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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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바로 '아트 마케팅' 원조

  • < 신을진 기자 happyend@donga.com >

    입력2005-01-21 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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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이 바로 '아트 마케팅' 원조
    기업인들은 가난한 예술가들을 돕겠다는 식의 태도를 버려라. 현대사회에서 문화 없는 경제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다. 문화와 기업은 파트너 관계다. 오늘날 문화는 주요한 마케팅의 수단이란 사실을 정부와 기업은 잊지 말아야 한다.” 작년 서울에서 열린 ‘기업과 문화예술의 연대를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가했던 프랑스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기업의 문화후원을 ‘선의로 무장한 부의 환원’이나 ‘노블레스 오블리제’로 바라보는 시각의 협소함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술가와 기업의 파트너십에 기초한 이른바 ‘아트 마케팅’의 예를 국내에서 찾는다면 홍대앞 ‘쌈지 스페이스’가 그 첫손에 꼽힐 것이다. 쌈지는 창업 초기부터 ‘예술의 생활화, 생활의 예술화’라는 구호를 통해 ‘아트’를 테마로 삼아 새로운 패션 문화, 디자인 문화의 창출에 주력했다. 그러다가 IMF 경제위기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순수미술 분야의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98년 ‘아트 프로젝트’를 가동하기에 이르렀던 것.

    기존의 암사동 스튜디오에서 지난해 4월 홍대 앞으로 이전한 ‘쌈지 스페이스’는 1년이 지난 지금, 홍대뿐 아니라 미술계 전체에서도 중요한 ‘명소’가 되었다. 미술, 음악, 영상, 연극, 춤이 한곳에서 만나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이자 작가와 대중의 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이곳을 어떤 사람들은 ‘아방가르드의 메카’라고도 한다.

    문화의 거리와 소비의 거리 사이에서 방황하는 홍대 앞에 이 공간이 처음 들어섰을 때만 해도 “이게 뭐지” 하는 생뚱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이곳은 기존의 미술양식이나 딱딱한 화랑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젊은 작가들의 신선한 전시회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짓는 다양한 시도들로 새로운 문화적 지표를 마련하고 있다. 전시장이라기보다는 ‘놀이공간’이라 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수시로 파티가 열리고, 주말마다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떠들썩한 스탠딩 공연도 펼쳐져 미술 애호가, 파티광, 음악 팬들이 거리낌없이 어울릴 수 있다.

    ‘실험적이고 진취적일 것’ ‘새롭고 창조적일 것’. 이는 쌈지 스페이스의 정신이자, 쌈지 문화의 핵심이다. 개관전으로 고낙범, 박혜성, 안상수, 이불 등 기존 화단에 도전한 신세대 그룹 운동의 주역들을 불러모아 기획전 ‘무서운 아이들’을 선보인 쌈지 스페이스는 그 후에도 다국적 프로젝트 멀티미디어 실험극 ‘X-isle’, 떠오르는 신진 작가들의 ‘Emerging’전, 남성작가 5인의 ‘5物 요리’ 등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자유분방하고 이색적인 전시와 이벤트로 주목받았다.



    이곳이 바로 '아트 마케팅' 원조
    미술계에서 쌈지의 영향력은 매우 커 ‘쌈지’ ‘쌈지 작가’는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키워드로 받아들여진다. 쌈지 스페이스 4∼6층의 작가 스튜디오는 1년마다 새로운 작가들이 들어와 창작공간을 제공받는다. 쌈지 스튜디오는 젊은 작가들이 ‘뜨는’ 직코스처럼 인식할 정도. 그만큼 경쟁률도 치열하다. 이 스튜디오는 외국 기획자들이나 큐레이터들이 한국에 오면 꼭 들르는 코스가 되었다.

    이들은 대신 스튜디오를 나갈 때 쌈지측에 작품을 기증한다. 쌈지는 이를 토대로 컬렉션을 구축한다는 계획. “무상으로 지원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들도 당당할 수 있다”고 쌈지 스페이스 큐레이터 구정하씨는 말한다. 작가들끼리의 교류도 활발해 화단에는 ‘쌈지 커뮤니티’가 생겨났다. 이들에게서는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과 변화를 가장 빨리 읽을 수 있다.

    돈을 벌지는 못하고 오히려 쓰기만 하는 공간. 전시회만도 1년에 1억원씩 들어가는 이런 공간을 대기업도 아닌 중소기업에서 운영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경제논리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더구나 명성 있는 중진작가나 잘 팔리는 인기작가가 아닌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언더그라운드 청년 미술가들을 지원하고, 인기가수보다는 언더그라운드 밴드를 무대에 세우는 것에 이르면 이상하다는 생각마저 들 수 있다. 그러나 쌈지 천호균 사장은 “문화 후원사업은 미래 지향적인 고단수 투자다. 이 공간의 창의적인 기운을 끊임없이 받아들일 수 있고, 쌈지의 독특한 디자인에도 예술가들의 기가 스며들어 있다. 우리가 작가들을 후원하지만 그만큼 우리도 되돌려 받는다”라고 말한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연방 미술 프로젝트’를 가동하여 국가 경제위기 속에서도 예술가들을 먼저 챙겼다. 이는 후에 미국을 경제뿐 아니라 예술분야에서도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게 한 밑바탕이 되었다. 쌈지 스페이스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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