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의 관광명소 말레콘 방파제의 야간 풍경. 외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쿠바인들로 북적인다.
사나흘 중국제 최신형 관광버스를 타고 아바나를 스쳐 지나는 외국인 관광객은 쿠바의 젊은 여성들이 대체로 야한 옷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사정은 다르다. 길거리 쿠바 여성들의 야한 옷차림은 핍박한 경제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다. 쿠바는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다. 여성은 남성이 운전하는 자가용을 얻어 타고 출근하거나 등교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러려면 남성들의 눈에 띄어야 한다.
아바나의 관광명소 말레콘 방파제나 길거리 곳곳에서 벌어지는 살사 춤판도 비슷한 맥락이다. 미국 쪽 카리브해를 바라보는 방파제 위에는 낮에도 밤에도, 평일에도 휴일에도 가족이나 친구, 연인들로 득실댄다. 쿠바 인민들은 길을 걷다가도 살사음악에 맞춰 춤추는 무리가 있으면 재빨리 달려가 함께 어울린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쿠바 사람들이 여유 있고, 자연과 예술과 낭만을 즐긴다며 더불어 즐거워한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가난한 아바나 인민들은 열대의 더운 날씨가 답답해 좁은 집을 나와도 달리 갈 곳이 없다. 냉방시설을 갖춘 커피숍의 커피값이나 나이트클럽 입장료는 외국인에게는 저렴하지만, 쿠바 인민들에겐 가히 살인적이다. 작은 잔에 담긴 쿠바 특유의 블랙커피 한 잔을 마시려면 보통 쿠바 사람 월급의 10분의 1 정도를 내야 한다. 나이트클럽 입장료는 몇 달치 월급과 맞먹는다. 코트라(KOTRA) 아바나무역관 조영수 관장은 2005년 이곳에 부임했으니 벌써 4년째 쿠바를 ‘겪어왔다’. 그는 “가난한 보통 쿠바 사람들은 돈 안 드는 말레콘 방파제에 자주 가고, 거리의 공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말레콘 방파제의 쿠바 여인들. 이곳은 냉방시설을 갖춘 비싼 가게를 이용할 수 없는 쿠바인들의‘인기’ 피서처다.
외국인 관광객의 눈에 비친 쿠바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민들이 체감하는 쿠바는 크게 다르다. 기자는 지난해 11월14일부터 22일까지 8박9일 동안 아바나 등지를 다니면서 쿠바 경제를 관찰했다.
대부분의 이행기 사회주의 국가에서처럼 쿠바 경제에서도 다양한 ‘이중성’이 발견된다. 태환페소(외국 돈과 맞교환이 가능한 화폐·Tips1 참조)로 운영되는 외국인 상대 경제권과 쿠바 인민들의 페소 경제권은 하늘과 땅 차이다. 쿠바 인민의 경제권에서도 사회주의 원리에 의해 지배되는 1차 경제와 시장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 2차 경제가 공존한다. 대내(對內)경제는 얼어붙었고 대외(對外)경제는 불타는 듯하다. 49년 동안의 철권통치를 막 마친 카스트로식(式) 시장사회주의의 오늘은 이렇다.
1달러는 대략 1태환페소와 교환된다. 기자가 쿠바에 머물 때 1태환페소는 24일반페소로 교환됐다. 국영회사에서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월평균 임금은 360~720페소, 즉 15~30달러였고 국영식당의 한 끼 점심값은 10태환페소(240페소) 정도였다. 일반 근로자 월급이 외국인 관광객의 두세 끼 밥값에 불과한 것이다(Tips2 참조).
아바나의 번화가에서는 외화상점들이 성업 중이었다. 이곳은 태환페소 경제권에 속한다. 외화상점들은 한국의 백화점과 구조가 비슷하다. 비싼 전자제품과 가죽구두 등 다양한 수입품과 일부 국산품이 고가의 태환페소에 거래되고 있었다. 물론 이곳 물가는 정부가 운영하는 국영 병행시장(parallel market)보다 비싸기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이나 달러 수입이 있는 돈 많은 내국인만이 이용할 수 있다.
한 외화상점에 들러 남성 가죽구두를 둘러봤다. 한 켤레에 30~50태환페소, 우리 돈으로 3만~5만원이다. 한국에서 생산된 자동차 타이어 한 짝은 50태환페소, 기자가 입어도 무난할 것 같은 남성양복 한 벌은 163태환페소에 팔리고 있었다. 어느 외화상점이든 쿠바인들로 붐볐다. 기본적으로 물건이 부족한 여건이라 원하는 상품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인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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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콘 방파제의 쿠바 여인들. 이곳은 냉방시설을 갖춘 비싼 가게를 이용할 수 없는 쿠바인들의‘인기’ 피서처다.
화려한 태환페소 경제권 아래에 소박한 일반페소 경제권이 자리하고 있다. 사회주의국가 쿠바에서는 국가가 기본적인 배급을 실시한다. 또한 박사학위 취득까지 모든 교육비와 의료비를 부담하며 주택도 제공한다. 2007년 현재 정부는 33페소를 받고 주민 1인이 10~15일 동안 먹을 수 있는 쌀 2.7㎏을 포함해 한 달치 식량을 배급한다. 배급 내용은 쌀 2.7㎏, 말린 콩 300g, 백설탕 1.4㎏, 흑설탕 0.9㎏, 커피 100g, 요리용 기름 2컵, 계란 10개, 소금 300g, 파스타 230g, 크래커 450g, 생선 280g, 카카오 230g, 닭고기 230g, 롤빵 30개, 감자 1.9㎏, 목욕 또는 세탁비누 1개, 치약 1개, 액체세제 1통이다.
인민을 위한 시장과 유통수단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배급품 판매소는 가장 싼값에 물품을 공급하고 있었다. 쌀은 1인당 월 5파운드까지 1파운드(약 450g)당 25센타보, 추가 2파운드는 1파운드당 90센타보에 공급했다. 치약 1인당 1개 65센타보, 비누 1인당 1개 25센타보 등 생필품도 거의 무료에 가까운 돈을 받고 공급했다(1페소=100센타보).
아바나 시내 곳곳에는 농민시장이 성업 중이었다. 이들 시장은 축산물과 농산물을 함께 팔고 있었다. 또 특정 협동조합의 물건을 독점 판매하기도 했다. 돼지갈비 1파운드의 값은 18페소로 모든 시장이 동일했다. 토마토 1파운드에 5페소 등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국영 병행시장에서는 닭고기가 1파운드에 25페소, 중고 반바지가 92페소에 팔리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한 달에 15~30달러의 월급을 받는 대다수 아바나인이 태환페소 경제권에서 중요한 재화와 용역을 입수한다는 점이었다. 거리를 오가는 쿠바인의 차림새는 썩 훌륭했다. 외화시장의 상품 가격을 고려할 때 월급 외의 다른 수입이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차림새였다. 그 ‘비결’은 해외송금에 있었다. 2007년 현재 60%의 쿠바인이 미국 등 해외에 거주하는 가족이나 친지들에게서 달러 송금을 받고 있다고 한다. 연간 쿠바로 유입되는 해외송금액은 6억~10억 달러로 추산된다.
해외에 가족 친지들이 없는 형편이라면? 쿠바인들은 아래 두 가지 방법에 매달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나는 불법적인 ‘부업’이다. 거의 모든 쿠바인이 공장 자재나 비품 빼돌리기, 야간에 외국인을 상대로 자동차 정비 같은 기술 서비스 제공하기, 외국인 안내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부업으로 태환페소 벌이를 하고 있었다. 쿠바 경제지 ‘옵시오네스’ 기자인 마르타 벨로스를 만났다. 그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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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광장에서 ‘거리의 미용사’들이 외국인 관광객의 머리를 땋아주고 있다(왼쪽). 아바나대학의 여대생들.
“쿠바의 부업경제는 생명력이 매우 강하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 한 번도 쿠바의 부업경제가 사라진 적이 없었다고 보면 된다. 지금도 모든 사람이 공식적인 1차 경제 이외에 각자가 가진 능력과 재주에 따라 2차 경제인 부업으로 태환페소를 벌어들이고 있다. 어떤 기자들은 해외언론 등에 익명으로 기고해 달러를 벌고 있다.”
조영수 관장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영 서비스업체 직원들은 외국인 고객을 상대로 웃돈의 달러를 받고 더 빨리 더 잘 ‘밤일’을 해준다. 한 달에 300페소를 월급으로 받는 국영 전기수리업체 직원이 밤에 몰래 외국인 집을 방문해 수십~수백 태환페소를 받고 TV 등을 고쳐주는 식이다. 공식 절차를 밟는다면 석 달쯤 걸릴 일이 달러를 쥐어주면 단 하루 만에 처리되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비싸더라도 불법 서비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불법으로 정부의 단속 대상이다.
그러나 쿠바인들은 말한다. “모든 것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국가는 이런 불법적인 부업경제 활동이 국가경제 운용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짐짓 모른 체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허가한 합법적인 태환페소 벌이 활동도 있는데, 이 역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정부의 까다로운 규제에도 다양한 업종의 자영업자들이 아바나 시내에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남편과 딸 하나를 둔 아마리비스는 자기 집 2층의 화장실 딸린 방 2개를 민박집(casa particular)으로 임대한다. 숙박비는 아침식사를 포함해 하루 35태환페소. 그는 “어머니도 근처에서 민박집을 하는데, 지금은 한국의 현대중공업에서 파견된 기술자가 장기 체류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정부가 허가한 자영업 식당(parladar)도 곳곳에서 국영식당과 경쟁하고 있다. 11월15일 점심때 바닷가 근처 식당에 갔는데, 이 식당은 1, 2층에 탁자 10여 개와 의자 30여 개를 놓고 불법영업을 하고 있었다(의자가 12개를 넘거나 가족 외의 종업원을 고용하는 일은 불법이다).
개인 서비스업도 활발했다. 대성당 광장에서는 흑인 특유의 스타일로 관광객 여성의 머리를 땋아주는 ‘거리 미용사’가 바쁘게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요금은 최저 25태환페소이고 사용하는 장신구 종류와 수에 따라 값이 오른다. 아바나 등대 등 관광지와 거리 곳곳에서 주차요금으로 4분의 1의 태환페소를 징수하는 사람들도 모두 자영업자다. 낡은 자동차들이 오가는 거리에서 자전거 택시나 마차를 운행하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피델 카스트로(가운데)와 라울 카스트로를 그린 벽화 앞에 쿠바인들이 앉아 있다.
아바나 항구 주변 공예품 시장에서는 수공업자들이 직접 만든 상품을 판매한다. 나무로 만든 자동차와 악기 모양의 장식품, 수제 여성 실내복, 점토로 만든 동물 모양의 어린이용 피리, 나무로 만든 시가 보관함, 각종 화가들의 그림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수공예품이 좌판에 올라 있다. 여성용 반팔 원피스가 8태환페소, 악어 모양의 점토 피리는 5태환페소다. 구(舊)스페인총독부 앞에는 헌책을 파는 판매대가 가득했다. ‘카스트로의 매력’이라는 800쪽 분량의 스페인어 책은 10태환페소. 쿠바인들을 상대로 책을 파는 판매대에서는 같은 책이 15페소에 팔린다. 외국인에게 파는 책값의 16분의 1에 불과한 것이다.
쿠바 정부는 자영업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해 이들의 과도한 확장을 막는 한편 국가재정도 확충한다. 자영업자에게 부과되는 과세는 상품, 서비스, 판매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민박집 주인 아마리비스는 2007년 1월 전년도 세금으로 200태환페소를 냈고 매월 250태환페소를 낸다고 했다. ‘로스 아미고스’라는 식당의 주인은 “한 달에 360태환페소, 종업원 한 명당 110태환페소를 낸다. 식당 간판을 내거는 대가로도 3개월마다 60태환페소를 낸다”고 말했다. 대성당 광장의 ‘거리 미용사’는 매달 50태환페소, 또 매일 40태환페소를 낸다. 아바나 등대에서 주차요금을 징수하는 자영업자는 매달 200태환페소, 하루 1태환페소를 세금으로 낸다고 했다.
아바나 등지에 체류하는 8일 동안 쿠바 사회주의 경제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느꼈다. 혁명 후 49년 동안 쿠바의 사회주의 경제는 시기에 따라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엄청난 규모의 2차 경제 위에 얹혀 존재해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는 북한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전쟁의 폐허에서 가장 교조적인 사회주의를 건설했던 북한에서는 2차 경제가 거의 소멸한 상태였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으로 상징되는 90년대 이후 경제난 속에서 북한에도 아래로부터 2차 경제가 들불처럼 번진 상태다. 밤과 낮이 다른 쿠바인의 고된 삶을 지켜보면서 북녘 동포들의 고달픈 일상을 보는 듯해 마음이 아렸다.
아바나 =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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