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비키니

야구의 모든 건 파울볼 덕분? 탓?

경기당 파울볼 1982년 37개 ➞ 2018년 55개 … 점수도 더 나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입력2019-03-11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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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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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까지는 스트라이크 카운트라는 벌칙을 받고, 세 번부터는 무한대로 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 이상한 규칙. 야구에서의 파울은 기회의 영속성을 의미한다. 대부분 방망이에 제대로 맞히지 못한 타구이지만, 그것이 바깥으로 나가버렸으므로, 타자는 한 번만 더,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갖는다. 당신이 살거나, 죽을 때까지.’ 

    서효인 시인은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래서 파울(볼)은 야구에서 가장 공평한 플레이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2스트라이크 이후에 나오는 파울볼이 그렇습니다. 2스트라이크 이후가 되면 파울볼은 그냥 파울볼이기 때문에 수비나 공격 모두 딱히 유리하거나 불리할 게 없습니다. 아직 그 누구도 살거나 죽지 않았으니까요.

    갈수록 파울볼이 늘어나는 이유

    2018 KBO 플레이오프 4차전 2회 초 1사 상황에서 넥센 히어로즈 송성문이 SK 와이번스 한동민의 파울볼을 잡으러 달려갔으나 놓치고 있다. [동아DB, shutterstock]

    2018 KBO 플레이오프 4차전 2회 초 1사 상황에서 넥센 히어로즈 송성문이 SK 와이번스 한동민의 파울볼을 잡으러 달려갔으나 놓치고 있다. [동아DB, shutterstock]

    ‘늦게 온 친구 때문에 3루 관중석 위쪽에 앉아 불편한 시야에 투덜거리던 당신. 끈질긴 좌타자가 연거푸 날리던 타구가 당신 발아래에 왔다. 웬 횡재인가 싶을 때, 들리는 협박조의 함성. 아주라, 아주라. 그것은 파울볼이다.’ - 서 시인의 같은 책 

    ‘베이스볼 비키니’ 독자라면 ‘아주라’가 무슨 뜻인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터. 그래도 야구팬 누구에게나 ‘파울볼 득템 찬스’는 언제든 설레는 일입니다. 심지어 직업으로 야구장을 찾는 기자에게도 그렇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야구장에 자주 갈수록 파울볼을 손에 쥘 확률도 올라가겠지만 이상하게 파울볼은 꼭 못생긴 친구만 찾아가니까요(강한 파울 타구가 사람, 주로 더그아웃에 있는 선수를 향해 날아갈 때 영어로 ‘ugly finder’라는 표현을 씁니다). 



    야구장에 갈수록 못생긴 분들만 찾아오는 건 절대 아니겠지만, 파울볼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프로야구 원년(1982) 경기당 파울볼은 37.2개였는데 지난해(2018)에는 55.2개로 18개가 늘었습니다. 프로야구 통산 이닝당 평균 투구 수가 16.5개이니까 파울볼 때문에 투수들은 1이닝 이상을 더 던지게 된 셈입니다. 

    팀도 늘고 경기 수도 늘어난 만큼 누적으로 따지면 차이가 더 확연합니다. 지난해 프로야구에서 나온 파울볼은 총 3만9723개로 10년 전인 2008년(2만3712개)보다 1만6011개가 늘었습니다. 이 기간 경기당 평균 투구 수는 304개. 파울볼만 가지고도 53경기를 진행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우천순연을 감안하면 거의 프로야구 전체 2주 일정입니다. 

    그렇다고 지난해가 파울볼 최고 전성기는 아니었습니다. 2015년에는 파울볼(3만9145개)이 페어볼(3만8789개)보다 많았습니다. 아직 파울볼이 페어볼보다 많았던 건 이때뿐이지만 조만간 이런 사례가 다시 나온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는 이렇게 파울볼이 늘어나는 일이 달갑지 않을 겁니다. 공 값 때문은 아닙니다(공 값은 안방팀 부담입니다). 파울볼이 나오면 경기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얼핏 생각해도 그럴 것 같죠? 실제 통계 결과도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는 키가 클수록 몸무게도 많이 나갑니다. 단, 키는 크지만 마른 사람도 있고 반대 사례도 있기 때문에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이럴 때는 ‘상관계수’라는 값을 알아보면 도움이 됩니다. 시대와 인종에 따라 다르지만 키와 몸무게의 상관계수는 보통 0.7~0.8로 나타납니다. 

    프로 원년부터 지난해까지 경기당 파울볼 수와 경기 시간의 상관계수는 0.834입니다. 키가 몸무게에 끼치는 영향보다 파울볼 수가 경기 시간에 끼치는 영향이 더 큰 겁니다. 그러니 이론적으로는 파울볼을 줄이면 경기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파울 뜬공은 왜?

    그러면 이렇게 파울볼이 늘어난 이유는 뭘까요. 김정준 SBS스포츠 야구해설위원은 “타자들이 장타를 노리고 풀(full) 스윙을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파울볼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풀 스윙을 한다는 건 정확도에서는 손해를 본다는 뜻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때리는 일이 그만큼 줄어든다고 볼 수 있다”며 “투수 쪽에서 공 회전수를 중요시하는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회전수를 강조하는 것 역시 헛스윙과 파울을 가정하는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파울볼은 파울볼인데 줄어든 것도 있습니다. 파울 뜬공, 그러니까 파울볼을 야수가 잡아 아웃으로 만드는 일은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1982년 경기당 2.52개이던 파울 뜬공은 2008년 1.99개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1.67개로 더 줄었습니다. 

    파울 뜬공이 줄면 파울볼이 늘어나는 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파울지역에 뜬 타구를 수비수가 잡지 못하면 아웃이 됐어야 할 타구가 파울볼이 되는 거니까요. 파울볼 수와 비교하면 1982년에는 전체 파울 타구 중 6.8%를 야수가 잡았는데 지난해에는 3.0%로 이 비율이 절반 이상 줄었습니다. 

    파울 뜬공이 줄었다는 건 아웃을 당했을 타자가 타석에서 기회를 이어간다는 뜻이 됩니다. 당연히 득점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 2사 3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파울 뜬공을 치면 그대로 이닝이 끝나지만, 파울 이후 안타를 친다면 점수가 날 테니까요. 

    실제 결과도 이렇게 나타납니다.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경기당 파울 뜬공 수가 2개 이상인 때는 2011년(2.15개)이었습니다. 이해 리그 평균 득점은 4.53점으로 파울 뜬공이 1.67개였던 지난해 평균 점수(5.55점)보다 1점 이상 적었습니다.

    파울은 ‘힘내’의 다른 말

    한화생명이글스파크 익사이팅 존의 모습. 파울볼을 잡아 아웃시키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 [동아DB]

    한화생명이글스파크 익사이팅 존의 모습. 파울볼을 잡아 아웃시키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 [동아DB]

    물론 파울 뜬공과 경기당 평균 득점이 100% 비례관계에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키와 몸무게처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경기당 파울 뜬공 수와 평균 득점의 상관계수를 구하면 -0.752가 나옵니다. 마이너스(-) 부호가 붙은 건 파울 뜬공이 줄어들수록 평균 득점은 늘어나기 때문이죠. 그러니 최근 '타고투저'가 이어지고 있는 데는 파울 뜬 공이 줄어든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앞으로도 파울 뜬공 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2009년 부산 사직야구장에 ‘익사이팅 존’이 들어선 이후 원래 파울지역이던 곳을 관중석이 차지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 됐기 때문입니다. 파울지역이 좁아지면 파울 뜬공도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서 시인의 산문집에서 파울을 다룬 꼭지는 이런 내용으로 끝이 납니다. 

    ‘가운데로 들어오는 공은 끝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갖자. 파울은 그 마음가짐이 만들어낸 또 다른 기회다. 우리의 시간은 아직 마지막이라는 글러브에 들어가지 않았다. 

    “당신도 나도 아직 죽지 않았어. 그러니까 힘내.” 

    이런 말을 줄여서 ‘파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2019 프로야구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올해도 야구팬들은 파울볼이 아니라 그 앞뒤로 벌어지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겁니다(엄밀히 말해 파울 뜬공도 파울볼 다음에 벌어지는 일). 다만, 파울볼이 없었다면 그 타자가 여전히 타석에 서 있지 못하리라는 건 확실합니다. 거칠게 말하면 야구에서 모든 건 파울볼 때문 아니면 파울볼 덕분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2019년 첫 두 달 동안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고요? 아닙니다. 파울볼을 열심히 친 덕에 가운데로 들어오는 공을 기다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파울볼의 힘을 믿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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