카페들은 커피 한 잔 값으로 0.9유로 혹은 1유로를 받았다(아래).
5 한 번쯤은 ‘동네’에서 머물기
로마에선 관광지가 몰린 시내, 한인민박집이 많은 테르미니역 외곽에 위치한 티부르티나(Tiburtina)역 근처에 묵었다. 시설 좋은 방 2개짜리 새 아파트형 숙소가 하루 100유로로 저렴했을 뿐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동네를 느리게 걸으며 사람 구경, 가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침 일찍 카페에 선 채 에스프레소와 크루아상 한 개로 식사를 하는 사람들, 한국 마트가 고기를 무게대로 잘라 팔 듯 각종 치즈를 무게대로 잘라 파는 마트, 아침엔 커피와 크루아상을 팔지만 점심 땐 구운 채소와 간단한 파스타 두어 가지를 파는 카페, 오렌지 한 무더기를 단돈 1유로에 가져가라는 과일가게….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크루아상이 1.2유로(약 1500원)밖에 안 해!” 하고 감동했는데, 이 동네에서는 0.9유로에 불과했다. 오렌지향이 깃든 크루아상이나, 슈크림 또는 초콜릿을 넣은 크루아상이나 모두 0.9유로. 커피도 에스프레소든, 카페 마키아토든, 인삼향 나는 카페 진생이든 모두 0.9유로였다. 로마 공항에서 4유로대에 팔던 커피가 든 초콜릿 ‘포켓커피’도 동네 마트에선 그 절반 값에 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