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라이브 평생 남는 감동](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11/08/01/201108010500037_1.jpg)
돌아오는 길에 무슨 이유에선지 사이토 가즈요시의 ‘내가 본 비틀스는 텔레비전 속’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달라진 시대상에 대해 불편해하며 “일본도 많이 변했다”고 말하는 기성세대를 향해 “어차피 나는 비틀스를 텔레비전으로 본 세대”라고 선언하는 자조적이면서도 묘하게 심지가 있는 노래다. 재미있지 않은가. 우리 혹은 우리 부모 세대 중에서 비틀스 노래를 라이브로 들어본 사람이 과연 있을까. 비틀스 공연을 라이브로 본다는 상상이라도 해본 적이 있나. 우리에게 비틀스란 당연히 음반, 자료화면, 공공장소의 시그널 뮤직으로만 존재하는 이름이 아니었던가.
우리나라와 일본의 대중음악 시장 혹은 문화상품 시장의 차이를 얘기하자면 규모, 구매력, 국민성 등 다양한 요소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비틀스 노래를 라이브로 들어보았는가’하는 점도 꽤 의미심장한 하나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비틀스는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존재할 수 없는 하나의 현상이었다. 다른 가수는 평생 하나 갖기도 힘든 어마어마한 히트곡, 전 세계를 휩쓴 ‘비틀마니아’라는 팬덤, 이미 30대가 되기도 전에 이룬 엄청난 음악적 성취…. 그 거대한 해일을 눈앞에서 보고 그 포말을 뒤집어쓴 기분은 어떤 것이었을까.
음악을 라이브로 보고 듣는 것과 음반으로 접하는 것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나는 가수다’의 청중평가단에 선정된 사람들은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방송은 현장의 감동과 흥분을 반도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니 말이다. ‘끝내주는’ 라이브를 보고 난 관객은 한동안 그 감흥에 젖어 주변 사람들까지 물들이곤 한다. 그러니 전성기의 비틀스를 ‘생’으로 본 사람들의 에너지는 얼마나 어마어마했을까. 그 기운이 퍼져 다시 좋은 공연을 만드는 일종의 선순환이 아직까지도 탄탄한 일본 대중음악 신(scene)을 만드는 데 분명 일조했으리라.
안타깝게도 비틀스는 우리나라에 다녀간 적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려 한다. 그건 우리에게 손해가 아니라 비틀스에게 손해였을 거라고. 많은 해외 뮤지션이 한국만큼 관객 매너가 좋고 공연이 흥분으로 가득한 나라가 없다고 입을 모으지 않는가.
![‘끝내주는’라이브 평생 남는 감동](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11/08/01/201108010500037_2.jpg)
* 정바비는 1995년 인디밴드 ‘언니네이발관’ 원년 멤버로 데뷔한 인디 뮤지션. ‘줄리아 하트’ ‘바비빌’ 등 밴드를 거쳐 2009년 ‘브로콜리 너마저’ 출신 계피와 함께 ‘가을방학’을 결성, 2010년 1집 ‘가을방학’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