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말과 생각, 감정과 행동은 뇌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우리를 움직이는 뇌. 강석기 칼럼니스트가 최신 연구와 일상 사례를 바탕으로 뇌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비밀을 풀어준다.

1979년 개봉한 영화 ‘에일리언’의 한 장면. 인간 냉동보존술이 실현되면 화성까지 가는 6개월 동안 우주인은 냉동 수면 캡슐을 이용할지 모른다. 21세기폭스 제공
당시 영국에서 시신 냉동보존은 불법이었다. 소녀는 법원에 편지를 보내 호소했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사망 직후 소녀의 몸은 영하 196도 액체질소로 얼려졌다. 아마 지금도 그 상태로 있을 것이다.
인간 냉동보존술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실제 돈을 받고 시체를 냉동보존하는 회사가 미국에 3곳, 러시아에 1곳 있다. 1967년 제임스 베드퍼드라는 사람이 최초 냉동인간이다. 지금까지 수백 명이 냉동보존됐고 대기자도 수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앞서 소개한 영국 소녀는 미국 한 회사에 5400만 원을 주고 냉동됐다.
5400만 원에 14세 소녀 시신 냉동보존
필자는 인간 냉동보존술을 첨단 과학기술로 위장한 사기로 봤다. 수십, 수백 년 뒤 의학이 충분히 발전해 생명을 소생시키고 암을 고칠 수 있게 되더라도 냉동된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몸을 얼리는 과정에서 신체 기관이나 조직 세포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어 해동돼도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 생각한 것이다.하지만 인간 냉동보존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 생각은 다르다. 먼 미래에는 인공지능(AI) 나노로봇이 이러한 손상을 일일이 복구할 수 있을 테니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냉동 과정에서 손상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발달할수록 복구가 쉬워져 부활 시기도 앞당겨질 것이라고 본다.
냉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상은 고기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얼렸다가 녹인 고기는 생고기에 비해 식감이 떨어진다. 냉동 과정에서 고기 속 물이 얼음 결정으로 바뀌고 세포막 등 구조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을 냉동하는 방법은 고기 냉동과는 다르다. 과학자들은 물이 어는 과정에서 결정이 만들어지지 않는 유리화 방법을 개발했다. 본래 물은 온도를 낮추면 0도에서 고체인 얼음으로 바뀐다. 하지만 비결정성을 가진 유리는 온도를 낮추면 서서히 굳어 고체가 된다. 녹은 엿이 굳는 것과 비슷하다. 물에 동결보호제를 타 걸쭉한 상태로 만들면 냉각될 때 유리처럼 굳는다. 이것이 물의 유리화다.
유리화 냉동 기술은 이미 의학계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유리화로 냉동보존한 난자를 해동해 인공수정한 시험관 아기가 처음 태어난 게 1999년이다. 최근에는 장기이식 분야에서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쥐와 토끼를 대상으로 유리화 과정을 거쳐 냉동보존한 심장이나 신장을 녹여 이식에 성공한 동물실험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 냉동보존술에 회의적인 목소리는 남아 있다. 생체기관 가운데 가장 복잡한 뇌 구조가 이 과정에서 온전히 보존될 수 있을지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다른 장기는 몰라도 뇌가 손상되면 그 사람의 정체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최근 이러한 질문에 답할 놀라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는 뇌에서 기억과 공간 탐색을 담당하는 핵심 영역인 해마가 냉동보존 뒤 해동됐을 때 여전히 제 기능을 한다는 내용이 실렸다. 독일 에를랑겐-뉘른베르크대 연구자들은 해마를 유리화 방법으로 얼려 7일 동안 영하 150도에 보관한 뒤 녹였다. 그런데 이 해마의 미세 구조가 여전히 유지됐다. 세포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도 제대로 작동해 에너지 대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전기 자극에 신경세포인 뉴런도 적절히 반응했다. 신경회로 역시 정상 작동해 학습과 기억의 기초인 시냅스 강화 현상이 관찰됐다.
인공수정·장기이식 분야 냉동 기술 연구 활발
2월 학술지 게재 전 논문 저장소인 ‘바이오아카이브’에는 쥐와 사람의 뇌 전체를 유리화로 냉동보존한 뒤 해동했을 때 전체 구조 및 미세 조직이 온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논문도 등록됐다. 미국 냉동보존 전문회사인 ‘21세기메디슨’과 인간 냉동보존 시설 ‘알코어생명연장재단’의 공동 연구자들은 M22라는 동결보호제를 사용해 뇌를 얼리고 녹이는 과정에서 손상을 최소화했다. 현미경과 컴퓨터단층촬영(CT) 등 다양한 방법으로 뇌 구조와 미세 조직을 살핀 결과 거의 대부분 별다른 손상 없이 온전하게 유지돼 있었다고 한다. 이 연구는 사람 뇌를 대상으로 한 첫 사례라 학술지에 실린다면 인간 냉동보존술의 큰 진보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2016년 영국 소녀가 냉동인간이 됐을 때 인간 냉동보존술이 사기라고 생각했던 필자의 평가를 보류한다. 이후 AI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고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던 사람 같은 로봇이 이제 피지컬 AI로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년 내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쥐 정도는 산 채로 얼렸다가 녹여 되살리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지 않을까.
강석기 칼럼니스트는… 서울대 화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 연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를 거쳐 2012년부터 과학칼럼니스트이자 프리랜서 작가(대표 저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