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빅데이터 전문가 김기원 데이터노우즈 대표. [박해윤 기자]
정부가 올해 들어 중도금 대출 규제 완화, 투기과열지구 지정 해제, 무순위 청약 요건 폐지 등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책을 내놓은 뒤 부동산시장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집값 하락세가 둔화하고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부동산 바닥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은행이 2월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후에는 금리인상이 종료기에 다다랐다는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집값이 다시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 전세가·매매가, 여전히 하락 중
부동산 빅데이터 전문가인 김기원 데이터노우즈 대표는 다양한 데이터를 근거로 분석할 때 “지금은 절대 반등 타이밍을 논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김 대표는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절 “집값이 폭락할 것”이라고 경고한 대표적인 하락론자다. 미국 유타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프롭테크(proptech: 부동산 자산+기술) 기업인 데이터노우즈를 설립하고, 객관적 지표로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직접 부동산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리치고’를 개발했다.최근 부동산시장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집값 바닥론’도 나오는데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나.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미국 금리인상이 예상보다 급격히 진행되면서 이후 부동산 가격이 너무 가파르게 하락한 면이 있다. 그러면서 부동산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은 가운데 10월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 12월 둔촌주공 재건축(올림픽파크포레온) 미분양 사태까지 일어나면서 자칫 한국 경제 전반이 흔들릴 위기에 놓이게 됐다. 더욱이 당시 둔촌주공 조합은 7000억 원 규모의 사업비를 12% 높은 금리로 3개월 단기대출을 받은 뒤 올해 1월 19일 일반공급 정당계약을 통해 대출받은 사업비를 상환할 계획이었는데 미분양이 나면서 미상환 위기에 내몰렸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그 파장을 우려해 어떻게 보면 ‘둔촌주공 살리기’에 가까운 여러 정책을 내놓아 미분양이 해소됐고, 이를 계기로 일부 단지에서 부동산 훈풍 기대감에 가격 상승과 거래량 증가 현상이 나타났다. 이것이 최근 ‘가격 반등이 오는 거 아냐’라고 섣부른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 배경이 됐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우리나라는 부동산 매매가 상승이 일어나려면 먼저 전세가가 안정돼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KB부동산과 한국부동산원 2곳에서 부동산 통계를 내는데, 두 곳의 통계를 보면 지금도 여전히 매매가와 전세가가 하락 중인 것을 알 수 있다. 또 집값 하락이 끝났다고 말하는 근거 중 하나가 거래량 증가인데, 지난해 월 1000건도 안 되던 거래량이 올해 2월 2300여 건으로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물론 2300이라는 숫자가 크게 보일 수 있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실거래가가 공개된 이후 서울 기준 월평균 거래량은 5995건이다(그래프 참조). 정부가 온갖 규제를 다 풀고 낮은 금리로 돈을 대출해주는 특례보금자리론까지 내놓았는데 거래량이 이것밖에 안 늘었다는 건 그만큼 시장에 에너지가 없고 집을 살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정부의 긴급 처방, 단기간 집값 급락에 따른 반발 매수세로 잠깐 일부 단지를 중심으로 상승 거래가 나타나고 호가가 올라간 것뿐이다. 전세가가 상승으로 다시 돌아서고, 그다음 서울 기준 월 거래량이 6000건을 넘어선 후 그런 거래량이 3개월 이상 터질 때, 그때 진정한 상승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부동산 가격이 언제 바닥을 칠 것으로 예상하나.
“일단 올해는 금리인하가 없고 내년부터 금리인하가 된다고 하는데, 그 가정대로라면 2024년 하반기, 2025년 상반기에 변화 조짐이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 가격이 지금보다 더 하락하고 대출금리가 낮아지면 주택구매력지수(중위소득 가구가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아 중간 가격 정도의 주택을 구입할 때 대출원리금상환액을 부담할 수 있는 능력) 등 여러 지표가 개선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런 가정에 변수로 등장할 수 있는 것이 경기침체다. 만약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일이 터진다면 부동산 가격이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많이 떨어질 수도 있어 계속해서 경기와 금리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지난해 서울 22% 하락, 최소 10% 더 떨어져
변수가 없다는 전제하에서 향후 부동산 가격 하락폭은 얼마나 될까.“2021년 10월 부동산 가격이 역사적으로 최고점을 찍은 시절 사람들에게 ‘지금 무조건 집을 팔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최소 30%에서, 많게는 50%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때 많은 분이 내 말을 믿지 않았지만 세종, 대구, 인천 송도 같은 곳은 이미 그렇게 떨어진 단지들이 있다. 서울의 경우에는 2022년 실거래가 기준으로 평균 22% 하락했기 때문에 아직도 추가 하락 여지가 최소 10%, 많게는 30% 남아 있다. 요즘 집값이 싸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에 앞서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없었더라면 절대 최고점 가격까지 올라가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현재 집값은 사람들의 소득이나 물가 등에 비춰볼 때 여전히 비싸다. 집은 저축도 하고 여유가 있어야 살 수 있는데, 현재 한국은 역사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장 많은 가계대출(1050조 원)을 기록하고 있다. 만약 현 상태에서 인플레이션이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면 집값이 언제 바닥이 될지 가늠하기 어려울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이 어느 정도가 돼야 싸다고 느낄까.
“2016년부터 오르기 시작한 집값은 2020년 초 역사적 고점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랐다. 그래서 추가 상승 여지는 있었는데 코로나19 사태, 임대차 3법이라는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등장하면서 그야말로 폭등했다. 지금 그렇게 쌓인 거품이 조금 빠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본질적인 가치에 비하면 비싼 수준이라 2018년 가격까지는 하락해야 싸다고 느낄 수 있다.”
실수요자는 2018년 가격으로 떨어지기만 기다리면 될까.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빅데이터로 분석하면 수도권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랐는데 같은 기간 지방은 오히려 내린 데도 많다. 그러다 2019년 말, 2020년 초부터 뒤늦게 오르기 시작했는데 시장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덩달아 같이 떨어져 이미 값이 많이 하락한 지역들이 있다. 충북 청주가 대표적인데, 조만간 서울의 영향을 받아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곳은 2019년 가을 정도 가격이 되면 좋은 매수 기회라고 본다.”
지금은 청약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보통 집을 살 때는 무릎, 허리, 어깨에 사는 3가지 경우가 있다. 지금 청약은 그중 허리에서 사는 거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건설사들은 원자재 가격 급등, 부동산시장 냉각 등으로 힘든 상황이다. 이미 미분양이 쌓이고 있는데 이런 상황까지 겹치다 보니 2~3년 후부터는 신규 아파트 공급량이 많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분양가가 현 시세 대비 비싸지 않다, 아파트가 들어설 지역에 분양 아파트가 신축 희소성을 갖는다는 전제가 있다면 ‘1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고 말은 못 하겠지만 나쁜 선택은 아니다.”
그 두 가지 전제가 충족되면서 미래가치가 높아질 지역은?
“최근 200 대 1에 가까운 경쟁률을 기록하며 분양에 성공한 서울 영등포자이디그니티도 괜찮았고, 남은 곳 가운데는 6~7월 분양 예정인 자양1재정비촉진구역이 눈에 뛴다.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바로 옆에 위치한 역세권에 한강 뷰가 가능한 데다, 향후 광진구청과 호텔도 들어설 예정이라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다. 또 서울 평균 아파트 나이가 21세인데, 이 지역도 예외는 아니라서 신축이 거의 없다.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큰 지역이고 신축 메리트도 있어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집을 무릎에서 살 기회가 온다
‘1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는 부동산을 무릎에서 살 수 있는 기회인가.“그렇다. 지금 서울 집값은 아직도 가슴에서 허리 사이다. 집값은 2024년 하반기, 2025년 상반기까지 더 빠질 거고, 그 뒤 입주 물량 공급 부족 등으로 전세가가 안정되면서 다시 오를 준비를 할 것이다. 정부가 막대한 경기 부양책을 펼치고 집을 무릎 가격에서 살 수 있을 때, 바로 그때가 오고 있다.”
최근 둔촌주공 재건축 분양권에 프리미엄이 붙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어떻게 보나.
“호구 짓이다. 주식도, 부동산도 경기가 조금 좋아지는 상황이 오면 가격 부풀리기가 이뤄지는데, 그러다 반대 상황이 오면 어떨 것 같나. 바로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가 된다. 부동산은 공급 측면도 있지만 수요 측면도 있다. 지금 물가가 진정되지 않고 있고 가스비, 전기료, 공공요금 뭐 하나 안 오르는 것이 없는데 집을 살 여윳돈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지금 부동산이 싸 보이는 것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버블 대비 효과일 뿐이다. 부동산시장은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고, 최소한 한 번은 더 하락한다.”
부동산과 빅데이터는 어떻게 접목되나.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부동산은 우상향’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내 집 마련은 언제나 옳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인구 감소에 따른 변화도 고려해야 하고, 실거주 목적의 집과 투자 목적의 집을 구분해 집을 사야 한 번씩 찾아오는 부의 증식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철저하게 테크 기술에 기반한 ‘리치고’는 한 지역의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데이터를 연구해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함으로써 선택을 돕는다. 또 금융회사, 건설사들과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더는 미분양으로 인한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양한 데이터에 기반해 의사 결정을 돕는다. 앞으로 ‘입주폭탄’ ‘미분양의 무덤’ 같은 말이 나오지 않는 시대가 오면 좋겠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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