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7

2005.08.09

음악, 길에서 자유를 만나다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5-08-04 16: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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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길에서 자유를 만나다

    오리지널 길 위의 밴드인 ‘오! 부라더스’. 이들은 언더그라운드 클럽과 방송 대신 ‘길’을 선택했다.

    작열하는 태양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뜨기도 어려운 한여름의 길거리. 별 특색 없는 커피 가게 앞에 희한하게 생긴 다섯 명의 남자가 나타나 쿵짜작 쿵짝, 60년대적인 로큰롤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무대 앞에 선풍기를 돌려 가슴 근육을 훤히 드러내는 요즘 가수들과는 아주 다르게 무더위에도 넥타이에 양복을 차려입은 이들은 색소폰에 기타, 드럼을 길에 차려놓고, 가게에선 전기선까지 뽑아 앰프를 연결했다. 이 더벅머리 사나이들의 노래에 행인들 정신이 번쩍 들고 귀가 쫑긋한 표정인데, 어떤 이는 목을 꺾은 채 부지런히 가던 길을 가고, 또 어떤 이는 신기한 듯 디카 셔터를 눌러댄다. 그리고 이들이 그 유명한 ‘오! 부라더스’임을 알아본 사람들은 좋아서 쓰러질 것 같은 표정으로 발을 구른다.

    “10분? 10분 공연하면 신고가 들어가서 벌써 경찰이 달려와요.”

    경찰은 철수를 명령하고, 이들의 매니저가 열악한 공연 환경에 대해 설명하고, 관객들이 “더 듣자!”고 외치는 동안 두 곡 정도가 더 연주된다. 그러면 대개 그 현장에서의 공연은 끝이다.

    최근 ‘No Music, No Life’로 TV와 라디오 순위를 평정한 가수 임정희가 ‘거리의 디바’로 불리면서 거리의 뮤지션들과 공연에 관심이 높아졌지만, 길거리는 여전히 가수들에게 그렇게 호의적인 무대가 아니다. 특히 길을 물류 유통로로 만들어 아스팔트를 깔아온 상식으로 보자면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이를 ‘관람’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사건이며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오! 부라더스’ ‘비바 소울’ 등 탄탄한 실력



    그러나 어떤 가수들은 뜨겁거나 바람 부는 길에서 노래하기를 꿈꾸고, 노래하기를 고집한다.

    ‘오! 부라더스’는 1998년 처음 홍대 부근 빵집 앞에서 거리 공연을 시작한 오리지널 길거리 뮤지션으로 당시 밴드 이름조차 ‘오르가슴 부라더스’라는 발칙한 것이었다. 그 사이 3장의 앨범을 내고,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 영화에도 출연했다. TV에 출연할 뿐 아니라 올해 7월30일 우리나라를 대표해 일본 후지록페스티벌에 나갈 정도로 ‘메이저’가 됐지만 이들은 여전히 거리 공연을 계속한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게 거리 공연이거든요.”

    이들의 공연은 실내 공연을 밖으로 옮겨온 ‘야외 콘서트’가 아니고, 음향 장비를 실은 럭셔리한 거리 공연용 트럭도 없이 이뤄진다. 오랫동안 길에서 공연을 했기 때문에 ‘오! 부라더스’가 홍대 앞에 떠 ‘시원한 바닷물에 퐁당 빠진 로맨스’를 연주하면 300~400명은 바로 모여 몸을 흔들 정도다.

    ‘오! 부라더스’는 이성문(베이스)과 이성배(색소폰) 진짜 ‘브라더’ 사이에 동네 친구들인 쟈니(기타)와 안태준(드럼), 그리고 팬이었던 최성수(보컬) 등이 모여 결성했고, 같이 음악을 듣다 듣다 50년대 음악까지 거슬러 올라가 거기서 자기들 음악을 만들어냈다. 당시 홍대 클럽 문화는 주류 언론을 휩쓸 만큼 번창하고 있었지만 엘비스 프레슬리가 비틀스의 보컬로 들어간 듯한 ‘오! 부라더스’와 어울릴 만한 공간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거리를 선택했고, 의도와 상관없이 2005년의 트렌드와 맞아떨어졌다.

    음악, 길에서 자유를 만나다

    ‘거리의 디바’로 떠오른 임정희.

    이들은 구경하는 관객들의 호의에 따라 돈을 받는 ‘버스킹(busking)’도 한다.

    “우린 ‘버스킹’을 좋아해요. 우리나라에서 예술은 ‘공짜’처럼 여겨지는데, 문화를 소비하려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그래야 예술이 큰다는 인식 변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버스킹이 일반화되면 돈을 주면서 쑥스러워하지도 않겠지요.”(이성배)

    올해 2월 1집 앨범을 내놓은 ‘비바 소울’은 매년 여름 홍대 앞에서 열리는 프린지페스티벌의 길거리 공연과 클럽을 통해 성장해 메이저 기획사에 들어간 뮤지션이다.

    주드, 딜로, 사무엘 세 멤버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청소년 단체에서 만나 ‘음악공동체’인 ‘가투’를 결성해 멤버 변화 없이 오늘의 ‘비바 소울’에 이르렀다. ‘가투’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심각한 ‘의식화’의 결과로 음악을 시작해 ‘악법도 법인가’ 같은 노래를 만들었던 이들은 함께 운동을 했던 ‘한○련’의 일부 선배들에게 실망해 음악 자체에 전념하게 됐다고 했다. 음악적으로도 초기 저항적인 메탈과 펑크록에서 흑인음악인 소울을 만나 지금의 힙합, 재즈, 보사노바, 레게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여 ‘비바 소울’만의 색깔을 얻었다.

    98년부터 홍대 앞에서 활동해온 이들은 ‘샘플링’ 없이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는데, 저마다의 길을 가던 산만한 행인들을 끌어들여 분위기를 잡기까지 수십 초도 걸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홍대 앞 거리나 놀이터, 커피숍 등 공연해보지 않은 곳이 없어요. 오디오에 대한 불만이요? 그런 거 없어요.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 노래할 수 있어야 해요. 클럽에 돈을 내고 오는 사람들은 그만큼 볼거리로 돌려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듣기 싫으면 가버리니까요. 우리는 음악을 한다는 게 씨 한 알에서 나무를 키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거리나 클럽 공연은 말 그대로 우리 힘으로 키워가는 거예요.”

    이들의 방송 히트곡은 ‘Swing My Brother’이지만, 이들은 ‘Youth on the Road’ ‘My Town, My Street’ 같은 곡으로 고향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이들은 가수라는 호칭이나 방송공개홀의 10대 팬들이 아직도 낯설고 매니저가 짜는 스케줄은 왠지 ‘내 것’ 같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데뷔 앨범과 ‘비바 소울’의 이름을 걸고 7월에 처음 열린 콘서트가 10년의 음악생활을 모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 주류 무대 데뷔가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거리의 가수 중 제도권 방송에서 가장 빨리 톱스타 대열에 오른 사람은 물론 임정희다. 임정희의 거리 공연은 다른 뮤지션들과 좀 다르다. 스타메이커 박진영의 JYP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돼 있던 그녀는 다른 가수들의 공연에서 게스트를 하는 동안 라이브 가수로서 가창력을 인정받아 2004년 겨울부터 거리 공연에 나서 팝송을 불렀다. 홍대 앞과 대학로 등에서 강렬한 목소리와 매력적인 피아노 연주로 인기를 얻은 임정희는 드디어 6월 첫 번째 앨범 ‘온 더 스트리트’를 내놓았고, ‘No Music, No Life’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방송 스케줄이 아무리 바빠도 길거리 공연을 계속한다는 것이 임정희의 말이고, 최근 대구 길거리 공연에서 무려 4000명이 모여 폭발적인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음악, 길에서 자유를 만나다

    ‘비바 소울’의 길거리 공연. 이들은 한순간에 관객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거리 공연의 장점 중 하나는 형식이나 장르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네 살 때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란 노래로 인기를 끌었던 이자람 씨도 홍대 앞 놀이터 공연과 클럽 등에서 신선한 음악을 선보이는 뮤지션으로 꼽힌다.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 재학 중인 그녀는 국악에서 현대적인 밴드음악, 뮤지컬 등을 다양하게 공연한다. 그는 “국악도 감상층이 얇지만 인디밴드는 이보다 더 얇다. 하지만 내 성향 자체가 주변부인 듯하다”고 말한다. 그가 만든 창작뮤지컬 집단 ‘타루’는 8월12~28일까지 열리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기간에 거리 공연을 가진다.

    홍대 앞에서 거리 공연이 정기적으로 벌어지는 곳은 주말마다 작가들이 벼룩시장 ‘프리마켓’을 여는 놀이터다. ‘프리마켓’에서 미술 작가들이 물건을 만들어 팔 듯, 거리의 가수들은 ‘팁 박스’를 두고 노래를 판다. 신재진, 카카기오 등이 프리마켓 공연에 자주 참여하는데 ‘오! 부라더스’, ‘비바 소울’, 임정희 등이 모두 놀이터 공연을 거쳐갔다.

    7월23일 이곳에서는 광복 60년을 맞아 원폭피해자를 위로하는 공연이 열렸다. 이곳 공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프리마켓 고태경 씨는 “자작곡만 있으면 누구든 ‘프리마켓’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고, 다른 날에는 누구든 자유롭게 공연할 수 있다. 시민단체나 메이저급 가수들도 ‘홍보’ 차원에서 거리 공연을 이용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한다. 관할 구청도 지난해까지 ‘프리마켓’이 불법 영업이라며 공연을 중단하도록 요구해 홍대 지역 예술가들과 충돌을 빚었으나, 올해는 문화 이벤트로 간주해주는 분위기다.

    거리 공연을 오래 해온 뮤지션들이라면 당연히 대형 기획사들의 홍보용 거리 공연을 뜨악하게 볼 것 같은데, 뜻밖에 이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음악 해방구’이자 새로운 일탈의 공간

    ‘오! 부라더스’ 멤버들은 “거리 공연이 음악계의 이슈가 되는 건 나쁘지 않다. 거리 공연이 상업적 가치도 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고, 그 의미가 대중에게 더 빨리 이해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말처럼 거리 공연은 개별적 아티스트의 노력 차원을 넘어서 문화 이벤트로 확대되고 있다. 10월에 공개되는 청계천 광장에도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하는 거리 공연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설치되고 아티스트들에게는 ‘버스킹’도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지하철역 공연을 운영하는 지하철예술단(레일아트)의 박종호 대표-그 역시 가수다-는 “영국 소호의 거리에서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공연을 하는 모습이 부러워 시작했다. 2000년 사당역에서 첫 공연을 할 때만 해도 거리 공연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현재 전국에서 600팀이 공연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하철예술단은 거대한 아티스트 조직을 이뤄 역과 공항 등의 협조를 받아 공연을 한다는 점에서 각개격파를 하는 홍대 앞의 게릴라성 뮤지션들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개 무료공연을 하므로 아티스트들이 음악에 헌신하지 않으면 노래하기 어렵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음악, 길에서 자유를 만나다

    작가들이 운영하는 ‘프리마켓’의 공연 프로그램. 홍대 앞 놀이터는 대표적인 길거리 공연장이다.

    길거리나 클럽에서 음악을 하려면 십중팔구 ‘투잡스’족으로 살게 된다. 주중엔 샐러리맨이거나 만화를 그리기도 하고, 도시락이나 우유배달, 막노동, 전단 배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뮤지션들이 자기 레이블을 갖고 직접 음원시장에서 자기 지분을 챙기는 방법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실험’적인 길이다. 결국 또 다른 선택은 제도권 음악 시장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거리에서 공연하는 가수들은 대개 거리뿐 아니라 클럽처럼 ‘언더그라운드’한 공연장을 함께 이용하지만, 음악 세계를 고수하기 위해 언더를 지키는 가수들과는 다르다. 이들은 주류와 비주류, 언더와 오버, 저항과 참여, 록과 힙합의 경계를 믿지 않는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유연하고 자유롭다. 여기저기를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와 저기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이 이들의 특성이다.

    아니, 홍대 앞 클럽들이 압구정의 클럽과 비슷해지고, 뮤지션들의 공연 장소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춤추기 위한 DJ 중심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시대적 변화가 이들의 생각을 바꿔놓았는지도 모른다. 90년대 말 언더그라운드 클럽이 음악적 해방구였듯, 지금 이들에게는 길거리가 새로운 일탈의 공간이다.

    거리 축제의 대명사가 된 ‘프린지페스티벌’의 이규석 집행위원장은 “길은 원래 경제적 용도가 있고 공권력 아래 있는 공간인데 이곳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은 제도와 규칙에서 벗어나는 일탈의 경험이 된다. 그것이 바로 축제의 구실”이라고 말한다.

    검은색 LP에서 차가운 은색 CD를 지나,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이 음악이 된 시대에 길거리에서 직접 뮤지션을 만나 몸에서 나는 목소리를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짜릿한 체험인가. 이런 점을 기획사들이 간파하여 기획된 가수들에게 질려버린 대중들에게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비바 소울’의 사무엘은 이렇게 말했다.

    “길에서 공연을 하면 오늘 어떤 관객을 만날지 우리도 상상할 수 없어요. 그런 점이 공연 전에 우리를 흥분시키고, 우연히 길 가다 우리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더 오래 우리 팬이 되더라고요. 그게 음악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해요.”



    문화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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