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8

..

개 같은 세상, 혹은 상팔자?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입력2004-10-05 15:3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개 같은 세상, 혹은 상팔자?
    개 같은 세상, 혹은 상팔자?
    폭우 속에 어영부영 말복이 지나갔다. 숨죽이고 있던 적잖은 견공(犬公)들이 소리 없는 환호를 터뜨렸을 법하다.

    사람의 가장 절친한 친구에서부터 여름에 빼놓을 수 없는 보양식까지, 개처럼 우리에게 다양하게 비춰지는 동물은 아마 없으리라. 300만명이 넘는 애견가들이 자식처럼 개를 키우는데도 ‘개××’는 가장 심한 욕 중 하나다. 참으로 이상한 모순 아닌가.

    최근 미술관으로 정식 등록한 사비나 미술관에서 8월31일까지 열리고 있는 ‘The Dog’전은 ‘개’가 주제인 독특한 전시다. 황주리 노순석 공성훈 김성복 등 31명의 작가들이 개를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에 참가한 작가들은 대부분 개를 좋아하거나 직접 개를 키우는 애견가들이다.

    개를 그린 미술품은 사실 과거부터 적지 않았다.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스는 국왕이나 황태자 등 왕족의 초상화 옆에 개를 그려 주인공의 권위를 한층 강하게 표현했다. 땅속에 파묻힌 개를 그린 고야의 작품은 시대의 억압에 분노하는 화가의 자아를 상징한다. 김홍도 신윤복 등 조선 후기의 화가들도 풍속화에 개를 즐겨 그려 넣었다.

    8월31일까지 개 관람도 가능



    개 같은 세상, 혹은 상팔자?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림 속의 개는 사람 옆에 있는 조연에 만족해야 했다. 이번 ‘The Dog’전은 사람의 곁에 선 개가 아니라 온전히 개 자체가 주인공인 작품들로 채워진 점이 우선 눈길을 끈다. 작가들은 개를 통해 늙고 교활한 정치꾼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음울한 폭력의 그림자를 투영시키기도 한다. 자신의 생활을 개에 대입시킨 작가도 있다. 개의 머리에 반짝이는 뿔을 달아 ‘붉은 악마’로 둔갑시키는가 하면, 떠난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늙은 개를 통해 인간의 비정함을 꾸짖기도 한다.

    “저희는 단순히 개를 주제로 한 작품을 부탁했는데 작가들이 가져온 작품은 예상외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담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뜻밖인 점은 개를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개와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그린 작품이 거의 없었다는 거죠.” 사비나 미술관의 큐레이터 이희정씨의 설명이다.

    개 같은 세상, 혹은 상팔자?
    ‘본성으로서의 개, 풍자 상징으로서의 개, 자아투영으로서의 개’라는 세 가지 주제로 나뉘어진 전시작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역시 개를 통해 표현된 갖가지 유머러스한 풍자다. 예를 들면, 최석운의 ‘복날’에는 야산 중턱 즈음에 앉아 배를 두드리며 이빨을 쑤시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 옆에는 커다란 몽둥이가, 그리고 나뭇가지에는 끊어진 밧줄이 매여 있어 어떤 상황인지를 설명해 준다. 한 귀퉁이에서는 개 한 마리가 몸을 숨긴 채 사람들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영리해 뵈는 개에 비해 배가 불러 만족스러운 사람들의 표정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반면, 같은 복날이 주제라고 해도 설종보의 ‘복날-일상’은 시뻘건 하늘과 붉은색 일색인 지붕으로 채워져 있어 복날에 이루어지는 ‘만행’을 성토하는 듯한 느낌이다.

    개를 그린 그림이라면 뭐니뭐니 해도 팔자 좋은 개를 빼놓을 수 없다. 이김천의 ‘나는야 상팔자’에 등장하는 개는 난만한 꽃밭 속에 늘어지게 누워 있다. 방자한 표정의 개는 생김새로 보나 사지를 쫘악 뻗은 포즈로 보나 ‘똥개’가 분명하다. 이 녀석이 복날을 무사히 넘겼는지 모르지만 그림의 제목처럼 참으로 부러운 팔자가 아닐 수 없다.

    개 같은 세상, 혹은 상팔자?
    또 황주리의 ‘자화상’ 연작에 등장하는 뚱한 표정의 불독은 작가가 직접 키우고 있는 개를 모델로 한 것이다. 전화를 받거나 외출준비를 하는 등 이 개의 일상은 바로 작가의 일상이나 다름없다. 불독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은 어느 순간, 사람의 표정처럼 보여 작품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사비나 미술관의 ‘The Dog’전은 ‘미술’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엄숙함과 무거움을 한방에 날려버린다. 우울한 개, 우스운 개, 실물과 거의 똑같은 개… 갖가지 개 그림 속에서 인간의 모습이 언뜻 보인다. 사람이 갖고 있는 욕망과 공포, 고통 등의 감정을 개들은 담백한 표정과 동작으로 쉽게 보여준다. 작품을 보다 보면 왜 개가 사람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지 알 듯도 싶다. 그들의 표정은 어느 순간 놀랄 만큼 사람과 비슷하지만, 사람보다 훨씬 더 정직하다.

    자신들이 주인공인 그림을 개들이 보면 뭐라고 할까? ‘The Dog’전은 사람 아닌 개의 관람도 환영한다. 실제로 주인을 따라 그림을 보러 오는 개들도 가끔 있다. 개중에는 개들이 특별히 좋아하거나, 반대로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그림이 몇 점 있다고 한다.



    전시

    댓글 0
    닫기