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9

2005.06.14

내가 그분에게 마음을 주는 이유

  • 입력2005-06-09 17:2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내가 그분에게 마음을 주는 이유
    마음만 먹으면 세상 모든 남자들을 ‘후릴 수’ 있는 ‘안녕, 프란체스카’의 안성댁이 하필 백치 ‘켠’을 사랑하는 이유라면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아쉬울 것 없는 조건과 능력을 갖춘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여자들에게는 사실 비슷하게 잘난 남자가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 성별을 떠나 나를 향해 해맑게 웃는, 순진하고 호감으로 가득한 사람에게서 휴식을 구하고 싶은 쪽일 터. 비록 안성댁처럼 “나는 여전히 아름답고~ 너는 여전히 바보구나~”라며 매 순간 탄식하게 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사회적인 지위나 경제력을 기대하지 않게 되는 것과는 별개로, 오히려 ‘그(들)’의 실무적인 능력에 대한 의존은 갈수록 커지는 면이 없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부담해야 하는 사회적 책무는 늘어나는데 그에 대한 정책이나 관습의 절차는 까다롭고 복잡하기 일쑤니 혼자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곧잘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심정적으로는 늘 바보 같은 순수를 찾더라도 처리해야 할 일을 위해서는 그 방면에 가장 훈련이 잘된, 프로페셔널한 친구들에게 먼저 달려가게 된다.

    5월 말, 회계사 후배를 믿고 안 하던 짓을 했다. 개인사업자 11년차로 처음 ‘제대로’ 소득신고를 한 것이다. 세무서에서 발송한 서류만 제대로 제출해도 얼마간의 환급액이 떨어지긴 하겠지만 후배가 특유의 치밀함으로 검토하니 100만원 가까이 환급받을 수 있는 서류가 만들어진다. 환호작약하는 나 이상으로 흐뭇해하던 후배 부부는 와인 한 병을 개봉해 함께 축하해주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잔을 비우면서 나는 단련된 지식과 기술로 특별한 도움을 주는 고마운 지인들을 새삼 둘러보게 되었다.

    복에 겨우려니, 나에게는 심지어 주치의까지 있다. 여성운동 진영의 고은광순, 이유명호 선생님은 진료실 밖에서도 상담이나 치료를 열어두시는 편이라 우리 같은 불한당 후배들은 그녀들을 멋대로 주치의로 삼고 에스오에스(SOS)를 청하곤 한다. 밥줄인 컴퓨터가 이유 없이 작동하지 않을 때도 나는 수리업체보다 프로그래머인 선배에게 먼저 전화를 건다.

    꼭 공인된 전문가가 아니어도 좋다. 카페를 경영하는 친구는 얼마 전 업소용 진공청소기를 가져와 작업실의 묵은 때와 먼지를 순식간에 처치해주었다. 오페라처럼,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은 없으면서도 어딘가 매혹적이라 제대로 관람하고 싶은 공연을 보러 갈 때면 나는 그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지인의 티켓까지 구해 그에게 동행을 청하기도 한다. 음식이나 술에 대해 뛰어난 감식안을 지닌 친구들 역시 새로운 세계를 알게 하는 기쁨을 선사해주는 만큼, 그들을 위해 즐겁게 지갑을 열곤 한다.



    나도 가끔 친구들에게 실제적인 쓸모를 제공하는 존재가 되어주는 것은 물론이다. 청첩장을 디자인해주거나 번역 일을 하는 친구의 원고를 교정해주는 일들로 말이다. 요컨대, 직업으로 삼지는 않았더라도 그 분야에서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확신이 있고, 관련하여 나름의 윤리도 지니고 있다면 우리끼리 전문가 행세를 해도 되는 게 아닐까.

    낭만적인 차원에서의 정서적 교감도 중요하지만, 내가 강조하는 것은 정말로 현실적인 조언과 협력을 할 수 있는 관계에 관해서다. 계산적이지 않은 순진함도 아름답지만, 일상의 과제들을 좀더 현명하게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스스로를 정비하고 지인들에게도 기댈 필요가 있다. 싱글은 가족에게서 독립한 것이지 사회와 기타 커뮤니티에서까지 독야청청하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더욱 공고해져야 할 관계들이다. 프로페셔널한 인간으로서의 우정은 친구들의 노고와 실력에 대한 정당한 보답이고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생존 방식이기도 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