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여름 어느 날.
두 살이었던 나는 낡은 의자를 개조해서 만든,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멋진 유모차를 타고 산책을 나갔다.
지금이야 멋진 유모차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유모차란 말조차 낯선 시절이었다. 엉성해 보이지만 목마형태의 손잡이까지 만든 것을 보면 좋은 유모차를 만들어 자식들에게 주려 했던 부모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얀 고무신에 까까머리를 한 형님(당시 13세)이 뒤에서 밀어주며 일 나가신 부모님 몫을 대신했다.
요즈음 길에서 유모차를 타고 가는 귀여운 아이들을 볼 때면 집으로 돌아와 종종 이 사진을 꺼내본다. 사진을 볼 때마다 아내에게 “내가 이래봬도 있는 집에서 컸어.
당신 이런 유모차 타본 적 있어?” 라고 말하면 아내는 “그래요. 정말로 대단해”라고 웃으며 대답하곤 한다.
뒤에서 으젓하게 동생을 밀어주던 형님은 어느 새 손자를 볼 나이가 되었다. 예전의 날씬한 모습은 사라지고 살이 많이 쪄 옛 모습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형님이 손자의 유모차를 밀어주며 날씬한 옛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해본다.
두 살이었던 나는 낡은 의자를 개조해서 만든,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멋진 유모차를 타고 산책을 나갔다.
지금이야 멋진 유모차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유모차란 말조차 낯선 시절이었다. 엉성해 보이지만 목마형태의 손잡이까지 만든 것을 보면 좋은 유모차를 만들어 자식들에게 주려 했던 부모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얀 고무신에 까까머리를 한 형님(당시 13세)이 뒤에서 밀어주며 일 나가신 부모님 몫을 대신했다.
요즈음 길에서 유모차를 타고 가는 귀여운 아이들을 볼 때면 집으로 돌아와 종종 이 사진을 꺼내본다. 사진을 볼 때마다 아내에게 “내가 이래봬도 있는 집에서 컸어.
당신 이런 유모차 타본 적 있어?” 라고 말하면 아내는 “그래요. 정말로 대단해”라고 웃으며 대답하곤 한다.
뒤에서 으젓하게 동생을 밀어주던 형님은 어느 새 손자를 볼 나이가 되었다. 예전의 날씬한 모습은 사라지고 살이 많이 쪄 옛 모습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형님이 손자의 유모차를 밀어주며 날씬한 옛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