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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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명! 영화 ‘흥행고속도로’ 만들어라

메이저 영화사 기업분할 등 변신 시도 … 안정된 자금줄+제작환경 조성 두 토끼 잡기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4-03-18 15: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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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명! 영화 ‘흥행고속도로’ 만들어라
    메이저 영화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기업 분할, 기업 합병, 우회 상장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 궁극적 목표는 안정적 자금 확보와 자유로운 제작환경 조성이다. 그러나 각 사의 상황에 따라 그 방향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핵심에 있는 것은 강우석 감독의 영화제작·배급사 시네마서비스다. 시네마서비스의 정식 명칭은 ‘플레너스 시네마서비스’. 종합엔터테인먼트 회사를 표방한 플레너스의 ‘영화사업부’다. 그런데 1월14일 플레너스가 시네마서비스의 물적 분할을 공표했다. 물적 분할이란 분리된 회사의 주식을 모회사가 전부 소유하는 기업분할 방식. 따라서 5월 예정대로 분할이 이뤄질 경우 시네마서비스는 플레너스가 지분 100%를 갖는 플레너스의 자회사가 된다.

    하지만 이것이 변화의 끝은 아닐 듯하다. 요즘 영화계에는 플레너스가 시네마서비스의 지분 전체를 영화계 대자본의 상징인 CJ엔터테인먼트 또는 오리온그룹에 매각하려 협상 중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실제로 플레너스의 대주주인 방준혁 사장은 물적 분할 공표 직후 증권사 애널리스트들과 주요 투자자들에게 “곧 시네마서비스를 매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다. 이에 대해 시네마서비스 김정상 사장은 “플레너스와 아직 할 일이 많다. 매각설은 시네마서비스와 손잡고 싶어하는 쪽들에서 퍼뜨린 뜬소문일 뿐이다. 그러나 전략적 제휴 차원의 협상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돈과 예술 한집안 동거 어려움

    특명! 영화 ‘흥행고속도로’ 만들어라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던 명필름 제작 영화 ‘바람난 가족’. 심재명 명필름 대표와 이은 감독 부부(작은사진).

    그런 측면에서 강우석 감독이 플레너스와의 분할 이유로 ‘산업 특성의 차이’를 든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분할 공표 당시 강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영화산업은 부침이 심한 업종이다. 그런데 플레너스는 상장사라 그러한 특성이 주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아 부담스러웠다. 뜻 있는 영화를 하다보면 돈을 까먹을 수도 있는 것인데, 매년 더 좋은 실적을 내야 하는 상장사에서 그런 식의 비즈니스를 추진하기는 쉽지 않더라”는 말을 했다. 또 “다시 특정사의 계열사가 되고 싶진 않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CJ엔터테인먼트는 상장사다. 극장 체인 메가박스와 배급사인 쇼박스를 소유한 오리온그룹 또한 ‘영화만’ 하는 회사는 아니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어쨌거나 정답은 매각’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문인 모 애널리스트는 “매각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굳이 물적 분할을 할 이유가 있나. 2003년 3월에도 시네마서비스는 플레너스-CJ엔터테인먼트 간 합병을 강력히 추진한 적이 있다. 강감독으로서도 안정적 투자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지금 강감독은 돈이 많지 않다. ‘실미도’로 번 돈의 상당액도 플레너스 소유로 잡혀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주식시장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도 플레너스와 시네마서비스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시네마서비스 분할 발표로 플레너스 주가는 5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매각을 통해서라도 그 손실을 메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레너스의 전신인 로커스홀딩스가 시네마서비스를 합병한 시점은 2000년 5월. 이때 강감독은 “로커스는 영화에 장기적이고 합리적인 접근을 하는 회사다. 로커스의 투자를 받음으로써 앞으로 자금 걱정 없이 영화의 기획, 제작, 연출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며 흡족해했다. 당시 로커스홀딩스는 이미 차승재 사장이 이끄는 영화제작사 싸이더스와 연예 매니지먼트사인 싸이더스HQ 등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었다. 시네마서비스와의 결합으로 로커스홀딩스는 한국영화 제작에서 최대의 파워를 갖게 됐다.

    특명! 영화 ‘흥행고속도로’ 만들어라

    강우석 감독,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 강제규 감독,(위부터).

    그러나 ‘최소한의 투자, 최대한의 수익’을 원하는 투자전문가와 ‘작품성·대중성이 결합된 양질의 문화상품’을 꿈꾸는 영화인들 간의 한집안 동거는 예상대로 순탄치 않았다. 먼저 결별을 선언한 쪽은 싸이더스였다.

    싸이더스 노종윤 이사는 “2003년 1월부터 경영에 대한 간섭은 사실상 끝났다. 완전 분리가 이루어진 것은 같은 해 7월이다. 애초 로커스와 손잡은 이유는 안정적 자금 지원 및 로커스 산하 타 엔터테인먼트 계열사와의 시너지 효과를 노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네마서비스가 들어오면서 구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싸이더스 사업은 ‘변방’으로 밀려났고 제약도 많아졌다.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플레너스와 시네마서비스의 결별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 것은 지난해 9월 확정된 보드게임업체 넷마블의 플레너스 인수였다. 넷마블은 애초 플레너스의 자회사였으나 합병 과정에서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역전 현상이 벌어진 것. 이렇게 되자 플레너스 안에서 강감독의 주주로서의 권한과 영향력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넷마블의 잠재 가치와 재정 안정성이 시네마서비스에 앞섰던 것. 그 과정에서 넷마블 창업주인 플레너스 방사장과 강감독의 불화설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말부터 “강우석의 시네마서비스가 플레너스와 결별한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강감독이 같은 해 5월, 9월, 11월 세 차례에 걸쳐 영화펀드 조성, 극장사업 확장 등의 이유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플레너스 주식을 대거 팔아버린 데다, 시네마서비스 회장을 비롯한 모든 공식직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 1월, 물적 분할 공표로 소문은 사실로 입증됐다.

    시네마서비스가 상장사를 ‘피해’ 달아났다면, 한국영화계의 또 다른 파워 집단인 명필름과 강제규필름은 반대로 상장을 목표로 획기적 변신을 꾀한 경우다.

    1월26일 명필름과 강제규필름은 상장기업인 공구업체 세신버팔로와의 결합을 통해 증권거래소에 진출한다는 발표를 했다. 세신버팔로의 사명은 ‘MK버팔로’로 바뀌게 됐다. 명필름 박신규 실장은 “안정적 자금 확보, 강제규필름과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 결합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거래로 명필름의 대주주인 이은 감독, 심재명 대표, 심보경 이사는 MK버팔로 지분의 17%를, 강제규필름 대주주인 강제규 감독은 10.8%를 갖게 됐다.

    명필름과 강제규필름은 2002년 각각 코스닥 등록을 추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영화 제작사의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업계의 한 인사는 “현재의 한국영화 제작사는 특정 감독이나 기획자에게 모든 것을 거는 형태다. 막말로 시네마서비스에서 강우석 감독이 빠지고 강제규필름에서 강제규 감독이 빠지면 뭐가 남나. 수익구조의 불안정성보다 그 리스크가 더 크다”고 주장했다.

    명필름 심보경 이사는 “우회상장 그 자체가 목표라기보다 투자조합이나 투자배급사 등에 휘둘리기 일쑤인 현재의 자금유치 구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상장사가 됨으로써 공모나 증자 등을 통해 다양한 투자 유치 경로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 가치를 뒀다”고 말했다.

    싸이더스 노종윤 이사는 “각각의 프로젝트마다 새로 투자를 받아야 하는 현재의 구조는 불합리한 점이 많다. 영화업을 ‘본격 산업화’하는 데도 걸림돌이다. 이런 식으로는 자본금 확충, 신사업 추진 등 명실상부한 ‘기업’의 모양새를 갖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비슷한 시기 싸이더스도 코스닥 등록업체인 보안기술회사 씨큐리콥과 손을 잡았다. 씨큐리콥이 40억원에 싸이더스를 자회사로 흡수하는 형태를 취했다. 노종윤 이사는 “양사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우리는 안정적 자금 지원이 필요했고, 통신서비스 사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씨큐리콥은 싸이더스의 콘텐츠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손잡자는 다른 회사도 많았지만 장기적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 위해 씨큐리콥을 택했다”고 말했다.

    싸이더스와 함께 플레너스에서 떨어져나온 매니지먼트사 싸이더스HQ도 코스닥 등록업체인 속옷업체 라보라에 일부 지분을 양도했다. 영화제작업 진출을 선언한 싸이더스HQ는 현재 전지현, 강혁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촬영 중이다.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강사인 조준형씨는 “현재 영화계의 경제적 파워는 극장에, 콘텐츠 파워는 투자배급사에 있다. 이 상태로 계속 가면 영화산업의 핵심인 제작 주체들의 파워는 갈수록 약화될 수밖에 없다. 명필름이나 싸이더스의 선택은 투자자 이익 보장이라는 ‘재정의 윤리학’과 좋은 영화 제작이라는 ‘문화적 가치’를 모두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 생각한다. 이들이 21세기형 한국 문화기업의 모델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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