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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경제 이야기|‘역사적 배경이 영화 속 배경 좌우?’

한국 영화 무대 ‘서울’ 아니면 안 되나

  • < 이명재/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 mjlee@donga.com

한국 영화 무대 ‘서울’ 아니면 안 되나

한국 영화 무대 ‘서울’ 아니면 안 되나
한국 영화를 보면 늘 확인할 수 있는 점이 한 가지 있다. 열 편 중 한두 편을 제외하고는 배경이 죄다 서울이란 사실이다. 그래서 부산을 무대로 한 ‘친구’처럼 지방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는 오히려 이채로울 정도다. 이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보이는 서울 집중화 현상을 영화가 반영한 것 아닐까.

100여년 전 한국을 찾은 비숍 여사의 눈에도 그렇게 비쳤던 듯, 그는 ‘조선 여행기’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조선에서 모든 사람의 마음은 서울에 있다. 지방에 내려가 있는 관료든 일반 백성이든 몸은 어디에 있더라도 마음의 지향은 늘 서울로 향해 있다.’

지독한 서울 집중 현상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하거나, 어쩌면 더 심해진 것 같다.

필자는 지금 한 달간 영화 ‘탑건’의 무대인 미국 샌디에이고에 머물고 있는데 ‘탑건’을 빼고라도 미국 영화에선 수없이 다양한 지역이 배경으로 나온다.



물론 미국이라고 단골로 등장하는 특정 지역이 없진 않다. 가령 할리우드가 있는 LA나 경제 중심지인 뉴욕은 어느 곳보다 빈번하게 배경으로 나온다. 그러나 그 밖에도 수많은 도시들, 수도 워싱턴에서 남부 세인트루이스나 뉴올리언스, 위쪽의 시카고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도시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이런 지역적 배경의 다양함은 무엇보다 미국이란 나라가 땅이 넓고 주별 독립체제인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중앙으로 빨아들이는 구심력도 그만큼 약하고 지방마다 독립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가령 산업별로 중심도시도 다르고, 거대 기업들의 본사도 지역별로 분산돼 있다. 거의 모든 기업의 본사가 서울에 몰려 있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란 영화 속의 시애틀만 해도 마이크로소프트사와 보잉사의 본산지다. 제너럴모터스 포드 등 자동차는 디트로이트, 정보통신은 샌프란시스코 주변의 실리콘밸리에 자리잡고 있다. 그만큼 경제적 자원들이 분산돼 있다는 얘기다. 경제적 기반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하고 사람들의 삶이 이뤄지면서 워싱턴이나 뉴욕 외에도 수많은 지역 중심지가 형성되고 자연히 영화에서도 ‘권력의 균형’이 이뤄진 것이다.

유럽은 이런 점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는 유럽의 역사가 국가보다는 도시의 역사라는 데서 많이 기인한다. 특히 이탈리아는 도시 하나하나가 곧 나라였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로마 외에도 베네치아 피렌체 나폴리 제노바 밀라노 등 수많은 도시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물과 낭만의 도시 베네치아는 로마 이상으로 수많은 영화와 문학의 배경이 된 곳이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나 ‘오셀로’의 무대도 바로 베네치아다.

왜 베네치아였을까. 중세 이후 수백년간 유럽의 가장 부유하고 화려한 도시로 군림했던 베네치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수긍이 간다. 동로마와 서로마의 경계선에 위치한 이 도시는 십자군 원정 때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후 페르시아 중국 등과의 교역 창구 역할을 하면서 베네치아는 ‘동방상품의 거대한 창고’로 불렸다.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도 무역정찰 임무를 띤 베네치아의 척후병이었다. 베네치아는 동방과 서방이 만나고 다양한 문화가 얽히고 설키는 도시였다. 미국 맨해튼의 인종 용광로를 방불케 하는 문화 백화점이었다.

베네치아는 16세기 이후 스페인 포르투갈에 의해 동방 신항로가 개척되면서 내리막길을 걷지만 조상들이 남긴 유적으로 여전히 로마 못지않은 국제적 명성을 유지한다.

산업시설의 지방 강제이전 등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탈서울화’가 잘 안 되는 것은 인위적인 정책 의지나 그 효율성을 떠나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이 없는 탓 아닐까.



주간동아 348호 (p75~75)

< 이명재/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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