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 [gettyimages]
국적에는 허수가 존재한다. 사상 탄압을 피해 망명했지만 여전히 모국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가 꽤 되기 때문이다. 독일어 작가 헤르만 헤세(1946년·이하 노벨문학상 수상 연도)와 엘리아스 카네티(1981)가 각각 스위스와 영국 국적으로 분류되는 게 대표적이다.
문학 강국, 폴란드
[gettyimages, Joanna Helander, 사진 제공 · 은행나무]
2위는 프랑스어로 16명의 수상 작가를 배출했다. 국적으로 1위일 때 수치와 같은 이유는 러시아에서 망명한 시인 이반 부닌(1933)을 빼고,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1911)를 더해서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 방언인 오크어로 시를 쓴 프레데리크 미스트랄(1904)도 포함된다. 중국에서 망명한 뒤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병행한 가오싱젠(2000)과 아일랜드 출신이지만 프랑스로 국적을 바꾼 뒤 프랑스어로 작품을 쓴 사뮈엘 베케트(1969)도 포함됐다.
3위는 독일어 작가로 프랑스어 작가보다 2명 부족한 14명이다. 독일 국적 8명, 오스트리아 국적 2명, 독일어로 작품 활동한 스위스 시인 카를 슈피텔러(1919),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서 스웨덴으로 망명한 유대계 시인 넬리 작스(1966), 그리고 앞서 언급한 헤세와 카네티를 포함한 수치다.
언어 사용자 기준으로 중국어, 힌두어와 더불어 세계 3대 언어에 포함된 스페인어 작가가 11명으로 4위다. 스페인 작가 5명에 중남미 작가 6명을 더한 숫자다. 노벨상 주최국 프리미엄을 누리는 스웨덴어 작가가 7명으로 5위다. 단테의 모국어인 이탈리아어와 도스토옙스키의 모국어인 러시아어 작가가 각각 6명으로 공동 6위.
폴란드어는 8위(5명)로, ‘쿼바디스’로 유명한 소설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1905), 농촌의 사계를 담은 ‘농민’의 소설가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1924), 나치즘과 공산주의라는 전체주의에 저항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1980), 공산국가가 된 폴란드에서 모국어의 섬세함과 우아함을 지켜낸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1996), 그리고 신화적이고 여성주의적인 언어로 폴란드 현대사와 현대적 삶을 포착한 올가 토카르추크(2018)다.
러시아 및 이탈리아와 어깨를 견주다
여기에 한 명을 더 추가할 수 있다. 폴란드 출신 유대인으로 서른세 살에 유럽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아이작 싱어(1978)다. 싱어는 폴란드 시절부터 중유럽과 동유럽 유대인 언어인 이디시어로 소설을 발표했는데 미국으로 건너와서도 이디시어로만 작품을 썼다. 출세작인 ‘고레이의 사탄’은 폴란드 동부 도시 고레이를 무대로 유대인 공동체에서 발생한 메시아 열풍을 다룬 소설이다. 대표작 ‘원수들, 사랑 이야기’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때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계 폴란드 남자가 어쩔 수 없이 인연을 맺은 폴란드 출신 아내 3명을 건사하고자 고군분투하는 희비극을 그렸다.이런 싱어까지 더하면 노벨문학상 수상 폴란드어 문인은 6명이 된다. 세계적인 문호를 배출한 이탈리아, 러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문학 강국’인 셈이다. 이런 폴란드 인구는 3800만 명이다. 해외 망명 커뮤니티까지 다 합하면 남한 인구와 비슷한 5000만 명 수준.
이쯤 되면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로 시작하는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이 떠오를 법하다.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첫 번째 피해국이자 러시아 다음으로 많은 희생자(600만 명)를 낳은 국가였다. 1939년 9월 1일 서쪽에서 나치독일의 침략을 받고 그로부터 16일 뒤엔 동쪽에서 독일과 불가침협정을 맺은 소련의 침공을 받아 한 달여 만에 독일과 소련에 분할 점령됐다. 파리와 런던으로 옮겨 다닌 망명정부가 저항했으나 달걀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었다. 1944년 8~10월 바르샤바 봉기 때는 나치독일 점령군에 맞선 저항군 1만6000명이 전사하고 민간인 15만 명 이상이 희생되기도 했다.
‘추일서정’이 발표된 시점은 1940년이니 바르샤바 봉기 전이다. 하지만 가을날 지천으로 널린 낙엽을 보면서 폴란드 망명정부를 떠올린 시인은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며 짙은 허무감을 토로한다. 도룬은 코페르니쿠스가 태어난 폴란드 도시 토룬이다. 지동설을 주창한 코페르니쿠스가 관측하던 하늘이 포화로 덮인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일제강점기다 보니 직접 표출되지는 않았지만 망명정부를 둔 식민지 백성으로서 느낀 묘한 동병상련이 아니었을까.
수난의 역사에서 지켜낸 민족어
[사진 제공 · 민음사]
강대국에 둘러싸여 수난의 역사를 겪었다는 점에선 오히려 한국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해외로 망명하거나 이주한 폴란드인이 1000만 명이 넘는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수난의 역사에서 민족의 구심점이 된 것이 문학이었다. 토카르추크의 소설과 심보르스카의 시집을 번역한 최성은 한국외대 폴란드어과 교수에 따르면 슬라브어족에 속한 폴란드어는 중세 이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고풍스러운 언어로 손꼽힌다. 게다가 폴란드어 대사전이 500쪽짜리 10권으로 구성될 만큼 풍부한 어휘를 자랑한다. 토카르추크의 ‘방랑자들’ 번역으로 2018 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공동수상한 영국 번역가 제니퍼 크로프트는 “방대한 폴란드어를 번역하느라 불쌍한 영어가 고생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특히 3대 민족시인으로 불리는 아담 미츠키에비치, 율리우시 스워바츠키, 지그문트 크라신스키가 19세기 민족의 구심점으로 등장한 이후 폴란드인에게 문학은 민족애의 동의어가 됐다. 폴란드 최고의 민족 서사시로 꼽히는 미츠키에비치의 ‘판 타데우시’ 번역을 주도한 정병권 전 한국외대 폴란드어과 교수는 “미츠키에비치 동상이 폴란드 전역에 100개는 될 것”이라며 “폴란드에선 택시기사들도 손님을 기다리면서 소설이나 시집을 읽는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그런 역할을 했던 최남선, 이광수, 서정주 같은 문인들이 정치적 훼절 논란을 겪은 것과는 차별화되는 요소다. 폴란드에도 공산국가 시절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앞세운 정치문인이 있었으나 1989년 민주화 이후 폴란드 문학사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다시피 했다고 한다. 오히려 미국으로 망명했지만 ‘사로잡힌 영혼들’이라는 작품을 통해 공산국가 시절의 정치문인을 날카롭게 비판한 미워시가 ‘4대 민족시인’으로 불릴 만큼 존경받는다고 한다. 심보르스카 역시 공산주의 사상검열이 심각하던 시기 발표한 2권의 시집은 절대 번역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비슷한 역사와 비슷한 언어 구사 인구를 가진 한국이 하나도 받지 못한 노벨문학상을 폴란드가 5개나 받은 저력은 어디서 나올까. 물론 유럽국가라는 점과 13세기 이후 모국어로 작품 활동을 한 작가가 풍부하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을 테다. 하지만 이념적 오염으로부터 문학의 본령을 지키려 분투한 작가들과 그런 문인의 작품을 아끼고 사랑하는 국민의 열정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현재 한국문학이 가장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점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