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쥐포는 국산 ‘한 마리 한 장’짜리, 아래의 것은 베트남산 ‘수십 마리 한 장’짜리.
언제 누가 이런 생선포(설탕과 조미료를 바른!)를 만들었는지 새삼 궁금해져 쥐포에 관한 자료를 찾았다. 그러나 인터넷 어디에서도 쥐포의 역사는 찾을 수가 없었다. 한때 쥐포의 최대 산지였던 삼천포나 여수로 취재를 가야 마땅하지만, 쥐포 하나 때문에 그 먼 길을 나설 수도 없어 어릴 때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해볼 뿐이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마산이다. 바닷가와 어시장에서는 온갖 생선을 말렸다. 냉장고가 귀한 시절이었으니 바닷가인데도 싱싱한 생선이 상에 오르기보다 소금에 절이거나 말린 생선이 조리돼 오르는 일이 더 많았다. 우리 형제에게 군것질거리로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가오리포였다. 꾸덕꾸덕하게 말린 가오리(홍어가 아니다. 손바닥 서너 개 펼진 정도의 가오리!)를 연탄불에 구워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이건 집에 늘 있었던 것 같다.
시대 바뀌었어도 최고의 군것질거리로 인기
쥐포는 느닷없이 등장했다. 어느 기억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는 시장 좌판에서 어머니가 쥐포를 사준 것이고, 또 하나는 누군가 우리 집에 나무상자에 든 쥐포를 가져다줘 두고두고 먹었던 일이다. 그때 일을 내 형들은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무상자에 든 쥐포 있제? 그기 일본에 수출하던 거 아이가. 처음에는 우리나라 사람들 쥐포 안 묵었다. 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선포 말리는 데 설탕 바르고 미원 바르는 거 본 적 있나? 그냥 말려서 묵는다 아이가. 일본애들은 생선포를 달달하게 설탕 발라 묵는 모양이더라. 하여간에 마산하고 사천하고 삼천포, 여수 이런 데서 쥐포 말려 일본 수출하는 집들이 있었다. 그란데 한번은 그 수출하는 쥐포가 상해서 클레임이 걸리뿐 기라. 와, 생선포 습기찬 데 오래 두모 쿰쿰한 냄새 나잖아. 수출하는 건어물집에 큰일이 난 기라. 되돌려받은 그놈의 쥐포를 버릴 수도 없고. 그래서 수출하다가 클레임 걸렸다는 말은 쏙 빼고 시장에다 뿌렸다 안 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묵나 어떠나 볼라꼬. 근데 그기 대박을 친 기라. 니 알제? 마산 시내가 천지삐까리로 쥐포 풀렸던 거. 그래, 니는 잘 모를 끼다. 내가 막 중학교 들어갔을 때고 니는 아직 엄마 치마 붙잡고 코 질질 흘리고 다닐 때니까.”
하여간 내 청소년기의 주요 간식은 첫입에는 달콤하고 씹을수록 고소한, 그리고 마지막에는 약간의 콤콤한 냄새를 입 안에 남기는 쥐포였다. 그러던 어느 해 이 쥐포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달콤하기만 할 뿐 고소하지도 쫄깃쫄깃 씹히지도 않는 이상한 모양의 쥐포가 등장했다. 한참 나중에야 알았는데, 명태를 얇게 펴서 쥐포 크기로 잘라 만든 ‘사이비 쥐포’였다.
쥐포 찾을 나이가 지나고 한참 세월이 흐른 뒤 쥐포가 또 이상한 모양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작은 생선을 수십 마리 닥지닥지 붙여 한 장의 쥐포로 만들어 팔고 있는 것이 아닌가.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만들어 온다고 하는데, 이게 쥐포처럼 작은 생선이기는 하지만 진짜 쥐치로 만든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내 막내(초등학교 5년)가 ‘쥐포 킬러’다. 한자리에서 서너 장을 먹어치운다. 장 보러 가면 매번 쥐포를 사오는데, 이놈한테 제대로 된 쥐포 한번 먹여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쥐포는 살이 두툼해야 씹는 맛도 있고 겉에 바른 설탕 맛 외에 생선살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런 맛을 느끼려면 쥐치 한 마리로 쥐포 한 장, 또는 두 장을 뜰 정도로 쥐치가 큼직한 것이어야 한다. 그것도 기왕이면 국산으로!
두어 달 전 대형마트에서 일본산 ‘한 마리 한 장’짜리를 발견하고 크게 기뻐하다, 예전에 수출하던 나라에서 이젠 수입을 하는구나 싶어 고향의 망가진 어장 걱정으로 끌끌 혀를 찬 적이 있었다. 3월 초 고양시 킨텍스 농수산물 전시판매 행사장에 갔다가 정말 십수년 만에, 아니 20여 년 만에 고향 떠나 처음으로 ‘한 마리 한 장’짜리 국산 쥐포를 구입했다. 여수의 오천산업(061-651-9406) 제품인데, 판매원 말로는 “국산 한 마리짜리는 귀해서 백화점 몇 곳에만 낸다”고 했다. 막내놈 군것질거리로는 비싼 편이지만 나도 먹어볼까 싶어 10여 장 든 것으로 한 봉지 샀다. 과연 보람 있었다. 막내놈, 한 장 딱 먹더니 맛 차이를 금방 알아낸다. 형님들한테도 이 정보를 알려줘야 하는데 몇 봉지 사서 돌리지 않았다고 야단이나 듣지 않을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