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발 이승으로 돌아가시고 나면, 그리고 긴 여행의 여독을 푸시고 나면 저를 기억해주세요.
- 저는 피아랍니다. 시에나에서 태어나 마렘마에서 죽었답니다. - 단테의 ‘신곡’ 연옥 편
이 고색창연한 중세 이야기가 한 사나이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은 단테의 피아 이야기와 자신의 홍콩 여행기를 바탕으로 한 편의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1925년 ‘인생의 베일’이란 소설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나오미 와츠와 에드워드 노튼 주연의 ‘페인티드 베일’은 고색창연한 영화다. 왜 아니겠는가. 원작이 고색창연하고, 그 원작의 원작은 더 고색창연하며, 이미 세 번씩이나 리메이크된 작품인데…. 그레타 가르보가 주연을 맡아 1934년 ‘일곱 번째 죄(The seventh sin)’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 이 작품은 1957년 엘리노어 파커 주연의 새로운 영화로 재창조됐다. 이번에는 나오미 와츠와 에드워드 노튼이 제작까지 하겠다고 나서 자그마치 50년 만에 다시 영화화됐다. 콜레라가 창궐하는 또 다른 마렘마인 1920년대의 중국 오지 메이탄푸에서는 남자는 남자였고, 여자는 여자였던 시대의 향수와 미몽이 하늘하늘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아름답고 쾌활한 성격의 여주인공 키티 페인은 숨막힐 듯한 런던 생활과 어머니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충동적으로 세균학자인 월터와 결혼해버린다. 그를 따라 부임지인 중국 상하이에 간 키티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월터보다 매력적인, 외교관이지만 유부남인 찰스 타운센드에게 마음이 끌린다.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을 목격한 월터는 키티에게 “콜레라가 창궐하는 메이탄푸에 갈 것인지, 찰스를 선택할지 결정하라”며 강권한다. 그러나 찰스에게 키티는 단지 하룻밤 연애 상대일 뿐. 그녀는 결국 남편이라는 이름의 푸른 수염을 따라 또 다른 연옥의 한가운데에 발을 내디딘다.
세 번째 리메이크작 … 한 여인의 나약함과 욕망의 혼돈 그려
영국의 모파상이라 불리는 서머싯 몸답게 그의 소설에는 인간의 위선과 어리석은 욕망의 불꽃들이 시디신 크림처럼 각종 연애담에 얹혀 있다. ‘인생의 베일’에도 달콤한 연애담이 아닌, 세상 물정 모르는 한 여인이 지옥의 한가운데서 어떻게 자기 내면의 길을 발견해가는지에 대한 통찰과 풍자가 담겨 있다. 원작에서 키티는 월터의 사랑을 확인한 뒤에도 찰스의 품에 다시 한 번 안긴다. 그리고 자신의 나약함과 욕망의 어지러움에 몸을 떨며 흐느낀다.
그러나 여기는 할리우드고, 때는 2007년이다. ‘페인티드 베일’은 인생의 베일을 벗어던지고 남자가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여인의 이야기라기보다 오히려 운명의 불꽃에 산화한 슬프고 애절한 ‘불운한 연인들(star-crossed lover)’의 로맨스다.
맨 처음부터 한 폭의 아름다운 꽃송이와 현미경을 통해 보이는 박테리아가 교차 편집된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존 커란 감독이 미묘한 방식으로 두 사람의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은유하는 것이다. 존 커란의 버전에 의하면, 키티와 월터 두 사람의 불화는 다른 두 세계에서 기원한 꽃과 세균, 즉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의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키티가 꽃이 만발한 런던의 화원을 떠나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으로 떠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세계를 떠나 월터의 세계로 진입한다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력과 나오미 와츠의 매력은 이러한 감독의 재해석을 충분히 설득적인 이야기로 바꿔놓는다. 에드워드 노튼은 현미경으로 러브레터를 써 내려간 한 자의식 강한 세균학자의 일그러진 입술과 숨결을 모두 감쪽같이 체화한다. 양산을 들고 서 있기만 해도 근사한 나오미 와츠의 고전적인 매력은 그가 어떻게 ‘킹콩’의 히로인이 될 수 있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1920년대 중국 배경 … 채색 판화 같은 영상미
내국인이 외국인을 배척하고 서로에게 살의를 품는 1920년대 중국의 근대화 과정은 남편, 아내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타자였던 두 사람의 근접 조우 과정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성실하고 강직한 인품을 지녔으면서도 자신의 감정과 여자의 육체 모두에 서툰 월터에게 키티는 이렇게 말한다.
‘페인티드 베일’
복수와 용서. 늘 사랑의 열정에 뒤처지기만 하는 이 덕목은 죽음의 한복판에서야 비로소 사랑의 가변차선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월터와 키티의 사랑이 싹틀 때, 양쯔강의 넘실대는 물은 심지어 인간의 불륜조차도 사소한 것으로 느껴지게 할 만큼 도도하게 흘러간다.
영화를 보면서 여러 가지 것들이 떠올랐다. ‘인도차이나’의 로망이 떠올랐고, ‘연인’의 관능이 느껴졌으며, 앙드레 말로의 소설 ‘인간 조건’에 등장하는 고뇌 어린 지식인들도 생각났다. 어찌 보면 ‘페인티드 베일’에는 이 모든 것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존 커란은 마치 대하소설을 읽듯 감정의 선을 정확히 조율해 매끈하면서도 아름다운 채색 판화 같은 영화 한 편을 뽑아냈다.
복고풍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페인티드 베일’은 그래서 영화적인 영화라기보다 소설 같은 영화의 향기를 지닌다. 죽음 앞에서야 서로를 알게 된 남녀. 너무 늦게 도착한 진실한 사랑. ‘닥터 지바고’ ‘내가 마지막 본 파리’에서 시작된 할리우드의 이국 판타지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과거라는 시간의 재 속에서, 이국이라는 낯선 얼굴에서 할리우드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 헤맨다. 동시대, 자신의 심장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바로 그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