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김민경]
치즈와의 ‘인생 첫 만남’은 대체로 슬라이스 치즈, 피자 치즈 같은 가공 치즈로 시작된다. 가공 치즈는 자연 치즈에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가공’해 만든 것을 일컫는다. 맛이 일정하고, 가격이 저렴하며, 구하기 쉽고, 먹는 방법도 간단하다. 자연 치즈는 원유를 자연 숙성 및 발효시켜 만드는 것으로 프레시 모차렐라, 에멘탈, 체다 같은 수입산 치즈가 대부분이다. 값이 비싼 편이고, 편의점 같은 곳에서는 살 수 없다. 더욱이 먹는 방법에서는 고개가 갸웃해진다.
가공 치즈든, 자연 치즈든 원료는 가축의 젖이다. 소가 가장 많고 양, 염소, 말, 낙타의 젖으로도 치즈를 만든다. 한국에서 만들거나 수입하는 치즈는 대부분 소젖으로 만든 것이다. ‘농수축산신문’에 따르면 2017년 치즈 수입량이 12만5002t, 2018년에는 12만3850t에 육박했다. 그중 모차렐라와 피자 치즈 종류가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자연 치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더 좋은 것을 찾아 먹을 수 있다. 어미 소가 젖 1ℓ를 생산하려면 500ℓ의 혈액이 필요하다고 한다. 젖 성분은 젖샘에서 혈액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원료가 이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만드는 사람의 노고와 소요되는 시간까지 감안한다면 치즈에 대해 제대로 알고 먹을 이유는 충분하다.
제조법과 숙성 따라 6가지로 분류
조장현 ‘치즈플로’ 셰프가 체다 치즈를 만들고 있다(왼쪽) 푸른곰팡이균을 넣은 블루치즈. [사진 제공·치즈플로]
먼저 누구나 거부감 없이 먹기 좋은 프레시 치즈가 있다. ‘생치즈’라고도 부르듯 숙성 과정 없이 완성된다. 열이나 효소로 원유가 발효, 응고되면 물기를 빼 만든다. 질감과 식감이 부드러우며, 색은 희고 뽀얗다. 생김처럼 맛과 향도 순하고 고소한데, 은은하게 신맛이 있어 입맛을 돋운다. 프로마주 블랑, 마스카포네, 페타 치즈 등이 여기에 속한다.
생크림이 들어가 부드러운 트리플 크림 브리 치즈, 베이비 체다로 불리는 프레시 치즈. 금귤 잼에 곁들였다, ‘치즈플로’의 숙성실. (왼쪽부터) [사진 제공·치즈플로]
다음으로 곰팡이 치즈가 있는데, 흰곰팡이와 푸른곰팡이 치즈로 나뉜다. 원유나 커드(우유가 산이나 효소에 의해 응고된 것)에 곰팡이균을 넣거나 묻혀 숙성시키기 때문에 독특한 풍미와 식감이 생겨난다. 보송보송한 흰 솜털 같은 표면에 크림처럼 말랑한 속살을 숨기고 있는 브리 치즈와 카망베르가 흰곰팡이 치즈의 대표 격이다. 흰곰팡이균을 표면에 묻혀 숙성시키면 겉에서 시작해 안으로 발효가 진행된다. 숙성 기간이 길지 않아 고소함과 새콤함이 조화롭고 질감이 부드러우며 맛은 심심해 치즈 입문용으로 알맞다.
푸른곰팡이 치즈는 블루치즈로도 불린다. 대체로 푸른곰팡이균을 원유에 넣어 2개월 이상 숙성시킨다. 숙성 기간 중 치즈 표면에 소금물을 묻히기 때문에 표면 색이 진해지고 단단해지며 짠맛도 난다. 블루치즈는 살짝만 맛을 봐도 여운이 오래 간다. 톡톡 쏘는 향, 찐득하고 묵직한 맛, 얼룩덜룩 대리석 무늬 등을 가진 블루치즈의 매력은 비교 상대가 없다. 고르곤졸라, 로크포르, 블루 오베르뉴 등의 치즈가 그것이다.
워시드(세척) 치즈는 말 그대로 표면을 씻어 만든다. 성형을 마치고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소금물이나 술로 표면을 닦아낸다. 이때 술은 와인, 맥주, 브랜디 등 다양한 종류의 알코올이 사용되며 그에 따라 치즈의 개성도 달라진다. 여러 번 닦을수록 풍미가 강해지며, 색도 진해진다. 워시드 치즈는 진한 주황색이나 붉은색을 띠는 것이 많으며, 껍질 부분을 잘라내고 속만 먹는다. 첫 향은 강하지만 맛과 식감은 모양새에 비해 꽤 부드러운 편이다.
마지막으로 압착 치즈가 있는데, 응고된 커드를 섞는 과정에서 가열과 비가열로 나눈다. 커드에 열을 가하지 않고 압착하면 수분 함유량이 높아 질감이 부드러워진다. 고다, 체다, 라클레트 치즈가 이에 해당한다. 쫀쫀하고 탄력이 있으며, 맛은 순하고 짜지 않다. 샌드위치에 그대로 넣어 먹거나 가열해 녹여 먹는 치즈로도 인기 있다.
커드에 40도 이상 열을 가한 다음 압착하면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단단해지고 짠맛도 강해진다. 그만큼 숙성 및 보관 가능 기간이 수십 개월로 늘어나고 보관 환경도 까다롭지 않다. 가열압착 치즈는 생활환경이 척박한 알프스 같은 산악지역에서 주로 만들어 먹었기에 ‘산의 치즈’로도 불린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에멘탈, 그뤼에르가 이에 해당하는데, 치즈 그레이터로 갈거나 통째로 썰어 오물오물 음미하며 먹는다. 짭짤한 맛이 나며 배릿하면서도 고소한 향이 좋다. 치즈는 제조법 외에 단단한 정도로 나누기도 하고 맛, 식재료 첨가 유무, 숙성 기간 등에 따라 그물망처럼 촘촘하면서도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이토록 다양한 치즈가 결국 원유에 레닛(rennet) 같은 응유효소를 넣고 지방분해, 단백질분해라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단순한 원료라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복잡한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파주산 우유로 서울에서 만드는 자연 치즈
부라타 치즈와 프로슈토를 함께 즐기는 샐러드, 얼린 염소 치즈와 배, 피스타치오, ‘치즈플로’에서 만든 치즈와 잼 플래터. (왼쪽부터) [사진 제공·치즈플로]
원유는 경기 파주 목장에서 무항생제 인증을 받은 우유를 섭씨 63도에서 30분가량 저온 살균해 가져온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우유는 대부분 고온 살균된 것으로 단백질과 지방에 변성이 생겨 치즈용 재료로 적합하지 않다. 저온 살균한 우유에 응유효소와 곰팡이균을 첨가해 10가지가 넘는 치즈를 만들어낸다. 프로마주 블랑, 스트라키노, 할루미, 마스카포네, 모차렐라, 부라타, 페타, 체다 커드, 카망베르, 브리, 워시드 치즈, 고다, 체다, 고르곤졸라,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등이다.
치즈는 주 1~2회 만들지만 숙성 중인 치즈의 관리는 쉼 없이 한다. 스스로 살아 있는 식품인 치즈는 그만큼 예민하다. 저마다 숙성 기간과 먹는 시기가 다르고, 숙성 중에도 하나하나 돌봐줘야 제맛이 나는 치즈가 된다. 완성된 다음에도 소홀할 수 없다. 치즈를 자를 때는 살균 소독한 칼을 이용하고, 아무리 깨끗하게 씻은 손이라도 맨손으로 치즈를 만지지 않는 것이 좋다. 아주 적은 세균이라도 치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마르고 부서지고 갈라지고 눌린 부분도 잘라내 다듬은 다음 보관해야 한다.
꼼꼼히 기록되는 ‘치즈플로’의 치즈 생산 일정. [사진 제공·김민경]
부재료나 요리 마지막에 올려 녹여 먹는 정도로 사용되던 가공 치즈와 달리 자연 치즈는 언제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다. 겉은 쫄깃하고 속은 부드러운 부라타 치즈를 올린 샐러드, 고소한 스트라키노 치즈가 들어간 포카치아, 질소 냉각해 얼린 염소 치즈와 배 같은 메뉴는 치즈의 제맛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음식이다.
‘치즈플로’에서는 자연 치즈를 맛보고 공부하는 강좌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또한 와인, 맥주, 전통주, 커피 분야 전문가와 함께 치즈 페어링 클래스도 종종 연다. 현재 조 셰프가 만든 치즈와 육가공품은 ‘치즈플로’와 ‘쉐플로’ 신사점, 도곡점에서 맛볼 수 있으며 마르쉐 장터에서도 만날 수 있다.
조장현 ‘치즈플로’ 셰프 일문일답
[사진 제공·치즈플로]
“2000년대 초 르 코르동 블루 영국에서 요리를 공부했다. 2005년 방배동 서래마을에 ‘키친플로’를, 2010년에는 신사동 가로수길에 가스트로펍 ‘쉐플로’를 열어 운영했다. ‘쉐플로’ 운영 당시 다양한 육가공품을 만들어 선보였고, 치즈를 소량씩 만들기 시작했다.”
치즈를 직접 만들게 된 이유는.
“음식을 만들수록 식재료 본질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커졌다. 그 때문에 뉴질랜드에서 치즈를, 이탈리아에서 육가공을 배우고 돌아왔다. 2016년 ‘치즈플로’를 열어 치즈와 육가공품을 본격적으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