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놀면 뭐하니?’ 유튜브 캡처]
‘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두렵다 / 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섭다 /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중략) /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에야 이루어질까 / 오늘 밤 나는 몇 년 만에 골목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스타덤에 오른 후 아이돌과 진배없는 인기를 누리던 그가 결성한 넥스트의 데뷔 앨범에 담긴 이 노래는 또래 청년들이 한 번쯤 해봤을 고민을, 그러나 또래 청년들이 가지지 못한 언어로 풀어냄으로써 묵직한 반향을 일으켰다. 2014년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또 하나의 내레이션을 남겼다. ‘미발표곡’이라기보다 ‘미발표 낭송’이 맞을 것이다.
‘그와 나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 하지만 그 위론 화해의 비가 내렸고 심지어는 가끔은 꽃구름이 흘러 다닐 때도 있다 / 우리 두 사람은 강의 이편과 저편에 서서 가끔씩 손을 흔들기도 하지만 그저 바라볼 때가 사실은 대부분이다 / (중략) / 그렇게도 나는 나일 뿐이고 싶어 했으나 이제는 또 다른 그가 되어주고 싶다 / 나는 이 세상에 그가 남긴 흔적 혹은 남기고 갈 증거이다 / 나는 그의 육신을 나누어 받은 자.’
데뷔 30주년 기념앨범 ‘Ghost Touch’와 차이
[동아DB]
또한 자신에게 남은 수명이 10년이 채 안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그래서 회한과 벅차오름이 공존하는 심정으로 써내려갔을 가사에서는 필멸의 허망함이 새삼 떠오른다. 2014년 10월 27일 그가 세상을 떠나고 5년이 조금 지났다. 그를 추모하고자 발표된 ‘아버지와 나 Part III’가 만약 일반적인 형태로 공개됐다면 감흥이 덜했으리라.
그러나 이 앨범은 그리 큰 화제를 모으지 못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만 얘기하면 이렇다. 음악계에는 오래된 속설이 있다. “아티스트가 생전에 어떤 노래를 발표하지 않고 묻어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제아무리 천재적 재능으로 세상을 호령한 음악가라도 유작으로 재능에 빛이 더해진 사례가 극히 드문 건 이 때문이다.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나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 같은 예외를 거론할 수 있겠지만, 이는 정규 앨범에 담을 목적으로 작업하던 중에 뮤지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경우다. 요컨대 ‘부산물’이나 ‘미완성품’이 아니라 애초에 ‘알짜’가 될 수 있던 곡에 좋지 않은 타이밍이 더해졌다는 얘기다. 반면 ‘Ghost Touch’는 정식 레코딩에 들어가기 전 데모, 또는 작업 과정에서 버려진 트랙을 복원한 작업이기에 자료로서 가치는 있을지언정 대중적으로 주목받기는 어려웠다.
‘아버지와 나 Part III’가 ‘Ghost Touch’와 결이 다른 건 신해철이 남긴 음성이 ‘노래’가 아닌 ‘내레이션’이라는 점, 즉 완성본과 미완성본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는 데 첫 번째 이유가 있다. 남은 사람들이 편곡 및 레코딩 작업을 할 때 제약이 덜하기 때문이다.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Starman’ 공개 장면들. [MBC ‘놀면 뭐하니?’ 방송 캡처]
김태호 PD와 유재석은 ‘무한도전’ 시절부터 예능과 음악의 컬래버레이션을 추구했고 이를 통해 ‘강변북로가요제’의 대성공을 이끌었다. ‘유플래쉬’도 비슷한 방식이지만 예능인과 음악인의 일대일 컬래버레이션에 그칠 수밖에 없던 ‘무한도전’과 차이가 있었다. 음악가를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그들의 작업 과정을 공개하는 방식을 통해 ‘음악의 비밀’을 엄숙하지 않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대중에게 선보였다.
한상원, 개코, 윤상 등 익히 알려진 뮤지션뿐 아니라 황소윤(새소년), 윤석철 등 인디 진영의 실력자가 이 프로그램에서 본모습 그대로 소개된 것도 김태호 PD와 유재석의 역량이다. 김태호 PD와 유재석은 난다 긴다 하는 음악인들과 연합을 통해 ‘놀면 뭐해?’ ‘눈치’ ‘헷갈려’ 같은 음악을 선보였다.
이승환과 하현우의 화룡점정
[MBC]
어려운 노래다. 프로그레시브하고 비대중적이다. 가벼움과 편안함, 혹은 시각적 압도가 없으면 이내 묻힐 수밖에 없는 지금의 음악 환경에서 쉽사리 전파를 탈 수 없는 노래다. 하지만 김태호 PD와 유재석은 이승환의 타협하지 않는 음악과 신해철의 그윽한 목소리를 토요일 저녁시간대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한국의 실력파 음악인이 대거 참여한 이 릴레이의 마지막 바통이 이승환과 하현우에게 이어졌고, 결승 테이프를 유재석의 드럼이 끊었다. 이 프로그램의 방송일이 10월 26일, 신해철의 5주기를 딱 하루 앞둔 날이었다.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어지간한 다큐멘터리보다 더 한, 고인에 대한 헌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