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하지만 멀어져서 더 애틋해지는 사랑도 있다. 세계화는 연애와 사랑의 반경도 확대했다. 롱 디스턴스 커플(Long distance couple), 이름하여 ‘롱디커플’이라 불리는 연인들의 장거리 사랑은 세계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풍속도이기도 하다.
Seoul 8:30 am Feb 24 LA 3:30 pm Feb 23 화상통화로 시작하는 하루
일요일 아침, 회사원 안주원(23) 씨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말 오전 8시30분은 다소 이른 시간이지만, 그는 일어나자마자 다급하게 거울을 보고 세수한 뒤 컴퓨터 앞으로 갔다. 부은 얼굴을 가리기 위해 야구모자를 쓴 그는 화상캠을 조절한 뒤 인터넷 메신저에 로그인했다.
“Hi, baby!”
모니터 화면 너머 남자친구 맷의 모습이 비친다. 안씨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간 뒤 그곳에서 대학을 나왔다. 미국인 맷은 그때 만난 친구. 안씨가 1년 전 한국에서 일자리를 잡고 귀국하면서 두 사람은 롱디커플이 됐다.
안씨처럼 외국에서 연인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롱디커플의 경우 국내에서 만난 후 유학 또는 해외발령으로 헤어지거나 제3의 지역에서 여행객이나 유학생으로 만나고(예컨대 중국에 유학 온 한국인 남성과 여행 온 일본인 여성 커플), 순수 인터넷 통신 기반(?)으로 엮이는 커플도 있다.
교사 박모(27) 씨는 e메일과 채팅으로 사랑을 만나고 키웠다. 박씨의 남자친구 칼은 동갑내기 독일인이다. 두 사람은 국제교류 사이트를 통해 처음 만났다. 영어 공부를 목적으로 외국인 펜팔 친구를 찾던 박씨는 우연히 지금의 남자친구와 접속이 됐고, 1년이 지난 지금 매일 서너 통의 e메일과 두세 시간씩 메신저 채팅을 하는 사이가 됐다.
“저는 독일어를, 남자친구는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에요. 물론 주로 영어로 말하지만 가끔씩 다른 언어가 섞이기도 해요. 예를 들면 ‘ schatz(honey와 유사한 독일어), 사랑해 ’같은 거요.”
롱디커플에게 인터넷은 특히 중요한 소통수단이다. 이만큼 값싸고 빠른 수단도 없기 때문. 직접 보고 부딪치는 대신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그에 못지않게 많은 말과 글을 전한다.
Gwangju 1:00 pm Feb 24 Berline 5:00 am Feb 24 인터넷 전화·메신저 없으면 큰일 나요
중국에 유학 중인 김한주(26) 씨는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 최현식(29) 씨와 3년간 장거리 연애를 해오고 있다. 방학을 맞아 김씨가 한국에 오거나 한국과 중국의 중간지대인 홍콩에서 만나는 등 1년에 서너 번 만남을 갖지만 연애는 주로 사이버 공간을 통해 한다. 하루에 서너 시간씩 웹캠을 켜놓고 공부를 하거나 일상적인 생활을 한다. 상대는 ‘다른 하늘’아래에서 사는 애인의 생활을 속속들이 지켜볼 수 있다.
“장거리 연애를 하다 보면 오히려 대화 시간이나 얼굴 보는 시간이 국내에서 연애할 때보다 더 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함께 있을 수는 없지만 그만큼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니까요.”
꼭 극장에 함께 간 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필요는 없다. 대신 같은 영화를 다운받아 같은 시간에 보면서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고, 요리를 만들며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린다.
다만 시차는 이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다. 2년 전 한 영어학원에서 동료 강사로 미국인 남자친구를 사귀게 된 최모(29) 씨는 2년여 간 교제를 하다 남자친구가 영국으로 유학 가면서 롱디커플이 됐다. 서울과 런던의 시차 때문에 이들은 주로 이른 아침과 밤늦게 채팅을 하거나 통화를 한다. 멀리 런던에서 모닝콜을 받는 최씨는 주로 인터넷폰을 이용한다. 얼마 전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는 가입자 간 통화시간이 1000억분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분명 세계 각지에서 장거리 연애를 하는 롱디커플의 역할도 컸을 것이다.
물론 모든 연애가 그렇듯, 장거리 연애도 이벤트가 필요하다. 이들에겐 소포가 그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뜨개질처럼 시간이 많이 드는 선물은 오랜 시간 떨어져 있는 아쉬움을 달래기에 적합하다고.
Incheon 6:00 pm Feb 24 Beijing 5:00 pm Feb 24 롱디 사랑과 그 적들
어떤 면에서 롱디커플의 장거리 연애는 군대 문제로 떨어진 연인들의 그것과 유사하지만, 떠난 이나 남은 이 모두 자유롭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캐나다 현지의 교포 남자친구와 2년째 교제 중인 박진경(23) 씨는 장거리 연애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불안감을 꼽는다. “바람을 피워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혹 “전화나 채팅을 하기로 약속한 시간에 연락이 없으면 불안감에 사로잡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로가 처한 환경이 다르다 보니 겪어야 하는 오해도 많다. 남자친구의 유학으로 롱디커플이 된 문모(25) 씨는 “유학 초기 남자친구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소홀히 대했는데, 이해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무척 힘들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실제 주변의 헤어진 커플 중에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하다 보니 한국에 남겨진 연인을 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싸움도 어쩔 수 없이 메신저와 전화를 통해서 한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연결을 끊어버리면 비행기를 타고 찾아가지 않는 한 별다른 해결책도 없다. 이 때문에 많은 롱디커플은 성공적인 연애의 조건으로 ‘상대에 대한 믿음’과 함께 ‘자기발전’을 꼽는다.
“내가 상대에 비해 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나고 불안한 것 같아요. 롱디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 모두 바빠야 한쪽이 다른 쪽에게 집착하지 않을 수 있어요.”(안주원 씨)
Busan 11:30 pm Feb 24 Brisbane 00:30 am Feb 25 성공하는 롱디의 조건
물론 떨어져 있다고 어려운 점만 있는 건 아니다. 많은 이들은 “자기 시간이 많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사랑하는 마음이 더 깊어진다”는 식으로 장거리 연애 예찬론을 펴기도 한다.
“제 경우 일본인 여자친구를 두고 있는데 새로운 문화를 발견하는 재미도 크고, 사랑을 더 소중히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29세 회사원 김모 씨)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이들처럼 장거리 연애를 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카페와 클럽이 많다. 온라인을 통해 멀리 떨어진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이들은 연애 고민 상담에도 온라인을 적극 활용한다.
‘디지털카메라로 찍고 지우듯’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게 요즘 세대의 사랑이라지만 ‘다른 하늘’ ‘다른 시간대’에 있는 연인과 짧게는 서너 달, 길게는 수년간 만나지 못하면서도 오래도록 사랑을 쌓아가는 커플도 있다. 롱디커플은 21세기형 순애보의 새로운 모델인 셈이다.
Seoul 8:30 am Feb 24 LA 3:30 pm Feb 23 화상통화로 시작하는 하루
일요일 아침, 회사원 안주원(23) 씨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말 오전 8시30분은 다소 이른 시간이지만, 그는 일어나자마자 다급하게 거울을 보고 세수한 뒤 컴퓨터 앞으로 갔다. 부은 얼굴을 가리기 위해 야구모자를 쓴 그는 화상캠을 조절한 뒤 인터넷 메신저에 로그인했다.
“Hi, baby!”
모니터 화면 너머 남자친구 맷의 모습이 비친다. 안씨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간 뒤 그곳에서 대학을 나왔다. 미국인 맷은 그때 만난 친구. 안씨가 1년 전 한국에서 일자리를 잡고 귀국하면서 두 사람은 롱디커플이 됐다.
안씨처럼 외국에서 연인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롱디커플의 경우 국내에서 만난 후 유학 또는 해외발령으로 헤어지거나 제3의 지역에서 여행객이나 유학생으로 만나고(예컨대 중국에 유학 온 한국인 남성과 여행 온 일본인 여성 커플), 순수 인터넷 통신 기반(?)으로 엮이는 커플도 있다.
교사 박모(27) 씨는 e메일과 채팅으로 사랑을 만나고 키웠다. 박씨의 남자친구 칼은 동갑내기 독일인이다. 두 사람은 국제교류 사이트를 통해 처음 만났다. 영어 공부를 목적으로 외국인 펜팔 친구를 찾던 박씨는 우연히 지금의 남자친구와 접속이 됐고, 1년이 지난 지금 매일 서너 통의 e메일과 두세 시간씩 메신저 채팅을 하는 사이가 됐다.
“저는 독일어를, 남자친구는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에요. 물론 주로 영어로 말하지만 가끔씩 다른 언어가 섞이기도 해요. 예를 들면 ‘ schatz(honey와 유사한 독일어), 사랑해 ’같은 거요.”
롱디커플에게 인터넷은 특히 중요한 소통수단이다. 이만큼 값싸고 빠른 수단도 없기 때문. 직접 보고 부딪치는 대신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그에 못지않게 많은 말과 글을 전한다.
Gwangju 1:00 pm Feb 24 Berline 5:00 am Feb 24 인터넷 전화·메신저 없으면 큰일 나요
중국에 유학 중인 김한주(26) 씨는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 최현식(29) 씨와 3년간 장거리 연애를 해오고 있다. 방학을 맞아 김씨가 한국에 오거나 한국과 중국의 중간지대인 홍콩에서 만나는 등 1년에 서너 번 만남을 갖지만 연애는 주로 사이버 공간을 통해 한다. 하루에 서너 시간씩 웹캠을 켜놓고 공부를 하거나 일상적인 생활을 한다. 상대는 ‘다른 하늘’아래에서 사는 애인의 생활을 속속들이 지켜볼 수 있다.
“장거리 연애를 하다 보면 오히려 대화 시간이나 얼굴 보는 시간이 국내에서 연애할 때보다 더 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함께 있을 수는 없지만 그만큼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니까요.”
꼭 극장에 함께 간 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필요는 없다. 대신 같은 영화를 다운받아 같은 시간에 보면서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고, 요리를 만들며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린다.
다만 시차는 이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다. 2년 전 한 영어학원에서 동료 강사로 미국인 남자친구를 사귀게 된 최모(29) 씨는 2년여 간 교제를 하다 남자친구가 영국으로 유학 가면서 롱디커플이 됐다. 서울과 런던의 시차 때문에 이들은 주로 이른 아침과 밤늦게 채팅을 하거나 통화를 한다. 멀리 런던에서 모닝콜을 받는 최씨는 주로 인터넷폰을 이용한다. 얼마 전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는 가입자 간 통화시간이 1000억분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분명 세계 각지에서 장거리 연애를 하는 롱디커플의 역할도 컸을 것이다.
물론 모든 연애가 그렇듯, 장거리 연애도 이벤트가 필요하다. 이들에겐 소포가 그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뜨개질처럼 시간이 많이 드는 선물은 오랜 시간 떨어져 있는 아쉬움을 달래기에 적합하다고.
장거리 연애를 하는 롱디커플에게 화상 채팅과 인터넷 전화는 주요한 소통수단이다.
어떤 면에서 롱디커플의 장거리 연애는 군대 문제로 떨어진 연인들의 그것과 유사하지만, 떠난 이나 남은 이 모두 자유롭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캐나다 현지의 교포 남자친구와 2년째 교제 중인 박진경(23) 씨는 장거리 연애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불안감을 꼽는다. “바람을 피워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혹 “전화나 채팅을 하기로 약속한 시간에 연락이 없으면 불안감에 사로잡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로가 처한 환경이 다르다 보니 겪어야 하는 오해도 많다. 남자친구의 유학으로 롱디커플이 된 문모(25) 씨는 “유학 초기 남자친구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소홀히 대했는데, 이해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무척 힘들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실제 주변의 헤어진 커플 중에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하다 보니 한국에 남겨진 연인을 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싸움도 어쩔 수 없이 메신저와 전화를 통해서 한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연결을 끊어버리면 비행기를 타고 찾아가지 않는 한 별다른 해결책도 없다. 이 때문에 많은 롱디커플은 성공적인 연애의 조건으로 ‘상대에 대한 믿음’과 함께 ‘자기발전’을 꼽는다.
“내가 상대에 비해 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나고 불안한 것 같아요. 롱디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 모두 바빠야 한쪽이 다른 쪽에게 집착하지 않을 수 있어요.”(안주원 씨)
Busan 11:30 pm Feb 24 Brisbane 00:30 am Feb 25 성공하는 롱디의 조건
물론 떨어져 있다고 어려운 점만 있는 건 아니다. 많은 이들은 “자기 시간이 많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사랑하는 마음이 더 깊어진다”는 식으로 장거리 연애 예찬론을 펴기도 한다.
“제 경우 일본인 여자친구를 두고 있는데 새로운 문화를 발견하는 재미도 크고, 사랑을 더 소중히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29세 회사원 김모 씨)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이들처럼 장거리 연애를 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카페와 클럽이 많다. 온라인을 통해 멀리 떨어진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이들은 연애 고민 상담에도 온라인을 적극 활용한다.
‘디지털카메라로 찍고 지우듯’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게 요즘 세대의 사랑이라지만 ‘다른 하늘’ ‘다른 시간대’에 있는 연인과 짧게는 서너 달, 길게는 수년간 만나지 못하면서도 오래도록 사랑을 쌓아가는 커플도 있다. 롱디커플은 21세기형 순애보의 새로운 모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