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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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관리하는 반려견 처방 사료, 간식 취급 우려

[이학범의 펫폴리] 정부 추진 ‘펫푸드 특화제도’ 보호자 혼란 초래 가능성

  • 이학범 수의사·데일리벳 대표

    입력2024-10-2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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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반려동물과 행복한 동행을 위해 관련법 및 제도가 점점 진화하고 있다. ‘멍냥 집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반려동물(pet)+정책(policy)’을 이학범 수의사가 알기 쉽게 정리해준다.
     정부가 ‘펫푸드’(Petfood·반려동물 사료)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이전 글에서 전해드린 적이 있죠. 반려동물 시장이 크게 발전하면서 반려동물이 먹는 음식을 펫푸드로 부르는 문화가 조금씩 자리 잡아 왔는데, 이를 다루는 별도 법체계가 없어 가축용 사료와 함께 ‘사료관리법’으로 관리된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8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반려동물 연관산업 육성대책’을 발표하고 “반려동물 사료를 가축용과 구별해 분류, 표시하는 펫푸드 특화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가 반려동물 사료를 가축용과 구분해 분류, 표시하는 ‘펫푸드 특화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GettyImages]

    정부가 반려동물 사료를 가축용과 구분해 분류, 표시하는 ‘펫푸드 특화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GettyImages]

    사료 유형, 단 두 가지로만 나눠

    정부는 ‘펫푸드 제도 개선 협의체’를 발족하고 여러 차례 회의 끝에 최근 ‘펫푸드 표시기준 제도 개정안’을 수립했는데요. 이에 대한 공청회가 얼마 전 열렸습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펫푸드는 반려견·반려묘용 사료로 규정됩니다. 사료 공통표시사항에는 제품명, 급여 대상 등을 추가하고 OEM·ODM 업체는 위탁 공장뿐 아니라 업체의 상호·주소·전화번호도 기재합니다. 또 ‘계육분’을 ‘닭고기 분말’처럼 소비자가 이해하기 쉬운 원료명으로 병기하고, ‘식품위생법’ 기준을 충족한 경우에만 ‘휴먼 그레이드’처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원료를 사용했다는 표현을 쓰게 합니다. 최근 반려동물 사료에 대한 과대·과장·허위광고가 많은데,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공청회에서 한 가지 논란이 된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처방식(처방 사료) 카테고리가 빠졌다는 점입니다(처방식은 정식 용어는 아닙니다. 아픈 반려동물이 질병 관리를 목적으로 먹는 사료를 뜻하며 특수목적 영양사료, 질환관리사료 등으로도 불립니다).

    정부는 개정안에서 반려동물 사료 유형을 ‘반려동물완전사료’와 ‘기타 반려동물사료’ 단 두 가지로만 구분했습니다. 반려동물완전사료는 별도의 공급 없이 반려동물의 성장 단계별로 필요한 영양소를 모두 충족하도록 영양 성분이 구성된 반려견·반려묘용 사료를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주식(主食) 사료를 의미하죠. ‘완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다 보니 기타 반려동물사료는 뭔가 불완전한 제품이라고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고 간식이나 보조제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껌, 육포, 영양제 등이 기타 반려동물사료가 되는 거죠.

    이 기준에 따르면 처방식은 ‘기타 반려동물사료’에 포함됩니다. 처방식은 특정 질환을 가진 아픈 반려동물이 먹는 사료이기에 특정 성분을 줄이거나 늘리는 방식으로 제조되고, 반려동물완전사료의 기준을 충족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수의사들이 처방식을 권할 때 반려동물의 질병 관리와 증상 개선을 위해 해당 처방식만 급여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음식을 섞어서 먹이면 처방식 효과를 제대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죠. 즉 아픈 반려동물에게는 처방식이 곧 주식인데, 이때 처방식을 간식과 마찬가지로 기타 반려동물사료로 표시하면 처방식만으로는 부족하고 뭔가 다른 먹거리를 추가로 급여해야 할 것 같은 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만약 보호자의 혼란으로 처방식이 정확히 급여되지 않는다면 반려동물의 건강이 악화할 수 있고, 이는 동물복지 차원에서 올바른 방향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국내 펫푸드 수출길 막힐 수도

    지난해 펫푸드 제도 개선이 처음 논의될 때는 처방식을 별도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방안이 추진됐습니다. 건강한 반려동물이 먹는 주식 사료는 ‘완전사료’, 간식 등은 ‘기타사료’, 처방식은 ‘특수목적 영양사료(특수목적식)’로 분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의를 거듭하면서 처방식 카테고리가 삭제됐습니다. 국내에 수의영양학적으로 처방식을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기관이나 전문가가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펫푸드 전문 연구기관과 전문가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서 정부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어느 정도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가 충분히 참고할 만한 자료와 기준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또 새로운 제도를 만들면서 이미 많이 활용되고 있는 카테고리를 없애는 것이 맞는 방향이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공청회 현장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있었으나 “현재는 처방식 카테고리를 추가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공청회는 왜 한 것일까요. 참고로 이 제도는 내년 1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반려동물 연관 산업을 육성하겠다며 마련한 펫푸드 특화제도가 오히려 보호자에게 혼란을 준다면 과연 반려동물산업 육성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또 다수 국내 펫푸드 업체들이 처방식을 해외로 수출하고자 노력 중인데, 간식처럼 기타 반려동물사료로만 표시된다면 해외에서 한국과 국내 기업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그저 “이런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노력했습니다”라며 성과를 보여주려고 펫푸드 제도 개선을 추진한 것은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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