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래 도공 사장 ‘가족 일감 몰아주기’ 의혹
업계 “고작 3곳인데 몰랐을 리가”
‘4촌 이내 이해관계 신고’ 의무 위반 가능성
“납품 외압 밝혀내야” vs “어쩔 수 없는 독점일 수도”
LED 가로등을 설치한 고속도로. [사진 제공 ·한국 도로공사]
일감 몰아주기 의혹 내용은 이렇다. 도공은 전국 고속도로 가로등 및 터널 내 등(燈)을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으로 교체하면서 디밍(dimming)제어 시스템을 함께 도입하는데, 해당 시스템의 핵심 부품인 PLC(Power Line Communication) 칩을 이 사장의 동생들이 관여한 ‘인스코비’라는 회사가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Tip 참조). 10월 말 한 언론매체는 “인스코비가 도공에 PLC 칩의 80% 이상을 납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는 이번 사안이 ‘공직유관단체 임직원 행동강령’이 금지하는 사적 이해충돌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조사해달라고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요청했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 사장 등을 배임 혐의로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평화당도 이번 사안을 ‘이강래 게이트’로 명명하고 “도로공사 이강래 가족 찬스 즉각 수사”를 촉구했다.
동생 셋 납품사 전·현직 임원이거나 주주
10월 10일 오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오른쪽)과 이강훈 부사장이 자료를 주고받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5억 팔면 3억 이상 남는 장사
2015년 6월 주변 환경에 따라 밝기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LED 디밍제어 시스템’이 충북 음성-제천 고속도로 가로등과 터널 내 등에 첫 적용됐다(왼쪽). 2018년 LED 조명으로 교체된 평택-제천 고속도로 산척3터널. [사진 제공 ·한국도로공사]
“최근 LED 조명시장이 커지면서 등기구, 모뎀, PLC 칩 업종이 서로 혼합되는 추세다. I사와 C사도 칩 제조·판매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디밍제어 모뎀을 생산한다. A사 입장에서는 모뎀시장에서 이 두 회사와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두 회사의 칩을 사줄 이유가 없다.”
그러나 “동생 회사의 도공 납품을 몰랐다”는 이 사장의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PLC 업계 한 관계자는 “인스코비라는 회사를 알고 있고, 자신의 아내가 그 관계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납품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또 도공은 부품업체까지 자신들이 알 수 없다고 하는데, 핵심 부품인 PLC 칩 제조사가 3개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회사 칩을 사용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않고 있다면 직무유기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도공이 KS 규격을 만드는 데 1년 이상 걸린 것으로 안다. 납품 대상을 KS 규격으로 제한한 것도 국내 산업을 활성화하자는 취지에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가로등 교체 업무 담당자들은 해당 업체들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실적 호조에 대해 인스코비는 “한국전력공사(한전)의 스마트계량기(AMI) 보급 사업과 관련된 수주 계약이 실적에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한전의 AMI 사업에도 PLC 기술이 쓰이는데, 인스코비가 한전에 PLC 모뎀을 공급하면서 실적이 개선됐다는 것이다. 인스코비는 도공 납품과 관련해서는 “디밍제어 모뎀업체 A사에 PLC 칩을 납품한 것은 2013년 10월부터로 이강래 사장이 도공 사장으로 취임하기 훨씬 전이며, A사에 대한 매출액도 연평균 5억~6억 원으로 전체 매출에서 비중이 1~2%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업계는 PLC 칩 납품이 규모는 작아도 이윤이 꽤 남는 ‘쏠쏠한’ 장사라고 말한다. 도공에 따르면 PLC 칩 납품가는 개당 1만2000원. 그런데 이 칩의 생산 단가가 3000~4000원이라 개당 8000~9000원 마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5억 원어치 팔았다면 3억 원 이상 이익이 발생하는 셈이다. 도공이 2014년부터 2022년까지 LED 등기구 교체 사업에 들이는 예산은 총 5400억 원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오른 업체
인스코비의 사사(社史)는 19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 ‘삼립양행’이라는 사명으로 설립됐고, 1985년 코스피에 상장됐다. 1999년부터 한독, 돌핀(Dolphin), 오딘(Odin) 시계 판매를 주력 사업으로 삼다 휴대전화 보급으로 시계 산업이 기울자 2011년부터 PLC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그리드 사업을 추진한다. 그러다 한전 AMI 사업의 진행이 지지부진해지자 위기를 겪는다. 2014년 2월 한 경제지는 10년 이상 만성 적자를 이어오는 사실상 한계 기업이 상장 폐지되지 않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에서, 그 사례로 ‘로엔케이’(인스코비의 옛 사명)를 거론했다. 로엔케이가 1999년부터 2013년까지 15년 연속 영업손실을 냈는데, 이는 코스피에 상장된 900여 개 종목 가운데 최장 적자 기록이라는 것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로엔케이는 2008년부터 무려 11회나 최대 주주가 변경됐다.이강래 사장의 동생들과 유인수 대표가 인스코비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부터다. 2013년 9월 이 사장의 첫째 동생이 대표이사를 맡은 밀레니엄홀딩스가 설립돼 한 달 뒤 지분 6.87%를 보유한 인스코비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그해 11월 이 사장의 막냇동생은 인스코비 사내이사로 등재됐고, 유 대표는 기존 대표이사인 강모 대표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았다. 그리고 2015년 3월 사내이사가 막냇동생에서 둘째 동생으로 교체됐다. 첫째 동생은 2016년 1월부터 고문을 맡고 있다.
2015년 유 대표 단독 체제로 바뀌면서 인스코비는 알뜰폰 사업자 ‘프리텔레콤’과 바이오 회사 ‘아피메즈’를 인수해 사업 부문을 △스마트그리드(PLC 칩 사업 포함) △알뜰폰 △바이오로 재편한다. 유 대표는 증권사 지점장 출신으로 나우콤을 인수해 ‘아프리카TV’를 만들어 대박을 낸 인물로 유명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 사장 동생들과 유 대표가 인스코비를 인수할 목적으로 밀레니엄홀딩스를 함께 세운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인스코비는 주식시장에서 종종 ‘작전주’로도 거론된다. 확실하지 않은 호재를 발표해 주가를 띄우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것. 지난해 12월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도 올라왔다. ‘인스코비 대표 ◯◯◯ 그리고 ◯◯◯ 박사를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이다. 확실하지 않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3상 승인 임박 사실을 공표해 주가를 끌어올렸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청원이었다. 실제로 인스코비 주가는 오랜 기간 2000~3000원 선에 머물다 2018년 3월 1만5000원까지 폭등했다. 그리고 올해 들어 다시 3000원 이하로 주저앉은 상태다.
권익위가 제정한 ‘공직유관단체 임직원 행동강령 표준안’은 공사 임직원 본인과 4촌 이내 친족이 임직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법인·단체가 직무 관련자인 경우 사적 이해관계를 신고하도록 돼 있다(제5조). 도공 역시 이 표준안을 반영한 ‘한국도로공사 임직원 행동강령’을 마련해놓고 있다. 따라서 이 사장이 동생들이 주주 및 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PLC 칩 납품사와 관련해 사적 이해관계를 신고하지 않은 것은 행동강령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도공 측은 “이번 사안에 대한 언론보도 이후 법률 자문을 받은 결과 이해충돌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