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5

..

열받은 몸 … 당신의 심장 ‘빨간 불’

폭염 땐 혈액 펌프질 빨라져 큰 부담 … 노령·심혈관질환자 특히 조심

  • 권호장 단국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hojang@dankook.ac.kr

    입력2007-05-09 16:1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열받은 몸 … 당신의 심장 ‘빨간 불’

    폭염이 나타날 때는 젊고 건장한 사람도 격렬한 운동은 삼가야 한다.

    13년 전인 1994년.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워서 더위를 이겨내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당시 서울의 평균기온이 30℃를 넘는 날이 이어지면서 사망자 수도 증가해 가장 많은 날에는 평소의 2배에 육박했다. 8월 초 들어 평균기온이 낮아지고 나서야 사망자 수는 예년 수준으로 돌아갔다(그래프 참조).

    체온 2℃만 높아져도 어린아이들 간질발작 가능성

    더위가 지속되면 우리 몸에 어떤 변화가 올까? 기온이 어떻게 변화하든 인간의 체온은 37℃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물론 다소 변동은 있다. 보통 새벽에 가장 낮고 오후에 높은데 그 차이는 0.5℃ 이내다. 우리 몸은 체온 상승에 매우 취약하다. 체온이 2℃만 높아져도 어린아이들은 간질발작을 일으킬 수 있고, 이보다 더 높으면 응급상태가 된다.

    우리 몸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주위 환경과 계속적으로 열을 주고받는다. 체열(體熱)은 1차적으로 체내 대사과정을 통해 생산되고, 외부 환경과는 전도·대류·복사·증발의 네 가지 기전을 통해 열 교환이 이뤄진다. 보통 신체 내 기초대사와 운동과정을 통해 체온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열량보다 더 많은 열을 생산한 뒤 남는 열을 적절하게 방출함으로써 평형을 유지한다.

    더위가 지속되면 우리 몸은 열 생산량을 줄이고 방출량을 늘리는 쪽으로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조절은 뇌의 시상하부에서 이뤄진다. 체온이 높아지거나 낮아지면 피부에 있는 수용체가 자극되고, 이 자극이 시상하부의 온도조절 중추에 전달돼 체온의 평형을 맞추는 것이다.



    고온 환경에서는 1차적으로 피부혈관이 확대된다. 피부 혈류량이 증가해 혈액의 열이 피부로 전달되고 이 열은 다시 대류와 복사를 통해 환경으로 방출된다. 동시에 땀 배출이 증가해 증발열의 형태로 열을 방출한다.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열 방출이 주로 복사에 의해 일어나지만 기온이 34℃ 이상 되면 체열 방출은 거의 땀에 의한 증발열 방출에 의존한다.

    열 방출에는 온도뿐만 아니라 습도와 바람도 매우 중요하다. 주변 습도가 높거나 바람이 거의 없는 경우엔 증발열 방출이 어렵기 때문에 같은 기온이라도 견디기가 더욱 어렵다.

    열 방출을 위해 피부로 많은 혈액을 보내려면 심장의 부담은 커진다. 평소보다 많은 양의 혈액을 펌프질해야 하고 심장박동수도 빨라지게 된다. 호흡량도 증가해 증발에 의한 체열 방출을 촉진한다. 이 경우 심폐기능이 약한 노령층이나 심장질환 환자들에게는 더위로 인해 늘어나는 심장의 부담이 치명적일 수 있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땀 분비 능력은 떨어지기 때문에 증발에 의한 열 방출이 충분하지 않다. 심장의 부담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실제 94년 무더위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의 대다수가 65세 이상 노령층이었고, 심혈관질환을 앓고 있었다.

    젊은 사람도 적응이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고온 환경에 노출되면 여러 가지 질환이 생길 수 있다. 더운 곳에서 오래 서 있거나 사우나와 증기가 많은 환경에 있을 때 갑자기 쓰러질 수 있는데, 이를 열실신이라고 한다. 원인은 정맥의 혈액이 심장으로 원활히 전달되지 않아 생기는 일시적인 쇼크 상태로, 시원한 곳으로 옮겨 휴식을 취하면 회복된다.

    열받은 몸 … 당신의 심장 ‘빨간 불’
    젊은 사람도 고온 장시간 노출 땐 열실신·열사병 등 우려

    무더위 속에서 운동이나 노동을 할 때 근육에 통증과 함께 경련이 나타나는 것을 열경련이라고 한다. 비교적 고온에 잘 적응된 젊고 건장한 사람들에게서 일어난다. 주로 격렬한 노동이나 운동으로 많은 땀을 흘린 뒤 수분은 보충했으나 염분이 부족할 때 생긴다. 열경련 또한 휴식을 취하면서 소금을 보충해주면 어렵지 않게 회복된다.

    고온 때문에 생기는 질환으로 가장 심각한 것은 열사병이다. 열사병은 장시간 더운 환경에 노출된 뒤 열 방출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심부(深部) 체온이 상승하는 것이 원인이다. 체온조절이 되지 않아 고온상태가 유지되면 세포는 손상된다. 열사병 초기엔 두통, 구토, 무력감 등 전구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항문을 통해 측정한 심부 체온이 40℃ 이상으로 상승하며, 피부는 덥고 건조하다. 열사병은 조기에 체온을 낮춰주지 않으면 치명적인 응급질환이다. 여름철 군대에서 훈련을 받거나 운동을 하다 쓰러져 사망한 경우는 대부분 열사병에 의한 것이다.

    고온에 의한 희생자는 1차적으로 노약자, 영·유아, 심폐질환자 등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건장한 젊은 사람이라도 건강을 과신하고 무더위 속에서 무리하게 행동하면 언제든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만 한다.

    폭염과 대기오염의 관계

    기온↑, 오존농도↑


    기온이 높아지면 도시의 오존농도도 같이 높아진다. 오존은 자동차 배기가스를 통해 배출된 이산화질소와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햇빛과 반응해 생기는 유해가스다. 따라서 태양광선이 강하고 기온이 높으며, 건조하고 자동차가 많은 지역에서는 오존농도가 매우 높게 나타난다. 이 경우 심장질환이나 폐질환 환자의 사망 위험이 높아지고 천식발작의 위험도 높아진다.

    혹서 때문에 숨진 사람 중 상당수는 동반 상승한 오존의 영향 때문이라는 연구가 많이 나와 있다. 2003년 유럽 전역에서 2주 동안 무더위가 지속되면서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최근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이때 희생된 사람의 상당수는 오존 때문이었다. 오존이 사망에 영향을 끼친 정도는 도시마다 달랐지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도시에서는 초과 사망의 85%가 오존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무더위의 영향으로 심장의 부담이 심한 상태에서 높은 농도의 오존에 노출되며 피해가 커졌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부터 오존경보제를 시행하고 있다. 오존농도에 따라 3단계로 경보가 발령되는데, 오존에 노출되지 않게 외부 활동을 자제할 것을 권고한다. 무더위가 이어질 때 오존경보가 발령되면 더욱 주의해야 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