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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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30·40세대

탄핵 반대 거리의 촛불 시위 중심으로 … 학생 때 구호 외치며 ‘민주 악용’ 분노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4-03-18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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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을 수 없는 30·40세대

    30·40대 직장인들이 주축이 된 촛불시위는 탄핵정국을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바꾸어놓았다.

    3월12일 오전 11시56분. ‘대한민국’ 국회는 노무현 ‘대한민국’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그리고 이날 오후 8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은 1만2000여개의 촛불로 뒤덮였다. 어스름이 지면서부터 여의도 전철역을 빠져나오거나 시내버스에서 내린 시민들이 하나 둘씩 이곳으로 모여들어 ‘탄핵 무효’를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탄핵정국과 함께 전국을 달아오르게 한 촛불 시위의 시작이었다.

    탄핵 가결부터 시위가 벌어지기까지, 환한 낮 시간 동안 거리는 비교적 조용했다. 탄핵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길 좌우에서 팽팽한 맞대결을 보였을 뿐, 탄핵정국이 어디로 흘러갈지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둠이 깔리고, 퇴근한 ‘넥타이 부대’가 여의도를 메우기 시작하면서 탄핵에 대한 국민 여론은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한 네티즌이 인터넷 카페에 올린 ‘오늘 저녁, 여의도로’라는 격문을 보고 하나 둘 모여든 직장인의 물결이 탄핵정국의 방향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놓은 것이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는 모든 시위를 낮에 했어요. 대학생들이 시위의 중심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요새는 다 밤에 하죠. 직장인들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서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시위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 졸업 후 15년 만에 다시 가두시위에 나왔다는 정장 차림의 회사원 김두철씨(38)는 대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촛불을 들어 보였다.

    최근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독특한 ‘심야 시위’ 문화의 중심에는 김씨처럼 퇴근 후 현장을 찾는 30·40대 직장인들이 서 있다. 암울한 시대 민주화 시위로 마침내 이 땅의 아침을 열었던 당시의 젊은이들이 이제 사회인이 되어 다시 거리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압살 우리의 힘으로 반드시 응징”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대학생이었다는 한 시민은 인터넷 게시판에 “우리 세대는 할 일이 많은 세대입니다. 우린 많은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해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을 회피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많은 것들을 제대로 세워서 그 비겁함에 대해 속죄하고 우리가 본 그 불의의 증인으로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할 겁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30·40대 직장인 모임 ‘상식적인 생활인’의 회원들과 함께 탄핵 반대시위에 나온 엄모씨(34)도 “평소 노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탄핵 가결 소식을 듣는 순간 민주주의가 압살됐다고 생각해 시위에 나왔습니다. 우리 세대에게는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이 남아 있어요. 아무리 대통령이 잘못했다 해도 그를 쫓아낼 권리는 국민에게 있는 것 아닙니까. 임기 한 달 남은 국회의원들이, 그것도 온갖 비리로 얼룩진 의원들이 멋대로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이에 대한 도전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반드시 이를 응징할 겁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참을 수 없는 30·40세대
    ‘왜 지지율 30%짜리 대통령을 탄핵했는데 국민 70%가 반대하느냐’라는 세간의 의문에 대해 이들은 30·40세대 특유의 책임감과 역사의식을 답으로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번 탄핵 반대시위 현장에서 깃발을 든 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대학생 시위대보다 부모, 자녀와 함께 거리로 나선 평범한 생활인의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으레 시위의 중심으로 여겨졌던 대학생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 대신, 거리는 갓 걸음마 뗀 꼬마부터 60·70대 노인들까지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로 메워지고 있다. 그 가운데서 열심히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시위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삼삼오오 시위현장을 찾은 30·40대다. 젊은 시절 이들이 외쳤던 ‘민주 수호’ 구호가 다시 등장했고, 거리에는 ‘불나비’와 ‘타는 목마름으로’ 등 그 시절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이 때문에 시위에 참가한 이들은 자신들을 한 덩이로 묶어 ‘노사모’나 ‘친노(親盧)세력’이라고 부르는 데 대해 분노를 나타낸다.

    의정부에서 왔다는 김정환씨(35) 가족은 “친노는 정말 아닙니다. 노사모도 아닙니다. 다만 도적놈이 싫습니다”라고 쓰여진 피켓을 들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남편과 함께 세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시위 현장을 찾은 김영아씨(33)도 “나는 민노당을 지지하고, 총선에서도 민노당에 투표할 것”이라며 “다만 우리 모두가 함께 이룩한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역사가 뒷걸음치는 것을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학생 시절 시위에 나갔을 때만큼 비장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외치는 구호는 그때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지 정당이 없다는 직장인 김지원(38)씨는 “대선 당시에도 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모인 적은 없었다. ‘노사모’라면 노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서 그때도 나섰을 것 아닌가. 여기 모인 사람들 가운데 노사모도 많겠지만, 그들도 여기서는 ‘노무현 지지’를 외치지 못한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 회복’이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분노는 “전 국민의 70%가 반대하는 탄핵을 ‘국민’의 이름으로 가결시킨 것이 민주주의인가”라는 지점에서 하나로 모인다. 젊은 시절 ‘민주’를 최선의 가치로 여겼던 세대로서 부당한 ‘민주주의 악용’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보다 더 진보적 … 사회 변화 큰 계기”

    이에 대해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과)는 “국회의원들이 언제나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시민들은 자신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대의기관에 맞서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라며 “치열한 젊은 시절을 살아온 30·40대는 요즘의 젊은이들보다 어떤 면에서 더 젊고, 진보적이다. 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히기 시작한 것은 사회 변화에 큰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시위 현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격문’이라는 노래는 ‘3·1 정신으로 5월의 노래로 6월 함성으로 역사를 만들자’는 가사로 끝을 맺는다. 한때 사회 변혁의 중심에 섰던 30·40대의 힘이 이번에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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